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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10) : 이해찬 전 총리 (경향)
작성일 : 2011-04-27 00:24조회 : 3,443
경향신문 2011년 4월 25일자
[이상돈·김호기의 대화](10)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나다
(정리 | 장은교 기자)
ㆍ이해찬 “현재 야당 단독 집권 불가능… 슈퍼스타K처럼 후보 선출해야”
ㆍ김호기 “연합정치 - 시민운동 결합을” - 이상돈 “보수세력 결집 부를 수도”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가 마주한 10번째 대화의 주인공은 이해찬 전 총리였다. 야권의 ‘정치적 병풍’을 자처한 그는 여전히 숫자나 통계에는 막힘없이 한결 소탈해진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 전 총리는 “현재 야당은 단독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09년 가을부터 그가 이끌고 있는 시민운동단체 ‘시민주권’의 화두도 그것이었다. 대화는 야권연대로 시작됐다. 진보성향의 김 교수는 “개혁진영이 진보진영에 당선가능한 지역에서 공천권을 약속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보수성향의 이 교수는 “야권연대가 너무 강해지면 보수세력의 결집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봤다. 이 전 총리는 “시민과 분리된 정당은 발전할 수 없다. <슈퍼스타K>처럼 국민들이 참여해서 후보를 검증하고 선출해야 한다”며 “소셜미디어의 발달이 내년에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은 “후보단일화-연립정부-정책공조가 패키지로 가야 한다”는 마침표였다. 중간에 박정희 체제의 공과를 두고 다시 열기를 띠었던 대화는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시민주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 = 2008년 총선 때 출마를 포기하고 최근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이 시대에 이 전 총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고 돌아왔나.
이해찬 전 총리(이하 이해찬) = 정치권으로 돌아온 게 아니고 내 경험을 살려서 시민정치활동을 돕고 싶다. 내년에 민주진보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가장 큰 개혁이라고 보는데 현재의 야당은 단독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당이나 연합후보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난해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을 보니까 당대당 협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는 당이 추천한 사람에 대해 국민이 선택을 강요받아왔다. 감동도 못주고 대승하기도 어렵다.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면 후보 검증과정부터 <슈퍼스타K>처럼 국민들이 참여해서 후보를 검증하고 선출하는 방식의 국민운동연대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을 만들려고 한다.
▲ “공천단계부터 선거 주도할 시민정치활동 연대기구 필요” - 이해찬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 일전에 “총선 없이 대선 없다”고 했는데 그 의미는.
이해찬 = 총선에서 과반수를 못 얻으면 군소정당이 될 텐데 그것으로는 대선에서 집권하겠다는 호소력이 떨어진다. 야당이 다수당 되면 4대강 문제, BBK, 구제역, 다스의 장학재단 출연 등이 모두 문제가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면 그런 문제가 걸러지지 않고 야당이 무력화될 것이다. (야권이) 다수당 된다는 것은 부산·경남지역에서도 상당히 표가 나온다는 것이고 지역주의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이다.
김호기 =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민주대연합론’,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정치세력이 뭉치자는 ‘진보대연합론’, 미국 민주당처럼 모두 한 우산에 들어가자는 ‘빅텐트론’ 등 여러 담론이 논쟁 중이다.
이해찬 = 세 가지 방법 모두 결국은 단일후보 전략이다. 그 바탕에는 연립정부가 깔려 있다. 후보단일화와 연립정부, 정책공조가 패키지로 묶이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라는 가치로 이미 정책공조는 시작했다고 본다. 독자성을 인정하는 빅텐트론에 가장 공감하지만, 현재 우리 조건이 거기까지 가기엔 신뢰나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서 연합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본다.
김호기 = 가치와 정책, 인물의 삼중연합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문제는 어떻게 단일후보를 만드느냐이다.
이해찬 = 한나라당에서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야당을 단일정당으로 만들자는 얘기도 탄력을 더 받을 것이다. 그러려면 제도적으로 당원이 아닌 사람도 참여할 수 있고, 다른 정당도 참여할 수 있도록 법개정이 필요하다. 공정한 절차만 지켜진다면 작은 야당들도 그런 방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열려가고 있다.
김호기 = 정치권의 연합정치와 시민정치운동, 톱다운(하향식)과 보텀업(상향식)이 생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 “DJ 시절 주식·부동산 거품있어, 현 정권에서도 교훈으로 삼아야” - 이상돈
이해찬 = 나라와 국민은 민주화되고 발전하는데 우리 정당은 6월 민주항쟁 이후 25년 동안 발전을 못하고 있다. 유권자와 정당이 유리돼 있기 때문이다. 시민정치활동이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고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년 공천과정에 유권자들이 참여해서 선거인단을 공모하고 공천심사단을 만드는 시민정치활동연대기구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상돈 = 야권연대가 너무 강해지면 반대로 보수세력의 결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해찬 = 우리 정치지형에 합리적 보수가 있고 합리적 자유진영이 있고 그 다음에 진보세력이 있으면 좋지만, 우리 정서는 같은 야당으로 보고 차이를 안 둔다. 민주당과 민노당의 차이를 못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다. 성공 여부는 작은 야당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정할 것이냐, 당내 계파의 독자성을 어떻게 인정해줄 것이냐에 있다. 상호간 신뢰가 필요하고 각 당이 주장하는 역점 정책에 대한 공조를 어떻게 해나갈 것이냐. 예를 들어 민노당의 비정규직 정책을 어떻게 민주당의 정책으로 수용할 것인가 등이 중요하다.
김호기 = 개혁진영이 진보진영에 당선가능한 지역에서 예를 들면 30% 이상의 공천권을 약속하는 등 소수를 보호해야 한다.
