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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7) : 박영선 의원 (경향)
작성일 : 2011-04-05 07:28조회 : 3,560
경향신문 2011년 4월 4일자
[이상돈·김호기의 대화](7) 박영선 의원을 만나다
(정리 | 장은교 기자)
- 박영선 “박근혜 전 대표 인기는 인정, 21세기형 지도자인지는 의문”
- 김호기 “朴, 세가지 다른 노선 공존” 이상돈 “한나라당 재건한 건 평가”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가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마주한 7번째 <대화>의 주인공은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었다. MBC 기자·앵커 출신인 그는 제17대 비례대표로 정치를 시작해 18대에는 지역구(구로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재벌개혁’을, 법사위에서 ‘권력형 비리’를 물고 파헤친 그는 여야를 통틀어 국감스타이자 파이터로 통한다. 지난달 대검 중수부 폐지, 특별수사청 신설, 대법관수 증원 등이 담긴 사법제도개혁특위의 6인소위 합의안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실제 ‘7번째 손님’으로 선택한 박 의원과의 대화에는 이 파이터와 얽혀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들이 날 것 그대로 올라왔다. 진보 성향의 김 교수가 BBK와 야권연대를 묻고, 보수 성향의 이 교수가 검찰개혁을 주문하며 시작된 대화는 ‘박근혜 정치’와 여성 문제로 막힘없이 흐르며 뜨거워졌다. 최근 한·미의원외교협의회 대표단으로 미국을 다녀왔다는 박 의원은 “곧 미국에서 한·미FTA가 통과될텐데 우리 정부가 얼마나 많이 줬는지 미국 의원들 분위기가 좋아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늘 그렇듯 카랑카랑하고, 직성이 풀릴 때까지 송곳처럼 찌르는 도전적인 어투였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 어느새 내년이 대선이다. 지난 대선의 핫이슈 중 하나는 BBK였는데 박 의원이 당시 BBK 동영상을 알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최근 다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
박영선 의원 = 아직도 할말이 많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신은 진실을 안다. 그러나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때를 기다릴 필요가 아직 좀 더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 = BBK 특검 결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검찰개혁은 중수부 폐지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박영선 = 검찰이 2007년에 도곡동 땅이 ‘제3자의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3년간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발표했는지 자료를 요구했는데 지금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것만 봐도 검찰 수사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원칙이 없었는지 느끼게 한다. 현재 정치검찰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검찰은 뭐든 할 수 있다’는 뿌리깊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상돈 = 우리나라에서 검찰이 제일 모범적이었던 시기는 건국 초기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임영신 장관을 기소한 최대교 서울지검장, 2대 검찰총장을 지낸 김익진 검사 같은 분들은 검찰 총장이나 검사장의 본분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검찰을 보호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것이 와해돼버렸다. 경찰·검찰을 지방분권화하고 영·미처럼 기소와 수사를 분리하든가 해야지 중수부만 없애서는 결국은 또 그렇게 되지 않겠나.
박영선 = 현재 국회를 보면 검찰 출신 의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분들이 검사 이익을 대변하는 것 같은 발언을 할 때가 많이 있다.
김호기 = 중대한 정치적 국면에서 검찰이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YS(김영삼) 정부 말기 김현철 사건이나 DJ(김대중) 정부 말기 삼홍게이트, 노무현 정부 말기 BBK 사건의 경우가 그렇다.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여기에 검찰 발표가 이뤄지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검찰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상돈 = 정상적인 나라는 언론이 역사의 초안을 써야 하는데 한국은 검찰이 역사의 초안을 쓴다. 검찰이 발표하는 사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가 힘들다. 언론도 사실을 자신있게 쓰는 점이 쇠퇴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호기 = 손학규 대표의 분당을 출마로 4월 재·보선이 더 뜨거워졌다. 특히 MBC 사장 출신이 맞붙을 것으로 보이는 강원지사 보선을 보는 소감이 남다를 터인데.
박영선 = 손 대표가 분당을 출마 결정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다 집어던지는 모습을 한번쯤은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분당에 60대 이상의 은퇴한 분들도 많이 사시지만, 변화와 역동을 가진 분들도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분석한다. 분당은 현대차를 가장 팔기 힘든 지역이라고 한다. 외제차를 많이 산다는 얘기다. 그만큼 뭔가 남과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분들, 흔히 말하는 ‘강남 좌파’도 거기 산다. 엄기영 전 사장은 선배고 최문순 전 사장은 나이는 저보다 많지만 제 입사후배인데(웃음), MBC에 몸담았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상처라고 생각한다. 엄기영 선배가 왜 저렇게밖에 할 수 없을까 싶다. 최문순 의원이 이런 식으로 민주당 카드로 나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이 아프다.
