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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12) : 김상곤 교육감 (경향)
작성일 : 2011-05-09 20:46조회 : 3,097
경향신문 2011년 5월 9일
[이상돈·김호기의 대화](12) 취임 2주년 맞은 김상곤 경기교육감을 만나다
(정리 정유진 기자)
ㆍ이상돈 “평준화 실패작 … 수월성 강화해야”
- 김상곤 “성적 상향평준 성과 … 형평성 중요”
ㆍ김호기 “입시·학벌주의가 교육 문제 핵심”
- 김상곤 “대학, 초·중등 연계 공공성 높여야”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불리지만 동시에 ‘교육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과 스승의 날이 끼어 있어서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가 마주한 열두번째 대화의 주인공은 6일로 취임 2주년을 맞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다. 무상급식부터 학생인권조례에 이르기까지, 최근 뜨거운 화두가 된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실험은 모두 그가 교육감으로 있는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어린이날인 지난 5일 경향신문사에서 이뤄진 대화의 자리에서 세 사람은 모두 “공교육 붕괴, 교권 실추, 사교육에 대한 무한의존 등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해법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났다. 이상돈 교수는 “평준화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으며, 수월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호기 교수는 “신자유주의식 교육은 한계에 도달했고, 국가적 수준의 개혁이 요구된다”고 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공공성을 중시하는 미래지향적 혁신교육을 모색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 “평준화로 계층간 분리 심해져… 학생의 ‘학교 선택권’ 존중을
- 이상돈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 김 교육감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학술운동을 주도해왔다. 교육감을 맡은 것도 학문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는데, 김 교육감이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하 김상곤) = 첫 질문부터 너무 어렵다(웃음). 교육의 본질은 ‘전문성’과 ‘전인성’을 갖춘 건강한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초·중등 교육은 지나치게 시장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방향으로 바꿔나가고 싶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 = 교육감 선거 투표율이 저조한 데다, 교육자가 선거운동에 뛰어드는 모습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선제를 폐지하고 광역자치단체장의 러닝메이트 형식으로 뽑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김상곤 =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공동으로 치러진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경우 교육감 투표율이 50%까지 올라갔다. 낮은 투표율은 공동 지방선거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러닝메이트 제도는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취지와 배경을 생각하면 적절치 않다. 교육감 직선제는 우리 사회 민주화와 교육개혁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교육주체들과 시민사회의 염원에 의해 도입된 것이다.
김호기 = 많은 시민들이 김 교육감 하면 무상급식을 먼저 떠올린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는 무상급식을 중학교와 유치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김 교육감의 무상급식 정책은 복지국가 담론을 공론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위기에 놓인 진보진영에 돌파구를 만들어줬다. 그 밖에 학생인권조례나 혁신학교 지정 등 주목할 만한 많은 정책들도 도입했다.
김상곤 = 공교육 붕괴, 교권 실추, 사교육에 대한 무한의존 등 우리 교육의 고질적 문제들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든다. 무명에 가까웠던 제가 2009년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겠다는 초·중등 학부모들의 절실한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김호기 = 이른바 ‘김상곤 벨트’라는 말이 있다.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김상곤 후보를 지지했는지 분석해 보니 서울과 가까운 신도시에 사는 30~40대 젊은층의 지지가 많았다. 요즘 이들 젊은 부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바로 자녀 교육이다.
김상곤 = 처음 출마했을 때만 해도 저는 ‘인지도 제로’였다. 그런데 선거벽보가 붙고 정책자료집이 배포되기 시작하면서 신도시와 위성도시의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차츰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후보로서 우선순위를 둔 정책방향은 먼저 교육복지의 기본을 튼튼히 다지자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근대적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 학교문화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권과 학생인권 모두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
이상돈 = 개인적으로 교육이란 지식을 발전시켜 후대에 잘 전달하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선 수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때는 미국에서도 (자율성과 흥미를 강조하는) ‘열린교육’이 인기를 끌었지만, 교육 공동화와 학교 황폐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수월성 교육으로 되돌아가는 추세다.
김상곤 = 우리 교육의 전근대성을 해소하자는 측면에서 열린교육의 취지 자체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 다만 우리의 열린교육 정책은 관 주도로 이뤄지면서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고, 장관이 바뀌면서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우리가 추진하려는 혁신교육은 과거 정부 주도이던 열린교육 방식과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이노베이션, 즉 혁신인데 현장의 교사가 혁신 주체로 설 수 있게 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자는 것이다. 수월성도 중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기회의 가능성과 평등성 역시 중요하다. 미래지향적 선진교육을 하려면 열 사람을 한 줄로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열 사람이 동시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 “초·중등 교육 시장주의 지나쳐… 공교육 붕괴 등 이미 임계점”
- 김상곤 교육감
김호기 = 지난해 고려대 김예슬씨가 자퇴해서 화제가 됐다. 올해는 카이스트(KAIST) 사태가 일어났다. 수월성과 경쟁력만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교육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 초등학생들도 학원에 다니고, 이제는 대학생마저 스펙을 쌓기 위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은 정상이 아닌 듯하다. 우리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김상곤 = 교육이 암기주입식 위주이다보니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진다. 학생 자살률이 높은 이유도 이러한 교육의 한계 때문이다. 이제는 제대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공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전인성을 갖추고, 본인의 진로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주체들의 마인드뿐 아니라 교육의 콘텐츠까지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혁신교육이란 이름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지금 경기도에는 71개의 혁신학교가 지정돼 있는데, 첫해만 하더라도 혁신학교 지원 비율이 1.5 대 1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는 9 대 1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상돈 = 우리 때는 대학 진학률이 20% 수준이고, 공고·상고 졸업생의 취직률이 100%였다.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고 공고나 상고를 나오면 일자리가 없다. 사회구조 변화와 교육이 어긋나 있는 상황에서 교육혁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호기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권과 무관한 국가적 수준의 교육개혁 특별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위원회에서 10~20년의 장기계획을 짠 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머지않아 대학정원보다 지원학생 숫자가 더 줄어드는데, 이런 문제는 임기가 5년인 특정 정부가 해결 못한다.
