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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8) : 윤여준 전 장관
작성일 : 2011-04-11 19:10조회 : 4,056
이상돈-김호기 대화 (8) ; 윤여준 전 장관
ㆍ윤여준 “MB정부 실패가 보수의 실패로 귀결… ‘시민적 우파’들 분노”
ㆍ김호기 “성장·반공주의 시효 만료” 이상돈 “진보 뛰어넘는 새 담론 필요”
(정리 이상훈 선임기자)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경제와 뉴타운 건설을 앞세운 보수 세력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복지를 내세운 진보 세력이 승기를 잡았다. 총선과 대선이 한꺼번에 치러지는 내년에는 어떤 국가비전이 화두가 될 것인가. 보수 성향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진보 성향의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지난 8일 만난 ‘대화’는 국내 보수진영의 대표 브레인으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다. 화두는 보수의 위기였다. 김 교수는 “보수의 성장주의와 반공주의는 시효가 만료됐다”고 지적했고, 이 교수는 “보수가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려면 새 담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공정한 분배는 얘기하지 않으면서 시장과 경쟁만 얘기하는 건 강자의 논리”라며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한국 보수의 실패로 귀결된다는 점 때문에 ‘시민적 우파’가 우려·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수세력을 향해 “자기 혁신을 하지 않으면 절대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대화는 윤 전 장관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마포의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 보수의 위기가 느껴진다. ‘경제살리기’ ‘선진화’ ‘친서민·중도실용’ 등의 정치적 효과가 다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세력은 있는데 철학과 비전이 부재하다. 왜 이렇게 바뀌었나.
윤여준 전 장관 = 경제살리기 기대 때문에 묻지마 투표를 해줬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트리클다운(낙수효과) 이론을 내세워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갔다. 대기업이 돈 벌어야 서민한테도 혜택 간다고 했지만 결과는 거꾸로였다. 양극화만 더 심화됐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형편에 무슨 선진화를 얘기할 수 있겠나. 이 대통령이 말한 중도실용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 아니었나. 돈만 벌면 됐지 왜 과정의 정당성을 따지느냐는 CEO적 생각이다. 보수의 가치가 절제·책임·희생 등인데 보수주의자들 삶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 =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진보를 내세운 정권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보수 담론이 나온 거 아닌가. 그런데 집권해놓고 실패해 버리니까 이제는 누가 ‘보수’라고 내세울 수 있겠나.
윤여준 =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 규정하고 등장했으면 그 10년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한국 보수의 실패로 귀결된다는 점 때문에 보수쪽 상당수의 사람들, ‘시민적 우파’가 분노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냐’, ‘아닌데 보수가 몰락하게 생겼다’, ‘뭔가 행동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상돈 = 대통령제가 단임인 것을 어떻게 보시나.
윤여준 =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은 반응성과 책임성이 중요한데 재선할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이 뭐라 하든 반응을 안 보인다. 그래도 5년 단임제 때문에 한국사회가 이 정도로 민주화한 것 아닌가.
이상돈 = 우리나라 현실에서 연임을 허용한다면 첫 임기동안 연임을 위해 모든 권력을 장악할 것 같다. 당분간은 단임제로 하는 게 낫다.
윤여준 =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한국 정치가 잘못된 게 전부 제도 탓인 양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행위자 요인을 빼나. 어떤 제도든 장·단점이 있고, 사람이 제도를 잘 운영하면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다. 지금 헌법이 잘못돼 나라가 잘못됐나. 5년 단임제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김호기 =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가 제시해야 할 국가 비전은 어떤 것이라 보시나.
윤여준 =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다. 이를 완화하지 않고서는 보수주의자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 늘 헌법적 가치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헌법 119조2항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것이다. 소득의 공정한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헌법적 가치인데도 왜 시장과 경쟁만 얘기하나. 그건 강자의 논리다. 중국이 고도 성장을 지속하면서 사회적 격차가 커지고 그걸 완화하는 쪽으로 사회를 바꿔보려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펼지도 모른다. 또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후 총체적 반성에 들어갔고, 재구조화를 시작할 거다. 기존의 동북아 질서가 다 바뀔 수 있는 거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영향 받는 게 한반도라 본다면 굉장히 고민하고 긴장해야 한다. 2012년에 등장하는 최고지도자는 한·미 동맹을 뛰어넘는 전략과 비전을 내놔야 한다.
김호기 = 주목할 만한 보수담론 중 하나가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제시한 ‘공동체 자유주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이 체험한 건 반(反)공동체적인 부자 감세이고, 자유주의는 오히려 색깔론 공세와 민주주의 후퇴로 갔다.
윤여준 =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주장된 공동체주의는 자꾸 법치만 내세운다. 공동체적 가치나 형평 등은 얘기하지 않고 법치, 질서만 얘기하니까 뭘 지향하는 공동체주의냐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상돈 =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담론을 꺼냈지만 국가 재정건전성 문제도 얘기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청년층이 사회복지가 그들에게 부담을 지운다고 하고 있으니, 박 전 대표가 고도 방정식을 풀어야 할 것 같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노령연금을 도입했지만 노년층이 유 전 장관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 것을 박 전 대표는 참고해야 한다.
