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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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처, 레이건, 박근혜 정부 (새얼재단 강연)
작성일 : 2013-09-22 16:01조회 : 3,426
마가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그리고 박근혜 정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1. 왜 대처와 레이건인가 ?
지난 8월 마가릿 대처가 사망함으로써 20세기 말기 세계를 움직였던 마지막 거인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로널드 레이건이 사망했을 때와는 달리 영국에선 대처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시위가 일었다. 대처는 영국사회를 바꾸었지만 동시에 분열시켰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선 대처와 레이건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있는데, 긍정 보다는 비판이 더 강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판론자들은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해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처와 레이건은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를 혐오했다. 이들은 또한 비대한 관료주의를 혐오했다. 많은 사람들은 대처와 레이건이 사회주의를 제압한 지도자로 기억하지만, 이들은 관료주의를 혐오하고 관료주의와 전쟁을 했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대처와 레이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2. 박근혜 정부의 과제
박근혜 정부는 매우 부실한 정부를 인수받았다. 정부 통계에 의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총부채(정부부채, 기업부채, 가계부채)는 GDP 대비 234%로, 2000년의 152%, 2007년의 202%에 비해서 급증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300%를 넘는 위험수준에 있는데 비하면 여유가 있다고는 하나 결코 안심할 상태가 아니다. 2011년 기준으로 정부 부채는 GDP 대비 38%로 선진국에 비해 낮지만 여기에 공기업 부채를 합치면 GDP 대비 75%를 넘어서 황색등이 켜진 상태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공공부분 부채가 정부 부채 보다 큰 유일한 국가다. 특히 공공부분 부채는 보금자리 주택, 4대강 사업 등 무리한 공공토건 사업을 밀어 붙인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급증했다. 지방정부 부채도 심각한 상태인데, 이 역시 방만한 경영 때문이다. 특히 인천시의 총부채는 13조 원으로 예산 대비 부채비율이 83%에 달해서 가장 상태가 바쁘고, 서울시 부채도도 26조 5000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62%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양당은 경쟁적으로 복지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65세 이상 노령연금, 5세 이하 무상보육, 4대 질병 건강보험 적용 공약은 일단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기득권 성격(entitlement)을 띄고 있다. 전반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세수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복지 플랜을 시작하게 되면 국가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 불을 보듯 확실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증세를 이야기하지만, 증세는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일뿐더러 세수를 증가시킨다는 보장도 없다. 세수는 경제가 성장해야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공무원 숫자는 계속 늘고 있을뿐더러, 젊은이들에게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이 가장 바람직한 직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제 공무원이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야말로 “관료가 행복한 나라”가 되어가는 양상이라서 남부 유럽의 망령을 보는 듯하다.
오늘날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은 과다한 복지, 유로권 편입에 따른 이지 크레디트 뿐 아니라 방만한 공공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경제의 펀다멘틀은 남부 유럽에 비한다면 훨씬 건전한 편이지만 방만한 공공부분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다루기는커녕 말하기도 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처와 레이건이 재임 중 취했던 정책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3, 1980년대 영국과 마가릿 대처
영국은 제2차 대전 승전국이고 미국의 마셜 플랜에 의해 가장 많은 혜택을 입었지만 1970년대 들어 국가가 파산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노동당의 주도한 산업국유화, 과다한 복지, 높은 세금, 강한 노조가 원인이었다. 심지어 보수당 정권도 노조와 타협해서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서 낙후된 산업을 연명시켰다. 영국 산업은 국제경쟁력을 상실했고, 영국은 개도국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였으며 젊은이들은 호주 등지로 직장을 구해 나갔다. 1970년대에 인플레이션은 20%를 상회한 해도 있었고 높은 세금을 피해 부유층은 영국을 이탈했다.
