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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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어도어 루스벨트 (주간경향)
작성일 : 2015-08-22 20:55조회 : 2,723
<주간경향> 1140호 (2015년 8월 25일자)
[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
자본주의 시대의 개혁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26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는 야생자연 탐험가이며 저술가였고, 뉴욕시 경찰국장과 뉴욕주지사, 그리고 해군 차관과 부통령을 지낸 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되자 대통령이 됐다. 전기 작가 에드먼드 모리스가 펴낸 이 책은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후부터 임기를 끝낼 때까지의 8년간을 다루고 있다.
책은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자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자 휴가 중이던 루스벨트가 황급하게 워싱턴을 향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루스벨트가 부통령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자본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윌리엄 매킨리 공화당 후보와 화폐공급을 은(銀) 본위로 바꾸어서 서민경제를 돕겠다고 공약해서 선풍을 일으킨 대중선동가 윌리엄 브라이언 민주당 후보가 격돌했는데, 이 선거에서 매킨리는 간신히 승리했다. 대기업들은 거액의 정치자금을 거둬서 매킨리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그 결과 50만표 차이로 매킨리가 당선된 것이다.
루스벨트는 뉴욕 주의회 의원, 연방 인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면서 당시 만연했던 공직 부패를 비판해서 널리 알려졌다. 루스벨트는 매킨리에 의해 해군 차관에 임명돼 해군력을 증강시키는 데 앞장섰다.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루스벨트는 지원병 부대를 이끌고 쿠바로 가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국민적 영웅이 된 루스벨트는 1898년에 뉴욕 지사에 당선됐다. 뉴욕 지사로서 루스벨트는 독과점의 폐해와 노동자의 어려운 삶을 절감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19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는 매킨리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부통령에 당선됐는데, 거기에는 루스벨트가 차라리 아무런 권한이 없는 부통령이 되는 게 낫겠다는 공화당 내 보수파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1901년 9월 14일, 매킨리가 사망하자 루스벨트가 42세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것이다.
뉴욕 지사 시절 독과점 폐해 시정 추진
19세기 말 미국은 거대 기업들이 군림하는 자본주의 전성기였다. 1890년에 셔먼 반(反)독점법이 제정됐지만 연방정부는 법을 집행하지 않았고 재벌들은 지주회사를 통해 막강한 트러스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1902년 3월, 루스벨트의 명령에 따라 미국 법무부는 철도재벌 제임스 힐과 금융재벌 J P 모건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정부가 드디어 독점 재벌에 대해 칼을 들이댄 것인데, 이를 계기로 사람들은 루스벨트를 ‘독점 기업 파괴자’(trust buster)로 불렀다.
루스벨트는 취임 초에 흑인 민권운동가인 부커 워싱턴을 백악관으로 초대해서 만찬을 같이 했다. 남부에선 흑인에 대한 린치가 성행할 때였지만 루스벨트는 백악관 식사 정치를 통해서 인종차별을 시정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루스벨트는 식품위생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철도요금을 통제하는 등 민생을 보호하는 조치를 과감하게 취해서 ‘개혁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본주의의 폐단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었다.
어릴 적부터 자연을 좋아한 루스벨트는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스벨트는 산림학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기포드 핀초를 초대 산림청장에 임명했다. 루스벨트는 국가공원과 국가산림보호지구, 그리고 국가자연기념물을 지정하기 시작해서 오늘날 자연보호정책의 토대를 세웠다. 루스벨트야말로 노동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고 또한 자연을 보호하고자 했던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다.
1904년 선거에서 남부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를 거둔 루스벨트는 자신에 찬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프랑스가 포기한 파나마 운하 건설사업을 인수해서 진행하도록 해서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강화했다. 러-일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양국 대표를 포츠머스로 초대해서 사할린 반도를 분할해서 남쪽 반을 일본에게 양도하고 러시아는 일본에 전쟁배상을 하지 않는다는 중재안을 제시해서 타결시켰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루스벨트는 제정(帝政)국가인 러시아와 독일을 싫어했다.
루스벨트는 신속하게 산업화에 성공해서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된 일본을 경의의 눈초리로 보았다. 러시아 해군을 쓰시마 해협에서 격멸시킨 일본 해군이 하와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 루스벨트는 미국이 해군력을 더욱 증강해야 한다고 믿었다. 루스벨트는 최신 전함을 주축으로 한 화이트 대함대(The Great White Fleet)를 발족시켜서 세계 일주를 하도록 했다. 자신의 임기 만료를 열흘 앞두고 화이트 대함대가 돌아오자 루스벨트는 “내 임기를 끝내는 마지막 장면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했다.
루스벨트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선 일본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스벨트는 윌리엄 태프트 국방장관을 대표로 하고 의원 30명과 그들의 부인들을 포함한 친선사절단을 여객선에 태워서 일본과 필리핀을 방문하도록 했다. 1905년 7월에 일본에 도착한 일행에는 루스벨트의 큰딸 앨리스, 그리고 앨리스와 결혼하게 될 니콜라스 롱워스 의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21세이던 미모의 앨리스는 일본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일본 국민들이 앨리스에 매료되어 있을 때 태프트 장관과 가쓰라 일본 총리는 향후 아시아의 질서를 좌우할 밀담을 했다. 미국은 일본의 한국 통치를 인정하며, 일본은 필리핀이 미국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상호간에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루스벨트는 한국이 러시아나 중국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존재는 19년이 지나서 한 미국의 연구자에 의해 밝혀졌다.
태프트-가쓰라 밀약, 조선에는 재앙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있고 나서 불과 몇 달 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런 탓인지 루스벨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정은 좋지 못하다. 이 책도 태프트-가쓰라 밀약은 루스벨트의 생각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앨리스는 우리나라에도 들러서 관광을 했는데, 고종은 앨리스를 ‘미국의 공주’로 생각하고 극진하게 대접했다. 고종과 주변 인물들은 앨리스를 대접하면 미국 정부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할 정도로 멍청했다. 이 책은 앨리스가 한국도 방문했었다고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만다. 미국 유학 중이던 이승만이 루스벨트를 자택으로 찾아가서 조선의 주권 수호를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아예 언급되어 있지 않다.
루스벨트는 1904년 대선에 나설 때 자신은 1908년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루스벨트는 국무장관이던 엘리후 루트가 자신의 후임자로 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대기업을 대리했던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루스벨트는 윌리엄 태프트를 차기 공화당 후보로 지지했고 태프트의 당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태프트는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등 루스벨트가 이루어 놓은 개혁을 무력화시켰다.
태프트가 기포트 핀초를 산림청장에서 해임하자 루스벨트는 1912년 대선에 다시 나서기로 결심했다. 공화당이 태프트를 후보로 지명하려고 하자 루스벨트는 탈당해서 진보당을 만들어서 선거에 나섰다. 공화당이 보수파와 개혁파로 나누어진 것이다. 그 해 선거에서 루스벨트는 태프트보다 표를 더 많이 얻었지만 민주당 후보 우드로 윌슨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역사가들은 루스벨트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으면 미국이 독일을 향해 보다 적극적인 외교공세를 펼쳐서 1차 대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루스벨트는 1919년에 60세 나이로 사망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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