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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베트남 운명을 바꾼 1968년 대공세 (주간경향)
작성일 : 2016-01-11 22:04조회 : 2,688
주간경향 1158호 2016년 1월 5일자
[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
베트남 운명을 바꾼 1968년 구정 대공세
- 제임스 로빈스, <이번엔 우리가 이긴다> (2010년, 엔카운터 북스)
- James S. Robbins, This Time We Win (Encounter Books, 2010, 364 pages)
군사적으로 볼 때 구정 대공세는 북베트남의 패배였다. 미군과 남베트남 정부군, 그리고 한국군은 침략해 내려온 공산군을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북베트남이 기대했던 인민봉기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베트남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식으로 보도를 했다.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결국 패배했다. 미국 여론이 전쟁에 대한 반대로 돌아선 계기는 1968년 초에 있었던 북베트남군의 구정(舊正) 대공세였다. 대규모 지상군 파병과 폭격을 통해 북베트남의 전쟁 의지를 꺾어 놓은 줄 알았는데, 구정 대공세는 그런 판단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로빈스가 펴낸 이 책은 그 같은 통념을 반박하고 있다. 구정 대공세는 수세에 몰린 북베트남의 도박이었고, 미국은 군사적으로 승리했으나 여론전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1965년 들어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됐다. 미 합동참모본부는 북베트남에 폭격과 해상봉쇄를 가하고 남베트남에 지상군 50만명을 파견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린든 존슨 대통령은 합참의 주장을 따르지 않고 제한된 전쟁을 통해 북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다.
1967년 한 해 동안 미군은 베트콩을 상대로 공세를 펼쳐서 상황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해 9월에는 남베트남에서 선거가 이루어져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응웬반티에우 장군이 대통령이 됐고, 응웬까오끼 장군은 부통령이 됐다. 사이공 정부는 오랜만에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베트콩의 입지가 약해졌다. 그러자 북베트남 군부는 대규모 공세를 펼쳐서 전세(戰勢)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들은 대규모 공격을 가하면 남베트남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서 사이공 정부가 무너질 것으로 기대했다.
1967년 말 미군 지휘부는 북베트남의 대공세가 임박했다고 예상했다. 1968년 1월 21일, 북베트남군은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던 케산 고지(高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구정을 하루 앞둔 1월 29일부터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해안 요충지인 다낭과 나트랑, 그리고 중부산간 지역에 위치한 쁠레이쿠 등에 공세를 펼쳤다. 1월 31일 심야에는 베트콩 특공대가 사이공 한복판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공격했다. 대사관을 지키던 해병대원들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미 해병 5명이 사망한 끝에 침입자를 진압할 수 있었다.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베트콩 특공대의 미국 대사관 공격
베트콩은 사이공 시내를 누비면서 학살을 자행하다가 정부군에게 쫓겨 슬럼지역으로 숨어 버렸다. 이 와중에 베트남 경찰국장인 응웬응옥로안 장군은 사로잡힌 베이 롭이란 베트콩 장교를 처형했는데, AP통신의 에디 애덤스 기자가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서 뉴욕타임스 등 주요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됐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남베트남군 장교가 된 응웬응옥로안은 프랑스 공군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1965년 쿠데타를 일으킨 응웬까오끼 장군도 응웬응옥로안과 함께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공군 조종사로 명성을 떨친 응웬응옥로안은 친구인 응웬까오끼 장군이 총리가 되자 보안사령관이 됐다. 정부에 불만을 가진 장군들을 진압해서 정권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 그는 경찰국장이 돼서 수도 사이공의 치안을 책임졌다.
응웬응옥로안에 의해 처형된 베이 롭은 암살조를 이끌고 있었다. 베트콩은 남베트남 정부 인사와 이들의 가족, 그리고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인과 민간인 지도층을 마구 암살했다. 이들에 의해 1967년 한 해 동안에 3706명이 암살됐고, 5369명이 납치됐다. 구정 대공세가 시작되자 응웬응옥로안은 경찰병력을 이끌고 베트콩 본거지를 공격하던 중 정부군 장병이 체포해서 데리고 온 베이 롭을 보자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부하 장병이 머뭇거리자 응웬응옥로안은 권총을 꺼내서 베이 롭의 머리를 쏴 버렸다. 응웬응옥로안은 베이 롭이 경찰관 가족 수십 명을 학살한 암살조장임을 알고 있었다.
다낭에선 미 해병대와 한국군 해병대가 북베트남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유서 깊은 고도(古都) 후에에선 미 해병대가 북베트남군과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끝에 공산군을 패퇴시켰다. 후에는 완전히 파괴됐고 미군과 정부군은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내야만 했다. 후에를 점령한 공산군은 무고한 시민을 학살해서 매장했는데, 나중에 발굴된 시신만 2880구에 달했고, 2000명이 실종된 것으로 확인됐다. 후에 대학살은 베트남 전쟁 중에 공산군이 저지른 가장 잔악한 학살이었다.
1973년 평화협정 2년 후 베트남 공산화
케산에서는 미 해병대가 77일 동안 버티면서 5배나 많은 북베트남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미 공군의 공습과 대규모 포격 지원에 북베트남군은 막대한 희생자를 내고 궤멸하고 말았다. 케산 전투는 후에 전투와 더불어 베트남 전쟁 중 미군이 겪었던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현지 미군 지휘관은 후퇴하는 북베트남군을 추적해서 섬멸하고자 했지만 존슨 대통령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군사적으로 볼 때 구정 대공세는 북베트남의 패배였다. 미군과 남베트남 정부군, 그리고 한국군은 침략해 내려온 공산군을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북베트남이 기대했던 인민봉기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북베트남군이 후에에서 양민 수천 명을 학살했음이 알려지자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베트남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식으로 보도를 했다. CBS 방송의 메인뉴스를 진행하던 월터 크롱카이트는 구정 대공세가 한창이던 때 남베트남을 방문하고 2월 27일에 베트남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그는 “이제 미국이 협상으로 전쟁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방송이 나가고 5주일 만에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해 협상을 제안하고 자신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해 가을 대선에선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이 당선됐다.
1969년 12월 라이프지(誌)는 남베트남의 밀라이라는 마을에서 미군 부대가 양민을 학살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미국 정부가 조사에 나섰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현장을 지휘했던 켈리 중위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1971년에는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게 된 과정을 정리해 놓은 기밀문서가 뉴욕타임스에 의해 폭로되었다. 이 문서는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하게 된 단초였던 통킹만 사건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1973년에 베트남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2년 후에 남베트남은 공산화되고 말았다.
응웬응옥로안 장군은 구정 대공세의 막판에 작전을 지휘하던 중 중상을 입고 경찰국장을 그만두었다. 사이공이 북베트남군에 함락되던 날에 그는 가족과 함께 수송기편으로 탈출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정착해서 피자 가게를 열었지만 그의 신분이 드러나서 ‘처형자’라는 비난에 시달리자 문을 닫고 말았다. 그가 베트콩을 처형하는 장면을 찍은 애덤스 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자신의 사진이 ‘잔학한 처형’으로 인식되는 데 깊은 부담을 느껴야만 했다. 1998년 초 애덤스는 응웬응옥로안이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그를 찾았다. 애덤스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자신은 평생토록 그것을 잊으려 했다”고 털어 놓았다. 응웬응옥로안은 “운명이다”라고 답했다. 응웬응옥로안은 그해 7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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