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스콧 라스무센 외, 정말 화난다 (2010년)
2010-10-26 00:49 1,728 관리자


스콧 라스무센 외, 정말 화난다 (2010년, 하퍼, 328쪽, 27.99달러)

Scott Rasmussen and Douglas Schoen, Mad As Hell (2010, Harper, 328 pages, $27.99)

‘라스무센 리포트’라는 정치여론 조사회사를 운영하는 스콧 라스무센, 그리고 역시 ‘펜, 쉔 앤드 벌랜드’라는 정치여론 조사회사를 운영하는 더글라스 쉔이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티 파티 운동이 어떻게 우리의 양당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티 파티 운동으로 인해 미국의 정치지평이 뿌리부터 변화하고 있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라스무센은 정당에 속해 있지 않은 무당파(無黨派)이고 쉔은 민주당원인데, 이들이 운영하는 두 회사 모두 정치여론조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책의 제목 ‘Mad As Hell’은 티 파티 집회에 나온 어느 시민이 한 말에서 따 온 것인데, 이 경우에 ‘mad’는 ‘미쳤다’는 의미 보다는 ‘화났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고, ‘as hell’은 그대로 번역하면 ‘지옥처럼’, 즉 ‘정말로’라는 의미이니까 ‘mad as hell’은 ‘정말 머리 꼭지까지 화가 났다’는 의미가 된다. 이 책은 저자들의 전공인 정치의식 여론조사를 토대로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티 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들은 티 파티 운동이 풀뿌리 대중운동(grass-root movement)이며 미국의 정치지평을 크게 바꾸고 있다면서, 주류(主流) 언론이 이런 사실을 호도(糊塗)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티 파티 운동의 실상을 이 책을 통해 보기로 하자.

2009년 4월 15일, ‘세금의 날’(Tax Day)을 기념해서 전국 곳곳에서 오바마 정부의 지출과 세금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했는데, 이들이 자신들은 ‘티 파티’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워싱턴의 정치 엘리트와 미디어 엘리트는 이를 무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부자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쇼”라고 폄하했고,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해리 레이드는 “거짓말, 루머, 선동”이라고 비난했다. 네트워크 뉴스는 이를 보도하는 데 대단히 인색했고, 오직 폭스 뉴스만 상세하게 보도했다. 티 파티 운동이 갈수록 커지자 주류(主流) 언론은 이것이 ‘극단적인 우익’이라고 몰아 부쳤다. 하지만 티 파티는 대중으로부터 폭 넓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오마바 행정부가 편협하고 이념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대한 반(反)작용으로 생겨난 비(非)이념적 운동이라는 평가가 뒤늦게 나오고 있다.

주류 언론은 티 파티가 인종주의자 집단이라고 비난하기도 하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선 티 파티의 지지를 받고 흑인 등 유색인종 후보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했고, 많은 시위현장에 소수인종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비난은 사실이 아니다. 티 파티가 내 세우는 아젠다는 재정적 책임, 제한된 정부, 그리고 재정적자 감축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티 파티를 구성하는 집단은 다음과 같은 세 부류이다. 첫째는 이제까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화가 나서 참여하는 경우이다. 둘째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무책임한 정부지출과 재정적자에 앞장 서고 있다고 보는 무당파(無黨派 : Independents)이다. 셋째는 상실감에 빠진 골수 공화당원들이다. 티 파티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1/4 – 1/3은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를 찍었으며, 이들의 40-50%는 공화당원이 아니며, 1/3은 자신들이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공화당 외곽조직이니 극우집단이니 하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티 파티 운동은 2008년 금융위기라는 미증유의 사태와 이로 인한 대량감원 등 실업문제, 그리고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가 취한 금융기관과 자동차 회사에 대한 구제금융과 막대한 재정지출에 대한 환멸에서 시작되었다. 티 파티는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의 지도층도 한통속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티 파티의 위력을 실감한 공화당 리더들은 티 파티의 눈치를 보게 됐다. 2010년 3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오바마도 티 파티 운동이 ‘심각하고 정당한 관심사’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티 파티 운동은 주류 언론의 무관심과 폄하 그리고 공격을 이겨내고 이제 당당한 지위를 구축한 것이다.