이해찬 = 일률적으로 몇%라고 할 수 없어도 공조하겠다는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상돈 = 김대중 정권 인수위원회 간사를 맡았을 때 “온 국민이 쪽박을 찰 수는 없다”고 한 발언이 지금도 인상깊다. 거기에 호응해서 근로자들이 양보했고 정리해고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에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굉장했고 그 결과 돈 있는 사람들이 더욱 재산을 불렸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해찬 = 초기엔 외환위기 수습을 잘했는데 후기에는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재정 팽창정책을 많이 썼다. 카드도 남발하고 공기업 매각도 많이 했다. 2001년에 와서 거품이 많이 생겼고 그것이 진정이 안돼 2003년에 카드 위기까지 겪었다. 재정이 과다하게 방출되면 돈을 버는 것은 언제나 부자들일 수밖에 없다. 국가 운영에서 팽창 정책이라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상돈 = 현 정권에서도 교훈으로 삼을 점이 있을 것 같다.
이해찬 = 단기외화차입금을 관리하지 못하면 위기는 언제나 올 수 있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에겐 잘못된 신드롬이 있다. 외환보유액이 많아져야 한다, 성장률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률은 주로 고환율을 통해 수출하는 대기업을 위주로 높이게 돼 있다. 실제 국민의 생활과는 관계가 없다. 외환보유액만큼 단기차입금이 들어와 있게 된다.
김호기 = 5년 단임제 아래서 집권 후반기에는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되풀이된다.
▲ “당선 가능한 지역의 공천권 일부 개혁진영이 진보진영에 할당을” - 김호기
이해찬 =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으니까 정부의 추진력은 굉장히 약화될 것이다. 5년 단임구조의 구조적 한계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뿐만 아니라 이 정권은 정책에서 선후와 경중, 완급을 못 가리는 것 같다. 제일 판단력이 없다고 본 것이 구제역 문제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350만마리의 짐승이 살처분됐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부가 있나. 10만마리가 넘으면 대책을 바꿨어야 하는 것이다. 4대강도 선후를 전혀 잘못 잡았다. 지류 공사는 이제 다음 정부의 몫이 되는 것 아닌가. 고환율을 유지하면 가격경쟁력은 갖지만 제품경쟁력은 낮아지고 결국 생산성 향상이 안된다. 당연히 소비자 물가는 매우 높아지게 된다. 정책의 균형이 없으니 생기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진짜 무능한 보수다.
이상돈 = 박정희 대통령 평가가 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해찬 = 1960~70년대 대부분의 나라들이 수입대체지향적 정책을 썼다. 말하자면 방어적 정책인데, 우리는 인적자원만 있는 나라니까 수출지향적으로 간 전략 자체는 성공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안 지켜진 것이다. 독재체제를 유지한 관치경제로 경제구조상 한계가 왔다. 민주주의 없이는 시장경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하게 됐다.
이상돈 = 외환위기가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보나
이해찬 = 그렇다. 이자율이 15%대고 부채구조가 500%를 넘었다. 그걸로 어떻게 시장경제가 되나.
김호기 = 유신체제가 주는 교훈은 권위주의체제가 단기적으로 경제성장에 효율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시장경제를 구조적으로 훼손시킨다는 데 있다.
이상돈 = 4대강 같은 경우 반대하는 관료들도 있었는데 어떻게 몇 달 만에 입장이 확 뒤집어지는지 참 놀랐다.
이해찬 =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 회의에서 이견을 제시하니까 다음부터 못 나오게 했다고 하더라. 자기 신변이 문제가 되니까 엎드려버리는 것이다. 내가 총리할 때 매주 정책조정협의회를 했는데 전원에게 먼저 의견을 말하도록 하고 나는 마지막에 정리했다. 리더가 먼저 속내를 보이면 토론이 안된다.
[이상돈 교수의 대화 후기]
이해찬 전 총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의정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뜨거운 환경 이슈가 많았다. 골프장 허가 남발, 수돗물 파동 등 큰 문제가 많았는데, 그 때 자주 있었던 환경문제 토론회 자리에서 ‘환경 교수’로서 이 전 총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국회출입 기자들은 물론이고 국회 사무처 직원들도 ‘의정활동 최우수 의원’으로 이 전 총리를 지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전 총리는 1998년 초에 김대중 정권 인수위원회 간사로서 활약했는데, 그 때 정리해고 입법을 추진하면서 “온 국민이 쪽박을 찰 수는 없다”고 한 발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말 한마디에 노동계가 양보를 한 셈인데, 사실 그 한마디만큼 당시의 상황을 잘 전달한 것이 없다. 이 전 총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선일보의 내부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시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이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년을 돌아 볼 때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은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빈부 차이가 심화된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경제회복을 위해 취한 조치가 처음에는 주식 붐으로 발전했고, 그 거품이 갈아 않는 듯하더니 2002년-2003년 정권 교체기에는 집값이 폭등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장을 잃고 집을 싸게 처분한 사람들이 느꼈을 좌절감이 어떠했을지는 당해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돈 있는 사람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헐값에 나온 주식과 아파트를 사들여서 큰 돈을 벌었다. ‘온 국민 쪽박’을 면하기 위해 치른 대가치곤 너무 컸고, 우리 사회는 그 후유증에서 아직도 헤매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이 전 총리를 만나면 그것을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 전 총리도 그것이 부담스러운지 답변은 상당히 우회적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후에 이 전 총리는 총선 출마를 접고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아마도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이 정치”라는 말처럼 이 전 총리는 이제 ‘시민정치’라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그 결과가 2012년에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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