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번영의 1920년대’ 이끈 쿨리지
작성일 : 2015-09-10 23:50조회 : 2,043
2015.09.15ㅣ주간경향 1143호
[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
작은 정부 추구, ‘번영의 1920년대’ 이끌어
- 쿨리지는 자신이 공복(公僕)임을 깊이 인식했던 대통령이었다. 쿨리지는 정부 지출을 줄여서 균형예산을 이루고자 했고, 그런 노력에 힘입어 1923년에 223억 달러이던 연방정부 부채는 1929년에 169억 달러로 줄었다. -
1923년 8월 2일 워런 하딩 대통령이 급사하자 부통령이던 캘빈 쿨리지는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1924년 대선에서 승리해서 4년 임기를 더 채우고 은퇴한 쿨리지는 ‘번영의 20년대’(The Roaring Twenties)를 이끌었으나 퇴임 후에 발생한 대공황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쿨리지는 부패 스캔들로 얼룩진 정부를 쇄신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연방정부 개혁을 내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초에 쿨리지의 초상화를 백악관 회의실에 내걸자 작은 정부를 내세웠던 쿨리지는 재조명을 받게 됐다. 찰스 존슨이란 젊은 연구자가 펴낸 이 책도 오늘날 미국이 쿨리지의 리더십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지 W 부시의 무리한 전쟁과 이에 따른 경제 악화, 그리고 버락 오바마의 과다한 경제사회 정책으로 연방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 부채를 줄여서 번영을 가져온 쿨리지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1872년에 버몬트주에서 태어난 쿨리지는 앰허스트 대학을 다녔고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매사추세츠주 노스햄튼에서 성실한 변호사로 명성을 얻은 그는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그리고 상원의장을 지냈고 부지사를 거쳐 1919년에 주지사가 됐다.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있을 때 보스턴 경찰이 파업을 감행하자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 방위군을 소집해서 단호하게 대처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전국적 주목을 받게 됐다.
1920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워런 하딩을 대통령 후보로, 쿨리지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하딩은 당 간부들의 선택이었지만 쿨리지는 대의원들의 선택이었다. 하딩과 쿨리지는 우드로 윌슨이 이끌었던 8년 동안 미국은 비정상이었다면서 자신들이 미국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약속했다. 쿨리지는 “윌슨이 헌법을 무시하고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다”고 비난했다. 하딩과 쿨리지는 유권자의 60%를 넘는 지지를 얻어 대승을 거두었다. 부통령이 된 쿨리지는 공식석상에서 말수가 적어서 ‘조용한 캘’(Silent Cal)이란 별명이 생겼다.
하딩 대통령 급사, 쿨리지 부통령이 승계
새로 들어선 하딩 정부는 순탄치 못했다. ‘티폿 돔 스캔들’로 불리는 석유채굴권을 둘러싼 뇌물 사건이 터져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그러던 중에 철도 파업이 발생했으나 권위가 실추된 정부는 위기에 대처할 수 없었다. 1923년 8월 하딩은 뇌출혈로 급사했고 뇌물 스캔들과 무관한 쿨리지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쿨리지는 하딩이 임명한 국무장관 찰스 휴즈, 재무장관 앤드루 멜론, 상무장관 허버트 후버에게 유임을 요청했다. 대통령은 정부를 이끄는 ‘동료 중의 리더’라고 생각한 쿨리지는 각료의 판단을 존중했지만, 동시에 대통령이 국정에 대해 최종적 책임을 지고 있음을 잊지 않았다. 비대해지는 정부를 우려한 쿨리지는 대통령의 인사권이야말로 관료제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그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약하는 의회의 조치가 위헌이라고 생각해서 이 문제를 대법원에 가져가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쿨리지는 정부 지출을 줄여서 균형예산을 이루고자 했고, 그런 노력에 힘입어 1923년에 223억 달러이던 연방정부 부채는 1929년에 169억 달러로 줄었다. 쿨리지는 제한된 정부를 주창했던 토머스 제퍼슨이 옳았으며 ‘견제와 균형’을 구현한 미국 헌법은 인류가 만든 최고의 문서라고 생각했다. 쿨리지는 대부분의 법률은 잘못됐거나 불필요한 것이며, 백악관을 방문하는 사람의 90%는 해서는 안 되는 부탁을 하고 있다고 술회했다.