이상돈 =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압승했는데도 대통령 예비후보자들 중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압도적으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과 상관없이 박 전 대표가 누리는 높은 지지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는지.
박영선 =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TV에 끊임없이 비춰진 인물 중에 박근혜 전 대표를 뺄 수 없다. 거의 국민스타 수준이다. 광고비로 계산하면 계산이 힘들 정도다. 2007년에 누군가 1000억원 정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전 국민에게 현존하는 가장 친숙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은둔생활할 때 기자로서 세 번 인터뷰했다. 그때 이 분이 은둔생활하면서 내공을 많이 쌓은 것 같다고 느꼈다. 한번 좌절을 겪은 사람과 아닌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나 지지층이 더이상 불어나지 않는 이유는 과연 이 분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인가 하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의 결단력을 요구할 만큼의 인생을 살았나 하는 의문점이 든다.
김호기 = 박 전 대표에게는 세 가지 상이한 노선이 공존한다. 첫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상징하는 국가중심주의 노선이다. 둘째,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제시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를 바로 세우자)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노선이다. 셋째, 지난해 말 복지국가를 강조하면서 제시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인 ‘한국형 복지’ 노선이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자기만의 독자적 시대정신을 보여줘야 하는데 세 가지는 사뭇 다른 패러다임들이다. 어디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 정리해야만 정치적 지지의 확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박영선 =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착한 가격’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여기서 ‘착한’이라는 의미는 적당하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이 선하다고 하는 것에는 헌신의 개념도 들어있다. 여기에 더해 끌리는 매력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 박 전 대표한테는 과연 무엇을 헌신했다고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매력 측면에서 여성지도자로서 참 단아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것도 21세기형 단아함이냐는 의문점이 남는다.
이상돈 = 박 전 대표가 탄핵 역풍 속에서 한나라당을 다시 일으켰고, 자유민주주의에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으려고 했던 국가보안법 개정이나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던 것을 제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 지지모임에 가서 보면 한나라당의 전·현직 의원들이 하는 발언 중 95%가 아버지 얘기다. 지지자들이라면서 왜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을 그렇게 내세우는지 그게 제일 답답하다.
김호기 =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의 위기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야권의 경우 연합정치의 효과는 지난번 지방선거로 마감된 듯하다. 최근 시민정치운동을 내걸고 출범한 ‘내가 꿈꾸는 나라’의 김기식 공동준비원장이 제시한 ‘빅텐트’든,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제시한 ‘가설정당’이든, 민주당에서 진보신당까지 합쳐서 큰 우산 아래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보수 대 진보의 양당체제로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영선 = 그랬으면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내 의견과 똑같은 사람하고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찬성과 반대 양쪽을 함께 모아서 한바구니에 끌고가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리더십만 생기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호기 = 78학번인 박 의원을 포함해 80년대 민주화를 주도한 젊은 세대가 민주당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발언해 진보개혁 세력의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
이상돈 = 미국도 네트워크방송 4개, 뉴스채널은 3개인데 우리나라는 종편을 4개나 무더기로 해 내년부터는 저녁 뉴스만 10여개가 될 것 같다.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방송인 출신으로 어떻게 전망하는지.
박영선 = 미국 출장에서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을 만나 21세기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타임스닷컴에서 타임스닷아이패드가 됐다”고 말했다. 쌍방향 시대라는 것이다. 종편은 20세기형 방송시스템이다. 초기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종편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특히 이명박 정부는 종편 정책으로 언론인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줬다고 생각한다.
김호기 = 우리나라 ‘여풍’이 거세다지만, 2008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권한척도(GEM)’는 108개국 중 68위, 2010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는 134개국 중 104위를 차지했다. 경제 규모 10위권의 나라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수치다. 양성평등을 위해 국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박영선 = 여성의 사회진출 문제는 앞으로 5년 안에 폭발적으로 분출될 것이다. 17대 때 처음 비례대표에서 짝수와 홀수를 나눠 여성을 배치한 것을 하나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 18대때 수도권 지역에서 민주당이 어려운 가운데 여성이 세 명이나 당선됐다.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치가 배경이 되기도 했고 생활정치를 갈망한 국민들의 욕구가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19대 총선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여성의 얼굴을 얼마나 공천하느냐가 성공 지표가 되지 않을까.
김호기 = 박 의원은 많은 여학생들의 롤모델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것에는 특히 빛과 그늘이 크다.
박영선 = 17대 비례대표 때는 좀 더 참고 방송에 남아있을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행복한 직업이었다. 정치는 분명 어렵지만 지역구 의원으로서 대중에게 뭔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축복받은 것이구나 느끼고 저를 선택해준 분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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