티 파티 운동가들은 오바마가 선거운동을 할 때는 중도적 입장에 서있다가 취임하자마자 진보좌파 성향으로 돌아 버리고 기성체제와 결탁한데 대해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티 파티 운동이 포퓰리즘 운동(populism movement), 즉 대중운동인 것은 분명한데, 사실 미국은 이제까지 여러 차례의 전국적 포퓰리즘을 경험했고, 그런 과정을 거쳐 사회가 발전해 왔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을 지지한 세력이 주도한 대중민주주의 운동이 그러했고, 대공황 시절에 뉴딜 정책을 가져온 과정도 그러했다.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대승을 거둔 것도 그가 내건 메시지가 대중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티 파티 운동이 일어난 것은 직장과 집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오바마 정부는 큰 은행과 보험회사, 그리고 자동차회사에 구제금융을 주는 데만 관심이 있고 일반국민에 대한 배려가 없는데 대한 분노가 크게 작용했다.

오늘날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GDP의 10%를 상회하고, 미국의 실업률은 17.5%에 달하고 있다. 실업은 단순히 제조업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로펌과 회계법인, 미디어 등 화이트 칼라 직종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10년 동안 미국에선 제조업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워싱턴 정부는 국민들과 불통(不通)인 데 대한 분노가 티 파티 운동으로 발전한 셈이다. 티 파티 운동은 진보와 보수,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서 국민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는 자치민주주의(self-government)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티 파티 운동이 생겨난 또 하나의 토양은 엘리티즘에 대한 저항감이다. 많은 미국민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금융기관과 자동차회사에 대해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주는 것을 보고서 자신들의 나라가 정치, 경제, 싱크탱크, 미디어 등 각계에 포진한 엘리트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자신들은 영향력이 없음을 알게 됐다. 이들은 특히 금융섹터가 향유하고 있는 막대한 부(富)와 영향력에 대해 놀라고 분노했다. 이들은 엄청나게 비싼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들만이 이런 세계에 진출해서 자신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수입을 올리면서 국민세금의 지원을 받는데 대해 특히 분노했다. 오바마 정부의 핵심 멤버인 램 에마누엘, 팀 가이스너, 래리 서머스 같은 체제를 움직이는 엘리트가 걸어 온 길과 이들이 향유하는 특권은 티 파티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이들은 오바마 정권을 그들과 다른 세계에서 사는 집단으로 보게 됐다. 

티 파티 운동은 오늘날 미국이 대다수 국민인 보통사람들(ordinary people)과 엘리트로 분열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보수와 진보로 분열되어 있는 줄 알았던 미국은 실상은 보통사람들과 엘리트로 구분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일깨워 준 사람은 2008년 대선 때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었다. 페일린은 맥주 캔 팩을 들고 다니고 아이들 학교 하키 시합에 따라가는 보통 미국인들(‘Joe Six Pack’ ‘Hockey Mom’)이 미국의 주류임을 깨우쳐 주었다.  대선 때 주류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망신을 당한 페일린을 이들이 더 좋아 하는 것은 페일린을 통해 자신들과 동질성을 확인하고 또 자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주지사를 그만 둔 페일린이 펴내 자서전이 발간 1주일 만에 70만부가 팔린 것도 그런 인기를 반영한다. 이들은 워싱턴에 자리잡은 연방정부가 ‘압제’(‘tyranny’)라고 서슴지 않고 부르면서 권력 엘리트에 대한 분노를 분출하고 있다. 보수성향의 방송 진행자 러시 림보와 글렌 벡이 진행하는 라디오와 TV 토크 쇼는 진보 엘리트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켜서 티 파티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제 티 파티 운동은 공화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9년 11월에 있은 뉴욕주 제23구역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공화당이 노조에 우호적이고 오바마의 건강보험법에 반대를 표명하지 않은 후보를 선출하자 티 파티의 지지를 확보한 더그 호프만이 제3당 후보로 출마했다. 호프만의 거센 인기에 눌려서 공화당 후보는 선거운동을 중도에 포기했고, 본선에서 호프만은 민주당 후보에게 3%인 4300표로 패배했다. 이 사건은 공화당 지도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티 파티와 공조하지 않으면 공화당 후보는 낙선한다는 교훈을 주었기 때문이다. 2010년 1월에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사망함에 따라 생긴 공석을 메우기 위한 상원의원 보궐선거가 시행되었는데, 민주당의 아성인 이 곳에서 티 파티의 지지를 확보한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은 공화당 후보 스콧 브라운이 당선되는 이변이 발생해서 민주 공화 양당 지도부를 충격에 빠뜨렸다. 민주당은 브라운이 티 파티 운동과 연계되어 있다고 공격했는데, 그가 티 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알려지자 오히려 지지도가 올라서 지난 60년 동안 민주당이 차지했던 상원의원직을 여유 있게 쟁취했다. 민주 공화 양당은 이제 티 파티 운동이 정말로 미국을 움직이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티 파티는 물론 공식적인 정당이 아니다. 티 파티는 워싱턴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도 않다. 이들은 프리덤웍스, 티 파티 네이션. 티 파티 패트리엇 등 전국에 산재한 크고 작은 단체들의 느슨한 연합일 뿐이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과 트위터 같은 소셜 웹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2010년 선거는 티 파티의 영향력을 가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티 파티의 지지를 받는 전 하원의원 팻 투미는 공화당 후보로 나서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알렌 스펙터 상원의원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플로리다 상원의원 공화당 예비선거에선 오바마의 개혁법안을 지지했던 중도파인 찰리 크리스티 주지사가 티 파티의 지지를 확보한 젊은 마르코 루비오에 밀려서 공화당 예비선거를 중도에 포기했다. 위스콘신 출신 하원의원 폴 라이언은 티 파티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공화당의 차세대 리더로 부각되고 있다.

