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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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역 · 세대 갈등과 국민통합방안 (영호남 포럼)
작성일 : 2014-10-17 09:42조회 : 2,273
2014년 10월 14일 <영호남 상생포럼> 발제문
지역 · 세대 갈등과 국민통합방안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1. 지역갈등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란 말을 들어 온지도 이미 수십 년이 되는 것 같다. 그간 대통령 선거 때면 후보자들은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고, 당선되고 나선 그런 노력을 적잖게 하곤 했다. 하지만 지역감정, 특히 영호남 간의 지역감정은 여전하다. 돌이켜 보면 큰 선거가 있으면 각 정당은 자기의 기반을 다지지 위해 은연중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공식적으로 비례대표 의원과 각료 임명에 지역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표피적인 것이었고, 실제로는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였던 경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가 예외라면 예외라고 하겠는데,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워 승리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2007년 선거는 다시 영호남 대결과 이념 대결 구도로 치러졌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지역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표피적인 노력마저 사라져 버렸다. '100% 대한민국'을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통합을 위해서 한 일이라곤 이름만 그럴 듯한 위원회를 만든 것이 전부이고, 대선 과정에서 내 걸었던 국민통합 공약은 무위로 돌아갔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입으로는 지역감정 타파를 외치지만 이들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상대방 텃밭 지역의 땅을 밟는 것조차 심리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대표가 호남에 가거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영남을 가는 것이 무슨 '행보'라고 큰 뉴스가 되는가. 인종과 언어의 뿌리가 달라서 분리 독립이 거론되는 스코틀랜드나 바스크, 카탈로니아도 아닌데도 이런 심각한 갈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호남 지역에 무소속 기초단체장이 많이 나왔고, 대구와 부산에서 김부겸 후보와 오거돈 후보가 선전했다는 점은 그래도 희망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지역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늘과 같은 자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 집권세력이 올바른 정치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어찌됐든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뿌리는 영남이다. 따라서 현 정권이 잘하지 못하면 영호남 지역 갈등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솔직히 나는 그런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정권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도외시하고 무리한 정책을 밀고 나가면 야당과 비판언론의 견제를 받게 된다.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그런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그것을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보아 온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4대강 사업이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든 간에 여권은 그들이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비판에 대해선 결국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등,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물론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런 공세를 취하지는 않지만 정부에 동조하는 세력은 항상 그런 논리를 전파해서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런 현상이 있는 한 지역갈등은 심화되면 심화됐지 완화되지 않는다. 요컨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켜야 지역갈등이 해소된다는 말이다. 이 같은 본질을 도외시하고 아무리 왕래와 교류를 증진시켜본 들 지역갈등이 해소되거나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갈등 해소를 위해서도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영남과 호남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공천이 즉 당선"이다. 영호남에선 공천을 얻는 것이 진짜 선거이고 본선거는 요식행위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영호남 다선의원에 대해선 "저 사람이 어떻게 해서 공천을 몇 번씩 내리 받았나" 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양당은 일정한 수준의 상향식 공천 제도를 실시하기는 한다. 하지만 선거 단위가 작은 지역에서 하는 지금과 같은 상향식 공천에선 불법적 돈 살포와 여론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천이 곧 당선'인 영호남 같은 각당 우세지역에서는 전략공천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를 말하기 전에 정치권은 그들의 텃밭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퇴행적 정치 현상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할 것이다.
요약한다면,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과 공천제도 개혁 등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세대 갈등
지역갈등 못지 않게 근래에 들어 논의되는 것이 세대 갈등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보듯이 세대 갈등은 단순히 사회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정치문제로 비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종편 시사프로를 보는 부모 세대와 스마트 폰으로 예능을 보는 자식 세대, 지하철을 무상으로 앉아서 타는 노년 세대와 러시아워에 돈 내고 서서 타는 세대 간의 갈등은 그래도 감내할 수 있다고 본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인구가 감소하고 성장이 둔화되는 경제 사회적 구조변화가 초래하는 갈등이라고 할 것이다.
인구가 감소 추세에 들어가고 경제도 저성장 기조로 가고 있는 '저출산 저성장'이란 메가 트렌드가 야기하는 세대 갈등은 시한 폭탄과 다름이 없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면 수명을 다하곤 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갈수록 늘어나서 25년 일하고 25년 은퇴생활하는 패턴이 현실이 되고 있다. 노년층이 더 오래, 그리고 많은 만성질병을 오랫동안 앓아가면서 사는 세상은 인류가 겪어 보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다. 일찍이 연금과 건강보험을 도입한 서유럽 국가들은 '저성장 저출산'이란 새로운 추세를 맞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보다 많은 젊은 세대가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연금제도와 건강보험 제도는 감당을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공무원 연금이 해마다 적자가 누적되는 현상이라든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경제적 활동을 했던 기간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은퇴생활을 하는 노년층을 젊은 세대가 어느 만큼이나 부양을 해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과거 같으면 사망했을 질병을 갖고 오래오래 사는 사람이 대폭 증가했으니 연금 재정과 건강보험 재정이 나빠지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노령연금은 보험이 아니라 국가재정에서 지출하는 공적 부조인데, 이 역시 갈수록 증가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 재정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d l같은 공적 부조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공적 부조도 연금이나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후대 세대가 경제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전제 하에 도입된 제도다. 말하자면 연금이나 공적 부조나 모두가 일종의 피라미드 계 같은 것이다. 문제는 피라미드가 무너지지 시작했으며, 젊은 세대들의 저항이 거세지면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란 데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은 영호남 지역갈등 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3. 계층적 · 문화적 갈등
우리는 분명히 포스트-산업화와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중산층을 형성했던 숙련 노동자와 사무직이란 직종은 급속하게 줄어 들어가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말하는 상징분석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중상층과 부(富)를 축적하거나 상속받은 부유층을 제외한 국민 대다수가 하층민이 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신중상층과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미디어를 통한 여론 형성과정에서도 소외되어 있으며, 정치적 참여도도 신중상층이나 부유층에 비해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어떤 계기만 있으면 이들의 불만과 욕구는 분출될 수 있다. 2008년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티파티 운동, 월가 점령 시위 같은 사회운동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경제성장이야말로 이런 계층 갈등을 저감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일 것이나 성장 자체가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구나 이제는 부유층과 신중상층, 그리고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 간에는 문화적 격차도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다. 계층간 갈등은 반드시 소득 격차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격차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른바 다문화주의이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이 외국인을 많은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도 말하는데, 거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많이 받아드린 서유럽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가를 이해한다면 다문화주의를 낭만적으로만 받아 드릴 수는 없다. 특히 우리 사회와 문화적 종교적 배경이 전혀 다른 외국인들을 대거 받아들이는 것은 장래에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4. 국민통합방안
어느 사회, 어느 나라나 갈등이 있기 때문에 갈등 그 자체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갈등에 대해 인식을 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아야 한다. 만일에 우리가 그런 의지를 상실하면 우리는 그 갈등의 와중에서 중심을 잃게 될 것이다. 또한 어떤 표피적 대책을 취하기에 앞서 문제의 본질과 현상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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