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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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표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나 (시사저널)
작성일 : 2013-10-13 20:22조회 : 2,682
<시사저널> 1251호 2013년 10월 9일자
사표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나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채동욱 검찰총장 사건이 마무리되는가 했더니, 진영 보건복지부장관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에 반기를 들며 사임해 파문을 일으켰다.
두 사건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청와대가 사표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서 문제를 더 키웠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공무원이 비리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했다면 그것을 수리하는 대신 진상을 조사해서 징계 처분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각료급 공직자가 사표를 내면 그대로 수리하는 것이 순리다. 채 전 총장의 경우도 어차피 진실은 정부 밖에서 밝혀질 것이기에 정부가 그를 더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감찰을 하니 어쩌니 해서 시간을 끌다 보니 “언론 보도에 배후가 있다”는 의혹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진 전 장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기초연금에 관한 진 전 장관의 뜻을 당연히 알았을 것이고, 그러면 주무 장관인 그와 의견을 조율했어야만 했다. 장관을 설득하든가, 아니면 장관이 사퇴할 가능성에 대비를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사표를 낸 장관에게 총리가 “업무에 복귀하라”고 ‘명령’을 내린 대목은 한 편의 코미디다. 준비가 된 청와대라면 진 전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했다”고 발표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진 전 장관도 조용하게 물러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청와대와 진 전 장관 모두가 이렇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사표 처리를 제대로 못해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마저 상처를 입은 형상이다.
진 전 장관의 사표를 미숙하게 다뤄 청와대가 내각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구심에 청와대가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복지부 출신인 청와대 복지수석과 복지부장관 사이에 의사소통이 어려웠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수석비서관이 장관을 무시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정부 기강이 말이 아닌 셈이다.
최근 10여 년간 장관 같지 않은 장관들이 장관 행세를 한 경우가 많아 장관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장관은 헌법기관인 국무위원이다. 또한 장관은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대통령이 아무 때나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청와대 비서들과는 격이 다르다. 그러기에 정책적 견해 차이 때문이든 또는 정치적 이유에서든 각료급 공직자가 물러나려 한다면 모양 좋게 물러나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러나는 사람에겐 빈말이라도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내보내는 쪽도 돋보인다. 그만두겠다는 장관에게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장관은 출근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아마추어 정부’라고 할 만하다.
대통령이 주요 장관을 해임하는 데는 정치적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스스로 사퇴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레이건 1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이던 알렉산더 헤이그는 다른 각료들과 불화가 심했다. 백악관 참모들도 ‘헤이그 장관 문제’를 고심하기에 이르렀다. 헤이그 장관이 자신과 다른 장관 중 택일을 하라는 식으로 사표를 내자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수리하고 “국가에 오랫동안 봉사했다”고 치하했다. 장관을 내보내는 데도 격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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