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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9) : 조국 교수
작성일 : 2011-04-18 16:32조회 : 4,565
경향신문 2011년 4월 18일 기사
[이상돈·김호기의 대화](9) 조국 서울대 교수를 만나다
(정리 | 강병한 기자)
ㆍ이상돈 “조 교수, 정치에 뛰어들라” …김호기 “정책 만드는 지식인도 필요”
ㆍ조국 “내 할 일은 진보진영 구조조정… 야권 연합하면 마이크 잡겠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왜 4대강 사업에 침묵하는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왜 ‘전경련 노사정책과장’이 되어버렸는지, 조·중·동은 왜 잘사는 사람이 진보를 추구하는 것만 비난하는지….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가 9번째 대화에서 마주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상에 대한 회의와 도전적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보수에선 ‘리무진 좌파’, 진보에선 ‘좋은 상품’이라고 부르는 ‘강남 좌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보수 성향의 이 교수는 “조 교수가 사실상 정치를 하고 있다”며 정치 입문을 주문했다. 진보 성향의 김 교수는 정책을 생산하는 전문적 지식인을 주문했다. 조 교수는 “제 역할은 진보 전체의 구조조정에 기여하는 것”이라면서도 “야권이 연합정부에 합의하면 공동선대위에 합류하겠다”고 말했다. 대화는 쌍용차의 해법을 두고 갈렸다. 이 교수는 “진보적 정치인들이 근로자보다 더 강경하게 교조적으로 갔던 게 불행을 키웠다”고 봤고, 김 교수는 “노동이 있는 성장과 민주주의로 가는 새 패러다임”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내년 4월 전후로 진보진영이 (노동 문제의) 사회대타협을 먼저 들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는 지난 11일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상돈) = 최근 한 신문이 조 교수를 강남좌파라고 지칭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조국) = 저는 강남좌파를 자임한 적이 없다. 보수언론 등에서 강남좌파라고 딱지 붙이고 야유하기에 ‘마음대로 해라. 개의치 않는다’고 대응한 것이지 불러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 강남좌파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비판적으로 사용했던 호칭이다. 원래는 ‘욕’이었는데 지금은 ‘쿨’한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이상돈 = 문화적으로 볼 때 강남좌파는 민주노동당 등 좌파와 공통점이 많나,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강남우파와 유사성이 많나.
조국 = 물질적으로 강남우파와 겹치고 의식은 진보와 겹친다. 의식과 존재의 모순을 자각하면서 약자와의 공감과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남에 살면 우파가 돼야 한다는 것은 기계적 유물론이다. 강남좌파는 진보의 외연을 넓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진보의 본연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리무진좌파’라고 간단히 비난할 일은 아니다.
■ 김호기 교수 “‘신자유주의’ ‘토건주의’가 이명박 정부 지탱하는 양축”
김호기 연세대 교수(김호기) = 강남좌파는 포스트 386세대의 ‘여피 좌파’다. 386세대가 고소득 전문직 또는 화이트칼라가 되면서 정치적으로는 진보적 성향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파의 주류는 역시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이다. 강남좌파에는 사회적 약자를 더욱 배려하는 성찰적 태도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일부 보수세력의 시각도 문제다. 서구사회처럼 경제적 부를 갖는 사람도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질 수 있는데도 ‘우파=부자’ ‘좌파=빈자’라는 낡고 뻔뻔한 이분법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돈 =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빈자그룹이 아닌가.
조국 = 우리나라 투표 성향에서 이른바 ‘계급배반 현상’이 있다. 못사는 동네에서 보수세력 표가 더 나온다. 강남좌파라고 비판하는 조·중·동에 대해 묻고 싶다. 못살면서 보수를 지지하면 비판을 안 하면서, 잘살면서 진보를 추구하는 것만 비난하는가.
김호기 = 이명박 정부를 어찌 평가하는가.
조국 =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해왔는데 지금은 우리사회 수준을 10년 전으로 돌리고 있다. 표현의 자유 후퇴가 심각하다. 정부 정책을 비판한 네티즌, 기자, 피디를 감옥에 넣겠다고 시도하는 나라가 OECD 국가 중에 어디에 있나. 사회·경제적 차원에선 친부자 정부가 분명하다. 경제개발 전략으로는 4대강 사업 외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4대강의 몇몇 보는 향후 해체해야 한다. 대북 정책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보수라서 문제라기보다는 무능정권이 아닌가.
이상돈 = 시멘트 구조물 해체는 쉽다. 다이너마이트 넣고 10분이면 와르르…. 어려운 것은 생태계 회복이다. 4대강 사업의 처리 문제가 내년 총선과 대선의 쟁점이 될 것이다.
김호기 = 이명박 정부를 지탱하는 양축은 신자유주의와 토건주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구적으로 보수든 진보든 전환을 모색하는데 이명박 정부만 유독 신자유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또 중대한 미래과제 중 하나는 세계화와 정보사회 진전에 따른 미래지향적 산업구조로의 재편인데,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1960·70년대 토건산업으로 회귀해 왔다.
