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언제까지 성난 민심 외면할 것인가 (시사IN)
작성일 : 2011-11-01 14:58조회 : 3,873
<시사IN> 2011년 11월 5일자 에세이
언제까지 성난 민심 외면할 것인가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철수 바람’을 주제로 TV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패널로 참석한 정치평론가가 “한나라당은 그래도 박근혜 전 대표가 있어서 굳건하지만 민주당은 초토화되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못해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통해 풀뿌리 정치구조를 장악했다”라고 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승리한 이번 선거를 두고서 시민사회의 승리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집권세력과 한나라당에 대한 ‘큰 심판’이었다고 할 것이다.
작년 6·2 지방선거, 금년 4·27 지방선거에 이어 집권세력과 한나라당은 세 번째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패배한 정당 같아 보이지 않는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비긴 선거’라고 말하니,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돼야 패배한 선거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위기의식이 없는 것 같다.
인지불능병 걸린 보수층
집권 세력과 한나라당이 겪고 있는 ‘인지불능병(認知不能病)’은 심각하다. 대다수 국민이 4대강 사업을 부당하고 불법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에도 이들은 준공기념행사를 한답시고 수십억 국민세금을 낭비했다. ‘내곡동 사저’ 문제를 보고 하도 기가 차서 ‘범죄정권’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음에도 이들은 그것을 단순한 행정착오 정도로 치부한다. 이른바 보수세력의 인지상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튜니지아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을 보고서 북한의 김정일 부자의 앞날이 그러할 것이라고 하니, 정작 우리 국민 마음속에 혁명의 기운이 돌고 있음을 전혀 모르는 형상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 후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잘 하고 있으며, 지방선거와 재보선 등 모든 일은 ‘엄청난 음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이다.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권이 문제이지만 그래도 밀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집단이다. 앞의 집단은 집권세력과 똑같은 ‘인지불능병’에 걸려 있으니 무어라고 할 수가 없다. 두 번째 집단은 생각은 비교적 건전하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용기가 없어서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류는 한나라당에도 꼭 같이 타당하다.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모든 면에서 MB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친이 의원들은 어차피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지만 모든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알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청와대를 거스르는 발언 한마디 못하고 있다가 도매금으로 매장될 위기에 처한 의원들도 꽤 있다. 이들은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가담하는 것과 같다”는 고래(古來)의 잠언(箴言)을 곱씹어보아야 한다.
집권층의 ‘인지불능병’은 의도적이라서 별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 보수 유권자들이 겪고 있는 ‘인지불능병’은 그들이 세상을 보는 창구를 스스로 제약하는 우(愚)를 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애독하는 이른바 보수신문은 의욕적으로 취재를 하기는커녕 있는 사실도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본거지인 대구 경북 지역에서 어떤 신문과 잡지가 주로 팔리고 있으며,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대하여 한나라당을 지지한 서울의 노년층이 어떤 신문을 접하는가를 보면 심각한 세대간 괴리의 뿌리를 알게 된다.
박근혜 전 대표를 자유롭게 하라
박근혜 전 대표가 나경원 후보를 지원하게 된 데는 조중동의 압력도 있었지만 대구 경북 지역의 유권자들이 “왜 나경원 의원을 돕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기 때문이라는 뒷이야기가 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이란 ‘일탈(逸脫)’을 대단한 시대정신으로 알았던 보수층은 계속 착시(錯視) 현상에 빠져 있더니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꼴이다.
아무리 세상이 진보의 바다에 빠져 있다고 해도, ‘보수’라는 정치철학이 괜찮은 것이고 우리 사회에선 그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면 이제부터라도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거기에 뇌동한 정치인들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생각한다면 박 전 대표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박 전 대표를 놓아주지 않으면 박 전 대표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고, ‘보수’라는 단어는 고어(古語) 사전 한구석에 처박힐 것이다.
(c) 시사IN
COPYRIGHT ⓒ 이상돈닷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