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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14) : 지방분권화 (경향)
작성일 : 2011-05-23 00:17조회 : 3,201
[이상돈·김호기의 대화](14) 참여정부 마지막 정책실장 성경륭 한림대 교수
(정리 | 임지선 기자)
ㆍ성경륭 “盧정부 공공기관 분산 배치, 이해당사자 잡음 없이 합의”
ㆍ이상돈 “혁신도시, 너무 빠른 진행으로 부작용”
ㆍ김호기 “노무현 시대는 지나간 게 아니라 안 왔다”
대한민국은 지금 ‘지역 갈등’의 신열을 앓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갈등부터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까지…. 국토 균형발전의 상징이어야 할 사업마다 지역 간 이해 다툼의 막장에 빠진 것이다. 보수 성향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진보 성향의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만난 열네번째 대화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정책실장이자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맡았던 성경륭 한림대 교수이다.
성 교수는 “공공기관 175개를 전국에 배치할 당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모여서 그라운드 룰을 만들고 일절 잡음 없이 합의했다”면서 현 정부에 대해 갈등 조정과 관리의 미숙함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방 균형발전에 반대하지 않지만 노무현 정부 때 과격한 방식으로 진행하다보니 지금 역작용으로 수도권 발전론까지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균형발전은 지방 양극화의 차원에서 추진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균형발전은 정치적 의제로 추진됐다”고 비교했다.
대화는 보슬비가 내리던 21일 오후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됐다.
▲ “노무현 정부 목표는‘사람 사는 세상’…
균형발전은 그 수단” - 성경륭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다. 노무현 정부를 대표한 지식인으로서 정치가로서의 노무현과 행정가로서의 노무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무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무엇인가.
성경륭 한림대 교수(이하 성경륭) = 노 전 대통령은 굉장히 이상주의자이면서도 현실주의자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배제된 아쉬움을 자주 언급했다. ‘왜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현실에서 실패하는가’ 하는 고민이 많았다. 재임기간 이상과 현실을 결합시키려고 많이 노력했다. 일화를 소개하면, (노무현 정부) 3년차 때쯤 대전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은퇴 이후에 고향에 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균형발전 정책을 주장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도리라고 했다. 모든 대통령이 퇴임 후 서울에서 지내는데 균형발전 정책을 책임진 대통령이 분명하게 그 가치를 인정하고 실천하는 것이어서 감동적이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아직 어렵다. 때 이른 비극적 죽음 때문이다. 최근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 대한 반사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구상한 ‘꿈’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을 의도적으로 분열시켰다. ‘별놈의 보수’ 등등의 발언으로 적을 스스로 만들었다. 정책 자체보다도 ‘태도’의 문제가 더 컸다.
성경륭 = 그 같은 문제제기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전혀 반대 느낌이었다. 굉장히 민감한 사안들이 많았는데 보수 언론과 보수 진영을 비롯해 우호적 환경이 아니었다. 거의 포위됐다는 느낌이었다. 또 양극화가 문제됐을 때는 진보 진영조차 공격했다. 그러다 보니 전체 정책내용보다 대통령의 ‘말’만 특별히 부각돼 손해를 많이 봤다.
김호기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의 정치’는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어떤 리더보다도 대중 친화적인 호소력을 가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도하지 않은 설화를 겪었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을 보니까 답답한 측면이 작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여대야소 등 정치적으로 다수였지만, 언론과 기업을 포함하면 사회적으로 여전히 소수였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노무현 정부의 업적은 첫째 지역주의 극복과 균형발전 모색, 둘째 한반도 포용전략 추구, 셋째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빛과 그늘을 어떻게 평가하나.
성경륭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극복하는 데 의미가 있다.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까 대·중소기업과 지역 간, 계층 간 양극화가 심화됐다. 그 과제가 노무현 정부로 이양됐다. 여기서 노무현 정부는 동반성장, 지역 간 균형발전, 복지를 중시하는 사회투자, 남북 간 평화·공동번영 등의 전략을 택했다. 과거 낡은 모델에서 벗어나 잠재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략 구상과 실천이 참여정부에서 시작됐다. 그것이 빛의 요소다. 그늘은 아무래도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도 “민생과 양극화 문제가 나한테는 송곳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슴 아픈 과제였다. 2002년 카드대란 이후에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SK사태, 북핵사태 등이 한꺼번에 쏟아지니까 거기에 집중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아쉽다.
▲ “‘꿈’은 좋았으나 너무 많은 적 만들어…
내용보다 ‘태도’에 문제” - 이상돈 교수
이상돈 = 균형발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수도 이전 공약은 대선 막판에 나왔는데 일종의 포퓰리즘 정치 아닌가. 공약이 신중하게 검토되어 나온 건가.
성경륭 = 오래된 정책 과제였다. 균형발전은 정치 입문 초기부터 노 전 대통령의 오래된 정치철학이었으며, 수도 이전 공약은 이런 생각 속에 채택됐다.
이상돈 = 지방분권 정책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시작했는데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화는 너무 급하고 과격하지 않았나. 지방정부를 들뜨게 만들어서 이권화 양상으로 번졌다. 지방 이기주의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그 여파로 현 정권에서도 동남권 신공항, 과학벨트 등 중앙정부가 감당하지 못한 것 아닌가.