윤여준 =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산업화할 적에는 복지 얘기를 안해도 괜찮았다. 복지는 가정 단위에서 해결하는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국가가 할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그냥 포퓰리즘이라 공격하는 보수세력은 정말 졸렬하다.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지도자 중 그래도 (박 전 대표가) 복지 문제를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호기 = 문제는 재정건전성과 충돌한다는 거다. 경제의 지속가속성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사이 최적점을 찾아야 한다. 생산적 토론이 이뤄졌으면 한다.
윤여준 = 진실로 복지를 걱정하는 거라면 정치인들의 자세가 진지하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다른 목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나.
김호기 = 최근 구도, 비전, 정책의 측면에서 보수 대 진보의 경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문제는 인물이다. 보수든 진보든 정치적 리더의 빈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윤여준 = 3김 정치 폐해중 하나다.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람 중심으로 충원했지, 나라 장래를 내다보고 잠재력 있는 젊은이를 훈련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3김 밑에서 성장한 정치인들이 도태됐고 공백이 생겼다. 집권당 대표감을 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지 않았나. 세계적으로 이제는 리더가 강림하는 시대가 아니다. 시민 각자가 자신을 리더로 의식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김호기 =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의 본질은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소통과 사회 통합이다.
윤여준 = 소통해서 사회 통합을 이루려면 상당한 식견이 있어야 하고, 자기와 다른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그게 없다. 의사결정과정을 관리할 식견도 없고, 다른 의견을 배제하고 누르려 하지 않나. 거버넌스(국정 관리)가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고, 숙의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이상돈 = ‘보수’라는 정치철학은 풀뿌리 지방정치에서 아젠다로 내걸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김호기 = 보수세력의 풀뿌리적 기반은 성장주의와 반공주의에 있었지만 시효가 만료됐다. 정작 풀뿌리에서 주요 관심사는 일자리, 주거, 교육, 노후 등인데 이런 부분에선 상대적으로 진보세력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보수세력이 선거에 이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수구·반동과 결별해야 한다.
윤여준 = 보수 세력이 시대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고 노력도 안 했다. 국가주의, 반공주의, 성장주의 그늘에서 편하게 왔다. 지금도 냉철하게 자기성찰을 안 한다.
이상돈 = 보수가 뿌리를 내리고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보수 지식인들이 올바른 생각을 갖고 진보주의자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담론을 제시해야 한다.
윤여준 = 1980년대 중반 서구에서는 이미 이데올로기 시대가 끝나고 생활정치 시대가 왔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세력은 시대의 변화 흐름에 굉장히 둔감했다. 2000년 16대 총선 공천 준비 작업할 때 기가 콱콱 막히더라. 그때 사회에서 거센 낙천 운동이 불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지도부는 관계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짧은 시간 내에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김호기 = 내년 두 개의 선거를 앞둔 보수와 진보 세력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시겠나.
윤여준 = 보수세력은 자기 혁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 자기 혁신을 하려면 성찰을 해야 한다. 진보세력의 경우 지적 우월감이 많은데, 이젠 시민 속으로 들어가 활동해야 한다.
* 이상돈 교수의 대화 후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에서 계속 근무한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는 윤여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은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해에 환경부장관을 지냈는데, 나는 그 때 ‘환경학자’로서 윤 전 장관님을 잠시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10년 동안 뵐 일이 없었다.
윤 전 장관님과 내가 자주 마주치게 된 계기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다. 나는 이명박(MB) 정권은 “태생부터가 문제”라고 보아서 이런저런 기회에 ‘독설’을 자주 퍼부었는데, 윤 전 장관이 보수집권 시절의 고위공직을 지낸 분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MB 정부를 비판하신 탓에 이따금 만나게 된 것이다. 윤 전 장관님은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해서 ‘4대강 국민소송’ 등을 통해 반대운동편에 서 있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다.
이번 대화에서는 ‘4대강’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못했고 임박해 있는 재보선, 내년 총선과 대선에 임하는 여야 정당의 전략과 비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내건 ‘복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과연 복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지에 대해서는 나는 다소 유보적이다. 오히려 물가와 청년 실업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지난 대선 때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려서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른바 ‘보수’ 정권이 들어섰는데 오히려 경제가 더 없이 심각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내년 총선과 대선은 ‘정권심판’과 ‘민생파탄’이 주된 쟁점이 될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재정건전성’과 ‘일자리 창출’ 같은 문제가 보수를 표방하는 후보를 옥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없어서 가볍게 농담을 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도무지 명색이 보수 정권에 병역면제가 왜 그리 많아. ‘노블리제 오블리주’는 커녕 기본의무나 해야 할 거 아냐”하는 윤 전 장관의 웃음소리가 명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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