티 파티 운동과 더불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신문과 네트워크 방송 같은 주류 미디어가 미국인들의 신뢰를 급속하게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여론조사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주류 언론이 정치 엘리트 계층과 일치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움직임은 티 파티 운동이 힘을 얻는 현상과 직결된다. 55%의 미국인은 미디어의 편향이 대기업의 정치자금 헌금 보다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제 주류 미디어는 도덕적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또 미디어가 이제는 성향을 갖고서 오피니언을 전달하고 있다는 현상도 중요한 변화다. 보수성향인 폭스 뉴스에선 빌 오라일리와 숀 해니티가, 진보성향인 MSNBC에선 케이스 올버만이 의견이 강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빌 오라일리의 시청률은 CNN, MSNBC, CNBC의 톱 시사프로의 시청률을 합친 것보다 더 높으며, 폭스 뉴스의 오라일리와 해니티 그리고 글렌 벡의 시청률을 합치면 CBS, NBC, ABC의 모든 뉴스프로를 합친 것보다 시청률이 높다.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티 파티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미국에서는 두개의 엄청난 적자가 있다면서 자신이 그것을 치유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첫째는 재정적자이고 둘째는 ‘신뢰의 적자(deficit of trust)’였다. 오바마는 이 두개의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중도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은 이런 약속을 믿고 오바마를 찍었지만 오바마는 당선되자 마자 그 약속을 저버린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신뢰의 적자’는 워싱턴 정가가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인들은 2006년, 2008년, 2009년, 그리고 2010년까지 계속해서 집권한 정당에 대해 반대투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불신의 표시는 앞으로도 상당한 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야당인 공화당이 지지를 얻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와 민주당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은 공화당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여론조사는 오직 21%의 유권자만이 정부가 피치자인 국민의 동의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티 파티 운동이 이렇게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그 운동이 ‘반체제적이고 반엘리트적’(‘anti-establishment and anti-elite’)이기 때문이다.

2010년 중간선거를 앞둔 여론조사는 전체적으로 보아 공화당 후보들이  39% 지지를 얻어 31% 지지를 얻은 민주당 후보들을 앞서고 있지만, 설문지에 티 파티 후보를 추가하면 공화당의 지지표를 잠식해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킬 것임을 보여 준다. 티 파티는 공화당에게 드림이 될 수도 있지만 악몽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티 파티는 공화당에게 주사를 놓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미 티 파티의 지지를 얻는 공화당 후보가 사실상 당선을 확보하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2010년 11월 중간선거 결과는 그러한 현상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현재 티 파티가 해야 할 일은 전국적 호소력을 갖고 있는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를 찾는 일이다. 또한 집회에 나타나서 네오 나치 깃발을 흔들어대는 극렬한 소수집단을 정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티 파티가 강령으로 채택한 구제금융 반대, 연방준비은행에 대한 국민감사, 이산화탄소 강제감축 반대, 정부지출 삭감, 시장친화적 건강보험제 도입, 세금인상 중단 등은 이제 어느 정치인들도 무시 못할 원칙이 되었다. 이러한 요구가 기성 정치권에 의해 수용되지 않는다면 티 파티가 기성체제를 부인하는 새로운 제3의 정당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정치는 원래 예측불가능하지만 현 시점은 그야말로 예측하기 어렵고 또 불안정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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