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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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몬태나 쇠고기 (첨단환경 2008년 6월)
작성일 : 2008-05-13 17:00조회 : 2,113

몬태나 쇠고기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1. '몬태나 쇠고기'를 주문한 이명박 대통령

지난 4월 중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측에서 청와대에 "이 대통령 부부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 부부가 양고기를 좋아한다"고 알려 주었더니, 백악관은 "고기를 좋아하면 쇠고기 스테이크는 어떠냐.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하겠다"고 수정 제의를 해왔다. 백악관은 광우병 논란을 의식해서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하겠다고 제의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32개월 된 쇠고기, 그것도 몬태나産(산)으로 하자고 해 보라"고 지시했다. (동아일보 2008년 4월 20일자 기사) 하지만 4월 18일 저녁 캠프 데이비드 만찬시 로라 부시 여사가 준비해서 내놓은 스테이크가 '32개월 짜리 몬태나산'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캠프 데이비드 회동이 있기 하루 전인 17일, 이명박 대통령 일행은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만찬에 참석했다. 주최측은 메뉴에 '몬태나 비프'를 특별히 명기해서 스테이크를 제공했다. 4월 1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이명박 대통령 일행이 몬태나産 쇠고기로 만찬을 한 것은 한미간 쇠고기 협상이 사실상 타결된 것을 의미한다고 논평했다. 이날 만찬에 쓰인 몬태나산 쇠고기는 몬태나 출신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이 공수해 온 것이라 한다. (중앙일보 5월 12일자 기사)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성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 일반국민의 정서나 국내 축산농가에 대한 관심은 적은 것으로 들린다. 무엇보다 미국산 쇠고기에 一家見(일가견)이 있다는 식으로 "32개월 짜리 몬태나산으로 하자"고 말한 부분은 치밀하게 계산된 발언인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던 미국측은 이명박 대통령의 '32개월 짜리 몬태나산' 발언을 듣고 난 후 용기백배해서 공식 만찬장에 몬태나산 스테이크를 올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은 이 대통령이 자기들 편을 들어주려고 찾아왔다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2. '몬태나 州'

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궁금증은 왜 하필 '32개월 짜리 몬태나산 쇠고기'인가 하는 점이다. '32개월 짜리' 발언은 광우병 논란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을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가 결코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였을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하필 '몬태나산'이었는지는 미스테리일 따름이다.

  미국의 중서부는 농장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몬태나 쇠고기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소 사육농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와 그 북쪽의 오클라호마에 많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몬태나 출신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을 의식하고 '몬태나산'을 주문했단 말인가 ?

캐나다 접경인 중서부에 자리잡은 몬태나는 면적이 381 km2이고 인구는 99만 7천명이다. 미국의 5개 州 중 면적은 4번째로 크고, 인구는 44번째이다. 면적으로 보면 알래스카, 텍사스, 캘리포니아에 이어 4위이고, 인구 밀도는 km2당 2.4인으로 알래스카, 와이오밍에 이어 세 번째로 희박하다. 인구가 적어서 상원의원은 2명, 그리고 하원의원은 1명을 뽑는 7개 州 중 하나이다.

  몬태나의 주된 산업은 농업과 축산업이고, 금 은 등을 채굴하는 광업이 있다. 한때 미국 최대의 구리 광산이 몬태나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되었다. 북쪽의 빙하국립공원, 6개월 동안 스키를 탈 수 있는 빅 스카이 리조트(Big Sky Resort), 남쪽의 와이오밍 州 엘로스톤 국립공원 입구로 이어지는 관광벨트가 州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몬태나 출신의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은 1978년에 당선된 후 5선을 기록해서 현재 상원 재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보커스 의원은 1992년에 환경보호와 무역제재를 결부시킨 '그린 수퍼 301조'를 입안해서 우리나라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서 몬태나 주는 의원은 민주당 후보를 뽑았지만 대통령은 조지 부시를 지지했다.

3. 몬태나州 빅 스카이에서 열린 韓美 FTA  5차 협상

2006년 12월 4-8일간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미국 몬태나州 빅 스카이에서 열린 한미 FTA 5차 협상에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커틀러는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쌀과 쇠고기 같은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며," "엄격한 의미에서 쇠고기 시장 개방은 FTA 협상에서 논의할 사항은 아니지만 이 사안은 우리가 몬태나에서 갖은 모든 회의의 배경이며," "한국의 쇠고기 시장이 완전하게 개방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결과가 있어도 미국의 이해관계자와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 몬태나 출신인 상원 재정위원장인 맥스 보커스 의원은 만찬장에서 뼈가 붙어 있는 몬태나産(산) T본 스테이크를 직접 먹어 보이면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연발해서 우리 대표단을 궁지로 몰았다. 우리 정부는 회담 직전인 11월 24일과 12월 1일에 오랜만에 수입이 재개된 미국산 쇠고기 1차 분과 2차 분에서 작은 뼛조각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전량을 미국으로 반송했고, 회의 진행 중인 12월 6일에도 3차 수입분도 뼛조각을 이유로 전량 반송했다. 보커스 의원의 '시식 쇼'를 보고 있어야 했던 우리나라 대표단의 심정이 어땠을 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2007년 4월 보커스 의원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통제국가로 분류하면 뼈있는 쇠고기를 포함한 모든 미국산 쇠고기가 육우의 연령과 상관없이 한국에 수입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은 한미 FTA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4. 몬태나 출신 채식주의자 하워드 리먼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쇠고기의 고향 몬태나 州는 미국에서 광우병 위험을 처음 대중에게 제기한 하워드 리먼(Howard Lyman)의 고향이기도 하다.