1979년에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했고, 대처는 개혁에 착수했다. 대처는 공무원을 ‘필요악’으로 보았고 관료제를 타파하고자 했다. 총리실의 참모진에는 관료 출신이 단 한명도 없었다. 대처와 대처주의자들에게 관료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에 불과했다. 과감한 행정개혁을 추진해서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부서는 반관반민 서비스 조직으로 이관되어서 전체 공무원 중 절반이 서비스 조직으로 이관되었다. 대처는 공무원 조직을 관장하던 공무원부를 아예 없애고 소속 공무원 5,000명을 해고했다. 대처는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재정건전성을 지키지 못하는 지자체에 대해서 벌금을 가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대처 정부의 세제 개혁은 1988년에야 이루어 졌는데, 소득세율 누진을 완화하고 부가세를 인상하고 지역부과금이란 인두세를 도입했다. 공공주택 20만 채를 민간에 불하하고 브리티시 석유, 브리티시 항공, 브리티시 텔리컴을 민영화했고, 종국에는 브리티시 레일도 민영화했다. 교육예산은 감축했지만, 경찰과 군, 그리고 교도소 예산은 증가시켰다. 대처는 이런 중에도 북해 석유생산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행운을 누렸다.
대처의 이 같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에는 경제가 회복하지 못했다. 재임 기간 중 대처가 누렸던 인기는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와 탄광 노조와의 전쟁에서의 승리에 힘입은 것이었다. 대처 임기 초기에 영국 제조업의 25%가 문을 닫았고, 대처가 물러난 1991년에도 인플레이션은 10%를 넘었다. 대처가 추구했던 석탄산업 구조조정은 1994년에야 이루어졌고, 영국 경제는 1997년에야 비로서 번영을 구가하기 시작했는데, 그 해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제3의 길'을 내걸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토니 블레어는 "우리는 모두 대처주의자"라고 했고, 대처는 "블레어 정권에는 사회주의자가 없다"고 말했다.
4. 1980년대 미국과 로널드 레이건
카터는 20세기 후반기 최악의 대통령이었다. 카터 시절에 미국의 대외정책은 완전히 실패했고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인 경제난국을 해결하지 못했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 중 실업율 두 자리 숫자, 인플레이션 두 자리 숫자. 이자율 두 자리 숫자를 해결하지 못하고 1980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에게 치욕적으로 패배했다.
레이건은 후보 시절에 세금 삭감(tax cut)을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웠고, 취임 후 이를 밀고 나갔다. 이로서 부유층에 대한 최고세율이 인하되어 부유층의 세금부담이 줄어들었다. (비판자들은 이 조치를 ‘낙수 효과’ 정책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레이건은 군비를 확장했기 때문에 재정적자가 가속화했다. 경제회복이 늦고 재정적자가 확대되자 1982년에는 감축한 소득세 1/3을 부활시켰고, 1986년에는 소득세 공제를 축소해서 부유층에 대한 실효세율을 늘렸다. 총체적으로 볼 때 레이건은 임기 첫해에 취했던 감세 조치의 50%를 나중에 복원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레이건은 데이비드 스톡만 예산실장의 주도로 국방비 이외의 연방정부 지출을 삭감토록 했다. 메디케이드, 푸드 스탬프, 교육, 환경보호 등 많은 분야에서 정부 지출이 줄어들었다. 기득권 프로그램인 사회복지에 대해서도 알콜성 장애 복지 같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복지혜택을 감축했다. 레이건은 대통령 선거 중 '시카고 복지 여왕'(Chicago Welfare Queen)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고, 그런 문제를 일부 해소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주택도시부, 교육부 같은 부서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폐지하지는 못하고 예산을 삭감하는 데 그쳤다. 레이건 8년간 주택도시부 장관은 한사람이 했는데, 레이건은 그를 백악관에서 알아보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유일한 흑인 장관이었고 최장수 장관이었다. 레이건은 테네시 개발공사와 앰트랙을 민영화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레이건은 카터 대통령 시절에 시작한 항공사업 규제완화 등을 본격적으로 시행해서 석유류 가격통제를 해제하는 등 많은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 또는 해제했다. 항공업에서 경쟁으로 이스턴 항공사에 이어 팬앰이 파산했지만 소비자는 보다 싸고 좋은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었다. 석유류 가격통제 해제로 인해 미국내 석유가격이 하락해서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그럼에도 레이건 행정부 1기에는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어 경기가 계속 침체했다.
