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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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평 '모래강의 신비' (주간경향)
작성일 : 2012-01-21 00:31조회 : 2,838
[북리뷰] 강과 모래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 모래강의 신비> 손현철 지음·민음사·1만5000원
2012 01/03ㅣ주간경향 957호
이명박 정권 4년차가 지나가고 있다. 지긋지긋하게 길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 공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또다른 공적으로는 강과 모래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것이다. KBS 다큐멘타리 프로듀서인 손현철이 직접 쓰고 사진을 찍어 펴낸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담은 슬픈 기록이다.
대학에선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문명과 자연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는 화산, 철갑상어, 천연두 등 독특하지만 비정치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강모래를 다루었는데, 그 강모래가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주제이니, 우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이명박 정권이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이 벌인 전격전을 하는 방식으로 멀쩡한 4대강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모습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모래가 강에서 제거돼야 할 대상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지금 4대강을 찾으면 처참하게 파헤쳐진 강과 거기서 퍼올린 모래가 산맥을 이루며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공중파 TV와 메이저 신문에선 그런 기사와 영상을 볼 수 없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없는 것처럼 되어버린 존재가 불과 2년 만에 완전히 파괴돼버린 우리의 모래강이다.
저자는 하찮아 보이는 모래가 한반도 자연 순환계의 고리로, 우리의 자연 역사이고 문화임을 설명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계절별로 유량 변화가 심한 한반도에선 모래가 강의 수질을 정화하고 더 나아가 수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4대강 공사는 한두 해 동안에 그 같은 자연 메커니즘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칠지 알 수 없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는 파괴되고 있는 4대강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는 “책에 실린 사진은 모래톱의 영정사진이, 글은 모래강을 위한 조사(弔詞) 혹은 비망록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저자는 한강 종합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한강변으로 사람들이 여름에 피서를 왔고, 여의도도 원래는 모래로 이루어진 하중도였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 말을 기억하는 필자는 여름에 뚝섬 유원지로 물놀이를 갔던 기억이 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란 슬로건을 내건 해공 신익희의 대선 유세도 한강 백사장에서 있었는데,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이승만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만큼 모래는 우리 국토와 우리 생활에 중요한 요소였는데, 한강 종합개발 후에 사람들은 원래 강이 지금의 모습인 줄로 알고 모래강을 잊었던 것이다.
책은 이어서 모래강으로 가장 유명한 내성천에 대해 상세하게 쓰고 있다. 경북 봉화 산골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유유하게 굽이굽이 흐르다가 예천 회룡포에서 극적인 선회를 한 후 낙동강 본류에 합수(合水)한다. 내성천에선 보를 건설하거나 준설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류에 건설 중인 영주댐이 완공되면 모래 유입량이 줄어들어서 내성천의 모래가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예성천에서 모래강 순례를 했으나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하회마을에도 원래는 모래톱이 넓게 형성돼 물이 맑았으나, 안동댐이 세워진 후에 상류에서 내려오는 모래가 차단되어 모래톱이 작아졌다. 반면 섬진강 하류엔 아직도 모래톱이 건재하며, 때문에 낙동강 하구를 찾았던 철새들이 섬진강 하구로 찾아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4대강에서 퍼올린 모래가 산맥과 피라미드를 이룬 기막힌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준다. 4대강 강변에 쌓아놓은 모래더미는 초현실적이며 그로테스크한데, 이런 모습이 21세기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데 대해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저자는 “4대강 공사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보내거나 적극적인 저지를 회피함으로써 우리는 모래를 파내서 우리가 살 곳을 파괴하는 데 동참한 꼴이 됐다”고 탄식한다. 저자는 “창조의 무대이기도 한 모래의 의미를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기 시작했다”며 책을 끝맺음한다. 통한(痛恨)의 눈물을 흘리고 맺음말을 썼을 저자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이상돈<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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