조국 = 박근혜 전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4대강 사업에 대해 한번도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 나라의 방향에 대한 중요한 정책인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곤란하다. 이 문제를 말하지 않고 자신에게 최고권력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문제다.
이상돈 = 조 교수는 최근 펴낸 <진보집권플랜>에서 진보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묻고 싶은 것은 쌍용차 사태다. 쌍용차는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못 만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민노당이나 진보적 국회의원들이 노조를 말려서 경영판단을 따르도록 달래야 하는데 연좌를 해서 사태를 더 비극적으로 만든 것 아니냐. 우파도 문제지만 진보세력도 교조적인 것 아닌가.
■ 조국 교수 “강남좌파, 진보의 외연 넓혀 본연 흐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조국 = 쌍용차 사태의 근본원인은 노동자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경영의 실패를 노동자에게 부담 지우려 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상돈 = 노동의 실패도 결국 경영의 일부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당시 현명한 대처는 무엇인가.
조국 = 디자인이나 판매, 서비스 등 경영에 노조가 관여할 수 없다. 일방적 정리해고가 노동자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과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했다.
김호기 = 이 문제는 세계화시대 ‘노동의 위기’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시각에서는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고, 국민국가의 시각에서는 노사 간 대타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상돈 = 민노당이 보다 타협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근로자들보다 더 강경했던 것이 더 큰 불행을 키우지 않았나.
조국 = 쌍용차가 정면충돌로 간 것은 노사문제도 있지만 노사정의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에 노사정위원회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 지난 정부 때는 삐걱거리면서도 굴러갔지만 지금은 그 틀 자체가 없어졌다. 노동부 장관은 전경련 노사대책과장이 되어버렸다. 노동운동이나 진보정당의 투쟁 일변도 전략에 대해 일정하게 비판적이지만 지금은 투쟁 외에 다른 것을 할 틀 자체가 없어졌다.
김호기 =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이후 위기를 겪고 최근 진보가 상당히 소생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진보의 자력보다는 일종의 반사이익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은 진보적 정체성이 여전히 취약하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50·60년대 서구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조국 = 비전과 정책대안의 핵심은 민생·민주다. 즉 노동과 복지를 중심에 두고 평화와 환경이 결합되는 것이다. 노동과 복지를 G20 수준의 나라에 걸맞게 구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문제의식이다. 평화 문제는 6·15 공동선언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호기 = 진보세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의 제시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해법, 노사 간 대타협 등에 대한 보수와의 경쟁에서 설득력 있는 정책대안이 필요하다. ‘노동 없는 성장’ ‘노동 없는 민주주의’에서 ‘노동 있는 성장’ ‘노동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패러다임으로 나가야 한다.
조국 = 진보진영이 내년 4월 전후로 적극적으로 사회대타협, 사회협약을 먼저 들고 나와야 한다.
김호기 = 야권통합 전략은 어떻게 보나.
조국 = 지금 시점에서는 한꺼번에 묶지 못한다면 단계적으로 소통합, 중통합이라도 먼저 해야 한다.
■ 이상돈 교수 “쌍용차 사태 더 악화시킨 건 교조적으로 변한 진보세력 탓”
김호기 = 바람직한 야권통합에는 가치, 정책, 인물의 ‘3중 연합’이 필요한데, 여전히 인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 교수가 참여하는 ‘내가 꿈꾸는 나라’ 모임이 가치와 정책 연합에 큰 기여를 해 줬으면 한다.
이상돈 = 최근 한 신문이 조 교수한테 비판적 지식인으로 남거나 아니면 정치를 하라고 이례적으로 최후통첩 같은 칼럼을 썼다. 그 칼럼이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조 교수는 이미 사실상 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를 할 것 같으면 내년 총선이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나름대로 성공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다.
조국 = 지식인이자 학자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광의의 정치는 이미 하고 있다. 그 보수신문은 양자택일하라고 겁박했지만, 개의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이상돈 = 우리나라 정치는 해서 안될 사람이 정치를 하고, 해야 할 사람이 빼서 문제다. 조 교수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깰 수 있다.
조국 = 아직까지 정치인으로 변신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제가 할 역할은 진보진영 전체 구조조정에 기여하는 것이다. 야권이 연합정부에 합의하면 공동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하겠다. 마이크 잡으라고 하면 마이크 잡겠다.
김호기 = 지식과 정치를 너무 배타적으로 보는 우리 문화도 문제다. 조 교수는 전공이 법학이어서 정치와 정책에 기여할 부분이 작지 않다. 권력비판에 주력하는 보편적 지식인보다 정책을 생산하는 전문적 지식인의 역할도 의미가 크다.
이상돈 = 그럼에도 누군가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치다.
조국 = 저는 정치적 결벽증이 없다. 동시에 정치적 근육도 없는 것 같다. 정치 문제는 머리 문제뿐 아니라 근육의 문제다. 근육이 없이는 야전에서 백전백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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