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로버트 배어, 우리가 아는 악마 (2008년)
2009-10-27 00:02 1,376 이상돈



로버트 배어, 우리가 아는 악마 (2008, 크라운, 279쪽, 22.95 달러)

Robert Baer, The Devil We Know (2008, Crown, 279 pages, $22.95)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배어는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한 후 중앙정보국(CIA)에 들어가서 20년간 해외요원으로 활약하고 1997년에 은퇴했다. 그는 인도, 레바논, 타지키스탄, 이라크 등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분쟁지역에서 비밀요원으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악(惡)을 보지 않다’(‘See No Evil’)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 책에서 배어는 1983년 레바논 미국 대사관 폭파 사건 등 테러의 배후에 이란이 있으며, 9-11 테러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2008년에 펴낸 ‘우리가 아는 악마’는 핵을 보유하게 되는 이란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란은 이미 강대국으로 등장했다면서 미국은 그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란은 이제 떠오르는 별이고, 미국이 의존하고 있는 순니파(派)의 구(舊)체제는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미국의 친구인 순니파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사우디 아라비아는 지탱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고, 이슬람 역사상 최초로 시아파가 메카를 장악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란을 정확히 보기 위해선 테헤란을 보기 보다는 레바논, 이라크,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은 중동으로부터 너무나 떨어져 있으며, 그 복잡성과 역사에 대해 순진하다. 그런 결과로 워싱턴 정가(政街)는 워싱턴을 들락거리는 이란과 아랍의 망명객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그로 인해 미국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대외적 모험을 저질렀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준 이라크 망명객 아메드 찰라비는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에 대해서 미국의 네오콘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국에게 불편한 진실은 순니파가 지배하던 세속적인 이라크가 사라짐에 따라 이란의 패권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중동에서 스스로 패배를 선택한 셈이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군대에 의해 유지되는 집단이었지 이미 나라가 아니었다. 미군은 후세인의 군대를 파괴함으로써 이라크 자체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의 민간정부에 이란은 이미 깊숙이 침투해서 이라크의 이란화(化)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순니파와는 달리 시아파는 교황과 같은 교회 수장이 있는데, 이란의 아야톨라가 바로 그런 지위이다.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란은 이라크에서 미국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기를 기다렸는데, 그런 면에서 이란의 천적(天敵)과 같은 이라크 군대를 괴멸시킨 미국은 세기의 실책을 범한 것이다.

2000년 5월에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이 1982년 이래 점령해 오던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이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군한 것에 비견되는 일이었다. 공산 베트남은 미 본토를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레바논을 장악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패배는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란의 전위조직이나 마찬가지라서,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 버리겠다는 이란의 공언은 결코 공허한 말이 아니다.

이란을 ‘이슬람 파시스트’ 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이란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세력은 실용적이며 계산에 매우 밝은 집단이다. 이란의 대리인으로 레바논을 장악한 헤즈볼라는 테러 집단이라기 보다는 비정규군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란은 이라크 전쟁의 배후를 교묘하게 조종해서 그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반군(叛軍)의 집요한 테러활동으로 영국군은 이라크 남부 유전(油田)이며 항구인 바스라를 장악하지 못했다. 오늘날 바스라는 이란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1980년 9월에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은 큰 대가를 치렀고, 또한 큰 교훈을 얻었다. 당시 이란 군부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에게 전쟁의 무모함을 설득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란은 다시는 그와 같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그 후 이란은 헤즈볼라 같은 대리인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오늘날 이란은 325,000명의 정규군과 125,000명의 공화국 수비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규전에서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이란은 미사일 등 비대칭적 전쟁수단을 많이 갖추고 있어 정규전이 발생했을 경우에 미국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자치령과 국경을 개방하는 등 쿠르드족(族)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쿠르드 자치령은 사실상 이라크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터키는 자국내의 쿠르드족의 동향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은 쿠르드 자치령을 통해서 터키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있어 터키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란에 긴장하는 국가는 터키 만이 아니다. 인구의 20%가 시아파인 파키스탄도 이란의 영향력 증대에 긴장하고 있다. 2001년에 미국 등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섬멸하자 이란은 그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란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의 서부 지역은 이미 경제적으로 이란에 예속되어 있다. 이란은 중앙아시아에 거대한 제국을 이루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란의 궁극적 야망은 걸프 지역을 석권하는 것이다. 순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란의 군사적 위협에 독자적으로 대처할 수 없고, 사우디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사우디와 인근 아랍 토후국들을 지키고 있다. 아랍 토후국(UAE)은 인구의 20% 이상이 시아파 이란인이다. 두바이에는 특히 많은 이란인들이 살고 있어서 알 머흐툼의 족벌 정치가 흔들리면 이란이 조정하는 정권 전복이 가능할 것으로 추측된다. 1782년까지 이란의 일부였다가 독립한 토후국 바레인도 이란의 수중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바레인을 언젠가는 자신들이 회복할 영토로 보고 있다. 바레인에 있는 미 5함대 기지가 언제까지 온전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배계층은 불만세력을 돈으로 매수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으니, 사우디 그 자체도 언제 무너질 줄 알 수 없는 기능이 마비된 국가인 것이다. 한때는 중동의 강자였던 시리아는 1990년 7월에 이란에게 군사적으로 굴복해서 사실상 이란의 대리인을 전락하고 말았다.

대부분이 순니파인 팔레스타인 아랍인들도 이란을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란은 가자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하마스에 대해서도 지원을 강화해서 유대관계를 넓히고 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들을 이용해서 요르단 왕국을 전복시킬 야망을 갖고 있다. 요르단 왕국이 붕괴되고 강경한 이슬람 정권이 요르단에 들어서면 이스라엘의 안보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추세를 보면 순니파 아랍은 불가역적으로 쇠망의 길을 가고 있고, 이란이 주도하는 시아파 이슬람 패권시대가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랍 민족주의와 세속적 국가주의는 이슬람 세계에선 실패했고, 순니가 지배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국가들은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이슬람의 성지(聖地)인 메카가 이란의 수중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동과 남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중요한 맹방(盟邦)인 파키스탄과 사우디 아라비아는 국가 붕괴의 길을 가고 있고, 그로 인한 공백을 이란이란 거대한 제국이 장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냉엄하다. 이란은 제국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이 미국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바로 자신들을 ‘제국’으로서 대우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지킬 수 없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 주변의 두바이 같은 호텔이나 잔뜩 세워놓은 무능한 토후국가들, 그리고 쓰러져가는 파키스탄을 지킬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을 속여가면서 전쟁을 하는 미국은 어리석다고 본다. 시아파의 승리는 이미 굳어졌고, 미국은 이란을 강대국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 이상돈
(* 책 표지는 첨부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게일 쉬슬러, 조국과 해병대를 위하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