1938년에 몬태나의 농촌에서 태어난 하워드 리먼은 몬태나 주립대학에서 농업을 공부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 와서 4대째 家業(가업)인 축산을 했다. 1979년 그는 척추암에 걸려서 수술을 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암과 싸우면서 그는 자기가 살아나면 농약과 화학물질을 안 쓰는 농업을 하겠다고 맹세했다. 암 수술이 성공하자 그는 자기 농장을 유기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1989년 그는 당시 영국에서 물의를 빚기 시작한 광우병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1990년대 초 그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는 1996년에 윈프라 오프리 쇼에 출연해서 미국의 소 사육이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목축업자들을 비난했다. 그러자 오프리 윈프리는 방송 중 자기는 더 이상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발언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 축산협회는 리먼과 오프리를 축산업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1998년 연방법원은 이들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1998년에 리먼은 '미친 카우보이(Mad Cowboy)'라는 책을 펴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기를 먹지 않는 축산업자가 전하는 평범한 진실(Plain Truth from the Cattler Who Won't Eat)'이란 부제목이 붙은 이 책에서 리먼은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할 이유를 상세하게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축산농장에서의 관행으로 미루어 볼 때 가까운 미래에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12쇄를 찍고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리먼은 2005년에는 두 번째 책인 '더 이상 소를 먹지 말자(No More Bull)'를 펴냈다. 이 책에서 리먼은 광우병이 '동물의 復讐(복수)'이고, 광우병은 이미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상당수가 광우병 환자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먼은 피츠버그 수의과 병원과 예일대학의 연구를 인용해서, 치매로 사망한 사람의 뇌를 해부하면 그 중 5.5%에서 13%에 이르는 사람이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을 앓았음을 보여 주며, 그렇다면 450만 명 알츠하이머 병 환자 중 10%에 해당하는 약 45만 명이 광우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먼은 언젠가는 고기가 담배처럼 건강 유해물질로 분류될 것이며, 축산업은 철도가 부설된 후 운하가 쇠퇴한 것과 같이 쇠망할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리먼은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축산농장은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은 사슴 같은 야생 동물의 사체를 갈아서 사료로 사용해 왔다고 폭로했다.

5. 광우병은 소멸단계에 접어들었나 ?

2006년 3월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광우병으로 죽은 소가 1992년에 수만 頭를 기록한 후 해마다 줄어들어 2003년에는 1,646두, 2004년에는 878두, 그리고 2005년에는 474두가 이로 인해 죽었다고 발표했다. 세계농업기구는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은 2003년에 18명, 2004년에 9명, 2005년에 5명으로, 이들이 모두 영국인이라고 밝혔다. FAO는 광우병이 최악의 상황을 지났다고 평가했다. 이런 통계 발표를 근거로 우리나라의 어느 교수는 광우병이 소멸단계에 들어갔다고 용감하게 발표했다. 그러나 FAO의 입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광우병은 영국에서 죽은 양의 사체를 갈아서 소와 양에 먹여서 발생했다. 식물성 단백질 사료인 콩이 영국과 유럽대륙에선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처치 곤란한 죽은 양을 동물성 단백질 사료로 소에게 먹였던 것이다. 미국에는 콩이 풍부하고 값싸기 때문에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이는 일반적 관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2003년, 2004년, 그리고 2005년에 광우병 소가 각각 1두씩 발견되었다. 2003년에 발견된 소는 캐나다에서 수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2004년에 텍사스에서, 그리고 2006년에 앨라바마에서 발견된 광우병 소만 순수한 미국의 광우병 소인 셈이다. 2006년까지 12두의 광우병 소가 발견된 캐나다는 1997년에 동물성사료를 금지시켰고, 2007년 초에는 이를 강화한 규칙을 발효시켰다. 반면 미국은 동물성 사료를 소나 양에 주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는 규칙의 발효가 지연되고 있어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미국에서의 광우병 소 발병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일본 등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한 국가는 미국이 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2003년에 미국에선 광우병에 걸린 사슴이 수백 마리가 발견되어 殺(살)처분했다. 따라서 사슴에게는 동물성 사료를 주었지만 소에게는 그런  사료를 주지 않았다는 미국 농업계의 설명은 궁색해 보이는 것이다.

  '인간 광우병'이라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금년 4월까지 영국에서 163명, 그리고 영국 외의 나라에서 37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자국에서 기르던 소와 양을 전면 殺(살)처분한 후에 인간 광우병 환자의 발생은 줄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원인을 모르는 散發性(산발성) 크로이츠펠트 야콥병(sCJD) 환자가 늘고 있다는 점, 산발성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과 알츠하이머 병의 증상이 유사하다는 점, 알츠하이머 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산발성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 환자와 알츠하이머 병 환자가 사망한 후 뇌를 부검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진상을 알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광우병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하워드 리먼 뿐 아니라 적잖은 과학자들도 산발성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이 광우병 원인물질인 프리온 섭취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인간 광우병'이 20-30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생했는데 비해 산발성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은 60세 이후의 노인들에게 주로 발생했기 때문에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두 질병의 근원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미국 쇠고기를 수입금지한다고 과연 우리나라가 광우병에서 안전할 수 있나 하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죽은 후에 부검을 기피하는 풍조, 관련 연구시설과 연구자가 태부족한 현실, 국가정책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점, 내장탕 선지해장국 갈비탕 소머리국밥 등 독특한 쇠고기 음식이 많은 점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의외로 광우병에 취약할 수 있다.

많은 불명확성이 있기 때문에 '광우병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이명박 대통령의 '32개월 짜리 몬태나산 쇠고기' 발언은 대단히 경박했다는 사실이다. 여학생들이 '이명박 너나 처먹어'라는 피켓을 들고 청계천 광장을 메우게 된 데는 '몬태나 쇠고기' 발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도자는 말과 글에서 품격을 갖추어야 하는 법이다. 
(첨단환경 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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