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울증이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주간경향)

작성일 : 2015-10-08 09:45조회 : 1,962

주간경향 2015년 10월 13일자 1146호

[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

우울증이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Jishua Wolf Schenk, Lincoln's Melancholy (2005, Houghton Mifflin Co.)

1860년 5월,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오두막에 살면서 숲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은 평민 이미지에 힘입어 링컨은 유력한 대권 주자였던 윌리엄 시워드 상원의원을 물리치고 후보로 지명된 것이다. 전당대회장은 환호하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링컨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된 후에나 링컨의 모습은 우울함 그 자체였다.

링컨의 심리상태를 면밀하게 연구한 이 책의 저자는 링컨이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다고 결론을 내린다. 링컨은 젊었을 때부터 매우 우울했다. 공공연하게 울기도 했고, 감상적인 시 구절을 읊었으며, 어울리지 않는 조크로 억지로 웃음을 만들려고 했다.

링컨의 부모는 18세기 말에 버지니아 주에서 켄터키 주로 이주해 와서 세 아이를 낳았는데, 1809년에 태어난 에이브러햄은 둘째였다. 1816년에 링컨 가족은 인디애나 주로 이사했다. 2년 후에 링컨의 어머니는 괴질로 사망했다. 링컨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자 어린 남매들은 한동안 스스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링컨은 누나 새러가 출산 중 사망하자 깊은 슬픔에 빠졌다. 링컨의 아버지는 책을 좋아하는 링컨이 농사를 게을리한다면서 구타하곤 했다.

21세가 되자 링컨은 일리노이주 뉴살렘으로 혼자 이사를 했다. 책을 많이 읽은 그는 마을에서 인기가 좋았다. 뉴살렘에 온 지 한 해가 안 돼 링컨은 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1834년에 다시 출마한 링컨은 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링컨은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했다.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링컨의 첫사랑이었던 애나 러틀리지도 사망했다. 애나의 죽음에 비통한 나머지 링컨은 실성하다시피 했다.

첫사랑 여인의 죽음에 큰 충격 받아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링컨은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로 이사했는데, 그의 나이 28세였다. 링컨은 잡화점을 운영하던 조슈아 스피드의 호의로 그의 숙소에서 4년 동안 같이 살면서 우정을 나누었다. 링컨은 신문에 자살을 예찬하는 시를 익명으로 발표할 정도로 심각하게 우울했다고 스피드는 전했다. 링컨은 스피드의 소개로 켄터키주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 메리 토드와 사귀게 됐다. 스피드는 상점을 닫고 고향인 켄터키주로 돌아갔고, 링컨은 메리와 결혼하게 됐다. 링컨은 우울증과 소심증이란 진단을 받았고 주위 사람들은 그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꼈다. 좋은 집안 출신인 메리는 총명했지만 사소한 일로 화를 잘 내고 링컨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메리가 화를 내면 링컨은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없이 위축돼 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불행한 부부 생활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정치적 꿈을 키워 나갔고, 1846년 선거에 휘그당 후보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링컨을 도왔던 친구들은 그의 당선을 축하했지만 정작 링컨은 담담했다. 연방 하원의원으로서 링컨은 멕시코와의 전쟁이 잘못이라고 제임스 폴크 대통령을 비난해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반발을 일으켰다. 메리와 아이들은 고향인 켄터키주로 돌아갔고, 워싱턴에 홀로 남은 링컨은 연방 하원의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링컨은 자신이 약속한 대로 재선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가 지지했던 재커리 테일러가 대통령이 된 데 위안을 느꼈다. 링컨은 테일러 행정부에서 공직을 원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고향에 가서 다시 변호사 개업을 하기로 했다.