쿨리지가 대통령을 지낸 기간 동안 미국의 연 경제성장률은 9%를 넘었고 이 덕분에 흑인, 일본계 주민 등 소수인종들이 많은 혜택을 입었다. 우드로 윌슨과 그의 각료들은 인종주의자들이었지만 쿨리지는 흑인에 대한 린치를 비난하고 흑인들을 위해 세워진 하워드대학에 연방 예산을 지원하는 등 흑인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쿨리지 임기 중 흑인의 실업률은 백인 수준으로 떨어졌고 흑인 유아 사망률도 대폭 감소했다.
1924년 대선을 앞두고 14살 된 아들이 사망하자 쿨리지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 쿨리지를 대신해서 부통령 후보 찰스 도스가 정력적으로 유세를 펼쳐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1923년 9월 일본 도쿄에 대지진이 일어나자 쿨리지는 미 해군 아시아 함대를 도쿄로 보내서 구호활동을 돕도록 했고, 미국민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서 1200만 달러를 모금해서 일본에 전달했다. 쿨리지는 주지사와 대통령으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가톨릭 신자와 유태인 등 미국 사회의 소수자를 능력 위주로 발굴해서 기용했다. 쿨리지는 1907년에 이미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으며, 그가 부통령과 대통령으로 있었던 8년 동안 8명의 여성이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는데, 그 중 7명이 공화당원이었다.
흑인 등 소수인종 권익신장에 큰 기여
쿨리지가 재선에 성공하자 휴즈 국무장관이 사임하고 후임으로 프랭크 켈로그가 임명됐다. 켈로그 국무장관은 켈로그-브리앙 조약으로 불리는 부전(不戰)조약을 체결했다. ‘체약국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 조약에 쿨리지는 서명을 했지만 조약이 평화를 담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1929년 초 임기 마지막 순간에 쿨리지는 항공모함 2척과 중순양함 15척을 건조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렇게 건조된 항모 렉싱턴과 사라토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큰 활약을 했다.
두 번째 임기에 들어서서 쿨리지는 아들을 잃어버린 상실감 때문에 말이 더 적어졌다. 그럼에도 쿨리지는 자신이 공복(公僕)임을 깊이 인식했던 대통령이었다. 자신도 평범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개인이 보다 많은 소득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쿨리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세금을 인하해서 그가 대통령직을 떠날 때엔 미국인 98%가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1920년에는 연간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미국인이 전체 세입의 29.9%를 냈으나 1929년에는 그 비율이 62.5%에 달했다. 1920년대 호황기에 많은 미국인들이 주식을 샀으나 쿨리지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아서 대공황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
대통령을 그만두자 대기업 회장, 대학 총장 등 많은 자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쿨리지는 모두 사양하고 신문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은퇴생활을 했다. 쿨리지는 자신의 칼럼에서 “대공황은 성급한 정책 결정이 아닌 냉정한 인내로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해서 정부를 유지하려는 발상은 잘못이고, 높은 세금은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계층간 갈등을 야기한다”고 했으며, “부자가 갖고 있는 부(富)의 힘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부자는 이따금 그것을 남용하기도 하지만 거부가 3대를 가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고 설파했다.
쿨리지는 경제와 재정은 앤드루 멜론 재무장관에게 일임했다. 하딩, 쿨리지, 그리고 후버 대통령에 걸쳐 재무장관을 오래 지내면서 감세를 통해 민간투자를 촉진해서 젖과 꿀이 흐르던 1920년대를 만들어낸 멜론은 대공황이 닥쳐오자 장관직을 사임했다. 쿨리지는 1933년 1월에 60세 나이로 자택에서 급성 심혈관 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쿨리지는 대통령 재임 시에 균형예산을 통해 정부 부채를 줄인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었다. 쿨리지는 청렴하고 권한을 절제했던 대통령이었다. 많은 나라들이 정부의 비효율과 막대한 공공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즈음 그의 정치철학이 재평가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COPYRIGHT ⓒ 이상돈닷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