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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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나라당의 '총잡이'들 (시사IN)
작성일 : 2011-12-23 18:28조회 : 3,772
<시사IN> 2011년 12월 24일자 시사에세이
한나라당의 ‘총잡이’들
- 법조 출신 정치인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요즘 한나라당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1년 여 동안 뉴스의 초점이 된 한나라당 주요인물이 대부분 법조 출신이다. ‘보온병’과 ‘자연산’이란 불후의 어록을 남긴 안상수 전 대표와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사실상 승리한 것”이라고 선언한 홍준표 전 대표는 검찰 출신 법조인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하고 사퇴한 오세훈 전 시장, 서울시장 보선에 나가서 패배한 나경원 의원, 홍준표 대표 체제에서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반값 등록금’이란 화끈한 정책을 만들어 낸 황우여 의원과 그와 콤비를 이룬 정책위의장 이주영 의원도 모두 법조 출신이다.
이쯤 되면 한나라당은 ‘법조당’이라고 할 만한데, 이 같은 막강한 ‘법조군단’이 이끈 한나라당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 법조 출신 정치인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나라당에 유난히 법조 출신 의원이 많은 이유는 이회창 전 총재의 영향도 있겠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5공화국 시절에 법조인들이 여당이던 민정당에 많이 가담했기 때문이다. 제5공화국 시절 민정당에는 육사 출신 장성과 서울법대 출신 법조인이 하도 많아서 ‘육법당(陸法黨)’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변호사는 정치를 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미국은 변호사가 워낙 많지만 국회의원 등 선거직 공직자 중에도 변호사가 많다. 영국 등 유럽은 미국 같지는 않더라도 변호사를 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흔하다. 미국에서 변호사로서 정치인으로 성공한 경우도 많이 있지만, 법조인으로 성공한 사람이 나중에 정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가 된 후에 곧장 지방정치에 입문한 후에 기회를 보아서 의회나 주정부 고위직에 도전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 성공한 법조인들이 정치를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런저런 기회에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정치권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법조 출신 정치인들은 사회의 밑바닥 정서를 읽는 능력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변호사들은 낙선을 해도 변호사 직업으로 복귀할 수 있다. 우리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대단한 특혜다. 유권자들은 영원한 현직인 ‘변호사’가 경력에 적혀 있는 후보자를 그렇지 않은 후보자 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 또한 대단한 프리미엄이다.
그렇다면 과연 변호사는 정치인으로 성공하기에 좋은 직업일까 ? 거기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판검사와 변호사는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법학은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 학문이기 때문에 변호사는 상황 판단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공부한 법학은 주로 우리나라 실정법과 판례다. 시험 위주로 공부를 하다보면 어떤 법리와 제도의 역사라든가, 이를 둘러싼 정책적 문제 같은 데는 등한하기 마련이다. 대학시절에 사법시험 공부에 몰두하다보니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외국 역사와 문화에 어두운 ‘무식한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변호사는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즉 기본적으로 남의 일을 해주는 일종의 하청업이다. 그래서 변호사를 흔히 ‘총잡이’(‘hired gun')라고 부르는데, ‘총잡이’란 영혼이 없고 또 없어야 하는 직업이다.
반면 정치인이란 없는 영혼도 억지로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이며, 그러기 위해 상상력을 쥐어짜야 하는 직업이다. 성공한 정치인은 그 시대에 대중이 요구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기존 관념을 뛰어 넘는 발상을 하며, 그런 발상을 유권자에게 성공적으로 팔았던 사람들이다. 정치란 선거라는 위험을 택하는 직업이기에, 시대의 정신과 세상의 흐름을 잘 알는 사람이 성공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으로 성공한 변호사를 들자면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들어야 하겠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장 변호사답지 않은 변호사였기에, 오히려 예외적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정통 법조인으로서는 가장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이 전 총재는 제4공화국 시절에서 법관을 지내면서 시대적 아픔을 경험했다. 그런 속사정을 잘 모르는 제5공화국 실력자들이 그를 대법관으로 발탁해서 결국에는 김영삼 정권에서 감사원장과 총리를 지냈지만 대권 도전에는 실패했다.
이 전 총재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법조인 특유의 ‘상상력 부족’을 나는 주된 원인으로 뽑고 싶다. 한나라당의 ‘막장’을 장식한 법조 출신 정치인들은 상상력은커녕 상황인식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더 이상 이런저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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