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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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상(偶像)이 되어버린 대통령(시사저널)
작성일 : 2014-11-11 13:29조회 : 2,256
시사저널 1308호 (2014년 11월 9일자) 시론
우상(偶像)이 되어버린 대통령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몇 해 전에 나온 <대통령이란 컬트>(The Cult of the Presidency)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진 힐리라는 정치학자가 쓴 책인데, 미국인들은 대통령을 국민에 희망을 주고 또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로 기대하지만 결국에는 크게 실망하고 만다는 논지였다. 한 대통령이 실패하면 그 다음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하고, 그 대통령이 실패하면 또 그 다음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한다는 것이니 이쯤되면 대통령이란 미신을 믿는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큰 소리 치는 대통령도 문제이지만, 그런 대통령을 기대하는 대중의 심리상태는 사교(邪敎) 집단을 닮았다는 이야기다.
9.11 테러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을 때 부시에 대한 지지도는 90%에 달했다. 그러나 두 번째 임기 들어서 이라크 전쟁이 오래가는 등 상황이 나빠지자 미국인들은 부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2008년 들어서 경제위기가 미국에 닥쳐오자 미국인들은 혜성과 같이 나타난 버락 오바마를 구세주처럼 생각하고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당시 언론은 부시를 '믿기 어렵게 작아지는 대통령'(incredibly shrinking president)라고 불렀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을 끝내고 아프간 전쟁을 성공시키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오늘날 오바마 역시 '믿을 수 없이 작아지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했고, 경제 살리기에도 실패했으니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11월 4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대승을 거둠으로써 오바마는 사실상 불신임 받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기가 풀겠다고 장담했던 오바마를 내버린 미국인들은 그들을 구해 줄 또 다른 우상(偶像)인 차기 대통령을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의 사정도 꼭 같다. 경제를 살려서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체를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대중은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이명박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차기 대통령으로 보고 많은 기대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내내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열렸으나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열겠다고 약속하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식이다. 정치쇄신, 경제민주화 등 모든 공약을 파기하고 대중과 담을 쌓은 대통령을 보는 국민 대중은 우상이 내린 저주에 걸린 심정일 것이다.
박 대통령도 이미 '믿기 어렵게 작아지는 대통령'이 된 형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에 대한 논의가 회자되고 있으니, 대중은 또 다시 다음번 우상을 찾아 나선 꼴이다. 기존 정치권 인사에 대한 불만에 힘입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차기 대통령감으로 급부상한 것도 그런 심리의 표현이다. 온갖 기대를 안고 당선된 대통령에 대해 금방 실망하고, 그런 실망을 다음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해소하는 대리만족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한 개인에 대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 있다. 진 힐리는 영웅적 리더십을 대통령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면서, 권력을 회의적 시선으로 보는 태도야말로 헌법과 민주국가의 토대라고 말한다. 차기 대통령에 대한 논의가 과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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