레이건은 고(高)이자율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자 하는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연임시켜서 그의 인기없는 정책을 옹호했다. 이로 인해 결국 인플레이션은 잡았지만 장기 고정금리 주택대출을 해 주었던 저축대출은행(Savings and Loans)은 전체 업계가 도산해서 금융대란을 촉발했다. 레이건 임기 동안 미국에선 3,000개에 달하는 은행과 저축대출은행이 무너졌고, 저축대출은행의 부실은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서 연방정부 예산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건은 폴 볼커의 후임으로 화폐주의자인 앨런 그린스펀을 임명했다.
레이건은 65% 지지도를 유지하면서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을 조지 H. W. 부시에게 넘겼다. 부시는 냉전 종식과 재정적자라는 명(明)과 암(喑)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부시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로 인해 재선에 실패했다. 구조조정을 마친 미국 경제는 1993년부터 번영을 강구하게 됐고 그 해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냉전과 테러와의 전쟁 사이의 잠간 있었던 평화라는 행운을 누린 빌 클린턴의 재임 기간 중 미국 경제는 IT 호황을 누렸고 재정흑자를 기록했다. 고통스러웠던 1980년대의 구조조정이 꽃을 피운 것이다.
5. 교훈과 성찰
여기서 우리는 우리 경제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 비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과 고이자율이 큰 문제였던 80년대에 비해 현재 세계는 저이자율과 부채가 문제가 되어 있다. 저이자율과 부채,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인플레이션과 고이자율로 인한 당시의 심각한 문제에 비견될 만하다.
공통된 문제점은 관료주의로 인한 해약이다. 아무리 국민 대중이 고통스러운 경제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관료제에 의해 보호되는 공무원 조직은 그 고통을 모른 체하기 마련이다. 대처 총리와 레이건 대통령이 관료제를 국가발전의 장애물로 보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남부 유럽의 상황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관료제와 방만한 복지 지출, 그리고 저이자율에 편승한 공공부문과 개인의 엄청난 부채가 결국 사회 전체를 파탄으로 이끌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야권과 진보 지식인들은 북유럽식의 복지국가 모델을 우리가 따라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유럽식의 복지국가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계속 성장해야 하고, 특히 후계 세대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성공적인 복지국가라는 유럽 국가들에서 아랍 인구를 제외한 원래 유럽인구는 감소추세에 있다. 저출산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됐고,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한 노년 생계를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 모델은 존립이 어렵다. 쉽게 이야기한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여러 가지 노인성 질병을 앓아 가면서 오래 살기 때문에 이를 복지로서 정부가 뒷받침할 수 있으려면 재정이 충분해야 하는 데, 그것이 한계에 봉착하고 만 것이다.
디트로이트 및 중소 도시의 파산, 그리고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의 파산 가능성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많은 지자체는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들과 교사들에게 봉급을 주고, 퇴직한 공무원들과 교사들에게 연금을 주고, 또 이들에 대해 건강보험료를 지불하고 나면 돈이 고갈되어서 시중에서 돈을 빌려서 재정을 운영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의 자랑이던 값싼 주립대학 등록금, 공립학교 무상교육, 치안과 복지 서비스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그나마 현대/기아 자동차 공장을 유치한 도시는 살림살이가 나아 졌고, GM과 포드가 철수한 디트로이트는 파산하고 말았다. 방만한 공공부문이 공공부문의 파산을 가져올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과연 5년 임기 동안 아무 일이 없을 것인가 ?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공공부문 부채가 폭증했는데, 특히 공기업 부채가 두 배로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공기업 부채가 정부 부채보다 훨씬 많은데, 공기업 부채는 결국 정부 부채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정부 지출을 줄이고 방만한 공기업을 혁파하지 않으면, 큰 위기가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발생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김영삼 정부는 당시 시급한 구조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1997년 경제위기를 맞고 정권을 민주당에 내주고 말았다. 지금처럼 그대로 가면, 2017년에 ‘1997년 데자 뷰’가 있지 않을까 한다.
(* 2013년 9월 11일, 새얼문화재단 초청 조찬 모임에서 한 강연을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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