김상곤 = 전문계고를 졸업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대학에 가야 하는 지금 구조는 문제가 있다. 핀란드는 교육부 장관이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20년 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일관된 교육개혁을 추진해왔다.
이상돈 = 평준화 정책이 성공했다고 보는가. 나는 실패했다고 본다. 평준화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각종 특목고가 생겨나지 않았나. 평준화 시대에 계층 간 분리현상은 옛날보다 심화됐다. 비평준화 시절 경기고에도 윤택한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다녔지만, 지금의 특목고만큼은 아니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조영래도 경기고에 다녔고 후에 인권변호사가 됐다. 그러나 지금 특목고에선 조영래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다.
▲ “정권 상관없이 장기계획 추진할 국가 수준 교육개혁특위 필요”
- 김호기 교수
김상곤 = 고교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외국어고, 자립형 사립고, 자율형 사립고 등이 세워졌는데, 대학입시 명문고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고교 교육이 왜곡됐다. 현재의 특목고는 실패작이다. 그러나 평준화가 실패했다는 의견에는 생각이 다르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연구결과들이 평준화가 학생 성적을 상향평준화시켜 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상돈 = 평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자기 자녀는 특목고에 보내고 조기유학 보내는 게 현실이다. 평준화는 결국 공허한 이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학생이나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도 존중해야 할 가치다.
김상곤 = 공교육 교사를 길러내는 사대·교대 교수들조차 자기 자녀는 학원에 보낸다는 말도 있다.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우리 교육현실의 구조적 한계로 보고 싶다. 그러나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리 교육이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돼 가고 있다.
김호기 = 한국 교육의 문제는 결국 대학입시의 문제다. 그 뒤에는 학벌사회라는 조직원리가 도사리고 있다. 다른 나라에도 어느 정도의 학벌은 있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심하다. 학벌사회의 가장 나쁜 점은 패자부활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상곤 = 정말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학벌주의, 서열주의에 매몰돼 있다. 이는 정치·사회·경제 모든 부분에서 함께 검토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김호기 = 입사지원서에 출신학교를 쓰지 않게 한다거나 국립대 네트워크 방안을 고민하는 등 제도적·조직적 수준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교육기관,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합심해서 풀어야 할 문제다.
이상돈 = 문제는 학벌 자체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는 거다. 정부의 실패는 지방국립대를 키우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미국만 해도 좋은 주립대가 많지 않나.
김상곤 = 우리나라는 전체 대학에서 사립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80% 이상으로 너무 높다.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교육의 변화는 초·중등 교육과 함께 가야 한다. 초·중등교육이 입시에 매몰되면서 인문학적 소양과 예체능 부분이 쇠퇴하고 축소돼왔다. 경기도의 혁신교육은 인문학과 예체능이 적절히 병행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려 한다. 중학교 3년과 고교 1년은 대학입시를 의식하지 않은 폭넓은 교육을 하고, 마지막 고교 2년을 창의형 진학진로으로 운영하자는 ‘4+2제’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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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 이상돈 교수의 후기 }
김상곤 교육감은 서울대 상대 1969년 입학이고, 나는 서울대 법대 1970년 입학이니까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 온 셈이다. 나는 당시 경기고를 졸업했고, 김 교육감은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정원이 160명이었는데, 1970년 입학생 중에 경기고 졸업생이 48명이고, 그 다음으로 서울고와 경북고, 광주일고 등 지방명문고 졸업생이 많았다. 서울대 입학생 중에 경기고를 제외하면 지방명문고 졸업생이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고교평준화가 도입됐으며, 30년 이상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평준화’는 말 뿐인 것 같다. 과거에 서울과 지방의 명문고가 차지했던 자리를 외고 등 특목고와 서울 강남 지역의 고교가 차지하고 들어왔을 뿐이다. 지방국립대의 위상이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보다 못해진 것도 이 기간 동안 일어난 현상이다. 수도권 집중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김 교육감과 내가 40년 전에 대학입학시험을 볼 때엔 시험이 어려워서 변별력이 확실했다. 언제부터인가 입학시험문제가 어려우면 사교육이 심해진다면서 교과서 위주로 ‘쉬운 입시’를 치러 왔지만 사교육은 결코 수그러지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교육개혁을 이룩했다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교육학자들이 ‘열린 교육‘ 등 이런저런 교육이론을 만들어서 교육을 개혁하면 개혁할수록 오히려 교육이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제조업 공동화와 사무자동화로 인한 취업환경의 변화는 모든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지만, 대학진학률이 85%나 되는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구조적 어려움을 안고 있다. 대학에선 교실붕괴와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어, 특목고와 SKY 대학을 향한 무한경쟁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 교육감은 대화 중 ‘교육 민주화’를 자주 언급했는데, 그러한 ‘민주화’ 담론이 과연 특목고와 강남 교육이란 ‘특권교육’, 그리고 대학교육의 계층화와 공동화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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