정치인으로 실패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링컨은 세 살 난 아들이 죽자 큰 슬픔에 빠졌다. 이어서 부친이 사망했다. 링컨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링컨은 슬픔을 침묵으로 이겨냈으며, 슬픔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링컨이 시를 많이 읽고 암송했던 것도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함이었다. 링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비극을 읽었고, 에드가 앨런 포의 음침한 소설을 좋아했다. 링컨은 자신의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1850년대 들어서 노예 문제가 논란이 되자 링컨은 갑자기 노예 반대론자로 부상했다. 링컨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런 기회가 온 것이다. 링컨은 노예제가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악(惡)’이라고 주장했다. 스티븐 더글라스 상원의원이 광활한 네브라스카주 지역을 두 개의 주로 분리해서 주민들이 노예제 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안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노예제를 유지하는 남부와 노예제를 금지하는 북부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 놓았던 ‘미주리 타협’은 무너졌다. 이 여파로 휘그당은 몰락했고 공화당이 탄생했으며, 노예제를 반대한 링컨은 공화당원이 됐다.

1856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제임스 부캐넌이 대통령에 당선됐고, 노예 문제는 갈수록 뜨거운 쟁점이 됐다. 1860년 2월, 링컨은 뉴욕 맨해튼의 쿠퍼 유니언 강당에서 스티븐 더글라스와 노예제 폐지를 두고 대토론을 벌여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이 유명한 토론에서 노예제를 즉시 폐지하자고 주장한 링컨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부각됐다. 링컨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됐고, 민주당이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남부 민주당과 노예제를 점진적으로 폐지하려는 북부 민주당으로 분열된 데 힘입어서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남북전쟁 중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려

남부가 연방에서 이탈을 선언해 남북전쟁이 시작됐으나 북군은 버지니아 주에서 남군에 연거푸 참패를 당했다. 링컨의 정치적 동지였던 에드워드 베이커가 전사했고, 얼마 후에는 막내 아들 윌리가 질병으로 죽었다. 극도로 우울해진 링컨은 윌리를 안치한 관을 자주 열어 보고 오열했다. 신문은 링컨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고 남부 출신인 부인 메리를 조롱했다. 링컨은 북군 사령관이던 조지 매클레란 장군과 사이가 안 좋았다. 앤티탬 전투에서 북군이 남군을 간신히 제어하자 링컨은 노예해방령을 발표했다. 전쟁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링컨은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대통령이 4류라서 사태가 이렇게 됐다”는 말이 나돌았다.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비로소 북군이 승리하자 링컨은 심각한 리더십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로 북군의 지휘를 맡은 윌리엄 그랜트 장군과 윌리엄 셔먼 장군은 남부를 아예 불살라 버리는 초토화 전략을 구사했다. 참혹한 전쟁의 현실을 보아야 했던 링컨은 갈수록 수척해졌다. 1864년 선거에서 링컨이 재선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으나 그해 9월 셔먼 장군이 애틀랜타를 점령하자 상황은 링컨에게 유리하게 변했다. 재선에 성공한 링컨은 1865년 4월 북군이 탈환한 남부연합의 수도 리치몬드를 방문했다. 파괴된 도시를 보고 링컨은 놀랐지만 그래도 전쟁이 끝나간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1865년 4월 14일은 부활절을 앞둔 금요일이라서 정부 기관은 오전만 일을 했다. 링컨은 오전에 그랜트 장군으로부터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항복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꿈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링컨은 전날 밤 아주 나쁜 꿈을 꾸었다. 숙소로 돌아간 링컨은 가족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이제는 지쳤다”고 말했다. 링컨은 경호원인 윌리엄 쿠크를 대동하고 전쟁성(국방부 전신)으로 가서 에드윈 스탠튼 장관을 잠시 만났다. 백악관으로 돌아가면서 링컨은 쿠크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링컨은 옷을 갈아입고 포드 극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암살자의 총탄을 맞았다. 저자는 링컨이 심각한 우울증과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생존해야 하는 의지와 공적인 의무감을 깨달았으며, 그것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남북전쟁이란 비극을 극복할 수 있게 했다고 보았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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