성경륭 = 일단 지방경제가 황폐화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그 다음에 생각해보면, 참여정부 때 행정수도 이전과 공공기관 이전 문제를 여야 합의로 만들었다. 90% 동의했다. 공공기관 175개를 전국에 배치할 때 잡음이 일절 없었다. 처음에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그라운드 룰을 만들고 합의했다. 물론 이권화된 측면이 있다. 지역 정책을 하면 궁극적으로 지역의 자립 기반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생적, 외생적 발전이 결합되어야 한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이전하거나 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외생적 차원이다. 내생적 발전 기반을 갖춰야 하는데 그에 대한 지방의 자기 인식이 여전히 약하다. 그렇다 보니 ‘유치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이 문제는 큰 과제다.
김호기 = 노무현 정부는 균형발전을 ‘국가적 의제’로 최초로 제시한 정부다. 불균형 발전 전략의 폐해로 지방 양극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균형발전을 ‘정치적 의제’로 추진했고 더욱이 사회 갈등을 해소하려는 거버넌스(협치)적 문제의식이 아예 부재하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언론기관, 이익단체, 시민단체 등을 포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전 사회적 거버넌스를 작동시켜야 한다.
▲ “친화·호소력 있는 반면 의도하지 않은 ‘설화’…
盧 ‘말의 정치’ 명암” - 김호기 교수
이상돈 = 1997년 대선을 제외하면 토건 공약을 내건 후보가 모두 당선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기업·혁신도시 공약 등으로 토건국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당시 사업을 빨리 진행하다보니 보상금도 엄청 많았고 부동산 가격을 또다시 폭등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반성할 점은 없는가.
성경륭 = 그런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수도와 기업·혁신도시 구상은 수도권 집중 완화를 해소하기 위한 그랜드 디자인이었다. 토목사업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서울은 뉴욕과 같은 경제수도로 만들고 충청권을 행정수도로, 나머지는 혁신도시를 만들어 각 지역을 대표할 산업수도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혁신도시는 규모가 작다. 소규모 신도시이기 때문에 토목과는 관계가 없다. 또 이를 바라보는 관점도 남한에 한정돼 있지 않았다. 한반도 전체로 확장한 균형발전 전략이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왜 수도권 발목을 잡느냐고 했지만, 보수·진보를 떠나서 국가경영 비전 차원이었다. 이 부분의 설명이 정확히 안돼 우리로서는 답답했다.
이상돈 = 지방분권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 이를 과격하게 추진하다보니까 오히려 지금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공공연하게 수도권 집중화론을 들고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 ‘장군 하면 멍군’ 식으로 접근이 과격해서 역작용을 가져왔다.
성경륭 = 인식에 비슷한 점이 많다. 이 교수를 노무현 정부 초기에 만났더라면 좋았겠다.
김호기 = 돌아보면 노무현 정부를 관통하는 사회적 흐름은 ‘시대의 교차’이다. 민주화 시대의 성취를 계승하면서 세계화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내건 참여민주주의, 균형발전, 동북아시대 모두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수사적으로 말하면 노무현 시대는 지나간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으며, 목숨을 내던짐으로써 노 전 대통령은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서거 2주기를 맞아 노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가 진보 세력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성경륭 = 노 전 대통령이 고민한 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예상하지 못했고 풀지 못한 문제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지금 돌아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노 전 대통령 집권 시기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 실천 전략으로 ‘동반성장’ ‘균형발전’ ‘사회투자’ ‘평화·번영’을 고민했던 것이다. 이것이 진보 개혁의 큰 정책 노선이고 발전 전략이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꽃을 피운 게 아니라 입안 초기단계였다. 노무현의 시대는 앞으로 와야 한다. 지금 한국이 안고 있는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2008년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수많은 ‘바보 노무현’이 살신성인 자세로 모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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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교수 후기
노무현 대통령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떴지만 그 유산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임기 중에 있었던 많은 일에 대한 평가는 아직은 이르다고 하겠다. 임기 중 추진했던 많은 정책이 그러했지만 노 정권이 추진했던 수도이전과 지방분권화 정책 역시 파격적 이었다. 수도이전은 우여곡절 끝에 행정복합도시 건설로 귀결되었고, 지방혁신도시와 공기업 지방이전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나는 도무지 저런 아이디어를 누가 구상했는가 하고 의아했었는데, 당시 언론에 간간히 나왔던 이름이 성경륭 교수였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 청와대에서 일을 했던 학자 출신으로는 김병준, 이정우, 그리고 성경륭 교수를 들 수 있다. 김병준 교수는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이미지를 추락시켰고, 토지소유권에 대해 특이한 철학을 가졌던 이정우 교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 사회주의자’로 평가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경륭 교수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됐다.
산업화 시대 이후의 지방의 위기에 대해 성 교수가 갖고 있는 위기의식은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우리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철강산업이 무너진 후의 피츠버그, 자동차 산업이 무너진 후의 디트로이트가 그런 과정을 겪고 있다. 결국 그것은 해당 도시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고, 중앙정부는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 같은 잘못된 시그널을 주었다. 공기업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해서 지방경제를 살린다는 구상은 어떻게 보면 패배주의적이고 또한 편의주의적이다. 이런 접근방식이 지방의 ‘유치경쟁’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요즘 지방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중앙정부 예산을 따오는가 하는 것인데, 그것이 노 정권에서 추진했던 지방이전 정책과 관련이 깊다. 이명박 정권은 우왕좌왕하면서 이 같은 지역정서를 심각한 갈등구조로 변화시켰다. 이런 모습을 보는 수도권 주민들의 시선이 고울 수 없다. ‘대권’을 꿈꾸는 김문수 지사와 오세훈 시장이 바로 그런 정서에 편승해 있다. 수도권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선 “우리가 언제까지 지방을 먹여 살려야 하나?” 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정책이란 의도만 좋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님을 이런 데서도 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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