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빌 거츠, 적(敵)들 (2006년)
2009-08-02 00:06 2,115 이상돈



빌 거츠, 적(敵)들 (2006, 크라운 포럼, 291쪽)

Bill Gertz, Enemies (2008, Crown Forum, 291 pages, $26.95)

워싱턴 타임스의 안보문제 전문기자인 빌 거츠는 이 책에서 미국의 방첩(防諜) 태세가 허술함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다. 냉전이 끝났지만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테러집단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지만 미국의 정보당국의 태세는 매우 허술하다고 거츠는 경고한다.

1970년대 초까지 중앙정보국(CIA)에는 제임스 앵글턴이란 전설적인 방첩전문가가 있었다. 그러나 CIA 국장이던 윌리엄 콜비와의 불화로 앵글턴은 CIA를 떠났고, 그 후 CIA는 방첩업무를 등한시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CIA, FBI 등 미국의 많은 안보기구에 외국의 스파이들이 침투해 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1994년에 CIA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하던 올드리치 에임스가 러시아의 간첩이었음이 드러났고, 2001년에는 연방수사국(FBI)의 요원인 로버트 핸슨이 역시 러시아의 간첩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감안하여 임기 말의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방첩국(The National Counterintelligence Executive)이란 독자적 기구를 출범시켰지만, 이 기구는 아직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 들어서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CIA는 휴먼 첩보기능과 방첩의 중요성을 아직도 과소평가하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2000년 7월에 중국에 인도된 장쩌민 주석 전용기 보잉 767기에 정교한 도청장비를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비행기를 인도 받자 마자 도청장비를 제거해 버렸다. CIA와 FBI는 미국 정보당국 내부에 스파이가 있어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고 은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로 중국에 정보를 제공해 온 여성간첩 캐트리나 륭과 그에게 정보를 흘린 FBI 방첩요원을 체포했다. 륭은 FBI 요원과 성관계를 맺어 가면서 고급정보를 빼낸 것으로 확인됐다. FBI는 륭을 이중간첩으로 생각하고 그녀로부터 중국 정보를 얻어내는 줄 알았으나 륭은 3중첩자로 중국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FBI 전체에 대한 추문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해서 수사도 미온적이었고, 결국 법무부와 륭은 유죄인정협상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저자는 미국 정계는 물론이고 정보기관 내에도 친(親)중국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한다.

FBI와 CIA가 얼마나 무능한가는 브라이언 켈리 사건이 잘 보여 준다. 올드리치 에임스가 체포된 후에 FBI는 미 정보 기관내의 박혀 있는 또 다른 간첩을 찾아 내기 위해 광범한 수사를 벌였다. 1998년부터 FBI는 CIA의 방첩요원인 브라이언 켈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집요하게 감시했다. FBI는 CIA의 상급자들에게 켈리가 간첩일 것이라고 통보했다. 켈리는 소련이 붕괴할 즈음에 소련 정보기관의 요원들을 포섭하는 개가를 올렸는데, 소련 내의 그러한 조직이 붕괴되자 오히려 의심을 산 것이다. FBI가 켈리를 집중적으로 감시하자 유능한 요원이던 켈리의 진로는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FBI는 그들이 찾던 간첩이 켈리가 아니라 FBI의 방첩요원인 로버트 핸슨임을 알게 됐다. FBI는 잠복근무 중에 러시아 요원에 정보를 건너주던 핸슨을 체포했다. 그제서야 FBI는 켈리에 대해 사과를 했다. 올드리치 에임스와 로버트 핸슨은 미국 역사상 미국에 가장 큰 피해를 준 간첩으로 평가된다. 이들로 인해 소련 붕괴 후 미국이 소련 정보기관에 심어 놓았던 첩자들이 전원 적발되어 처형되는 등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인간정보망이 붕괴되었다. 하지만, 에임스와 핸슨은 모두 종신징역을 선고 받는데 그쳤다.

미국 정보당국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을 체포하더라도 법정에서 이들을 유죄로 입증하기 위해선 정보기관의 비밀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하기 때문에 체포된 간첩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 시민이 되어 북한을 위한 간첩활동을 하다가 2003년 2월에 체포된 예중영의 경우도 그러하다. FBI는 예중영이 미국에서 공개된 자료를 북한당국에 알맞게 편집해서 제공하고 돈을 받았고, 미국으로 망명한 북한의 정보원에 대해 북한 정보당국과 협의하고 있음을 도청으로 통해 확인하고 그를 체포했다. 하지만 FBI는 도청자료를 제출할 수 없어서 예종영은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데 그쳤다. FBI는 1990년대 초에 존슨 우주센터에 근무했던 한국계 과학자 이정훈이 북한의 간첩으로 판단했지만 그도 자신이 태어난 일본으로 추방되는데 그쳤다. 저자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방첩활동을 합동으로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외국의 간첩으로부터 얼마나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는지는 쿠바 간첩 아나 몬테스 사건이 잘 보여 준다. 2001년 9월 21일, 국방정보국(DIA)의 고위분석관인 아나 몬테스는 미국 정부 내에서 영향력 있는 쿠바통(通)이었는 데, 그녀가 쿠바의 간첩임이 밝혀진 것이다. 1957년에 미군 군의관의 딸로 태어나서 버지니아 대학을 나오고 존스홉킨스 대학원에서 중남미 정치를 전공한 그녀는 1985년에 국방정보국에 취직을 했다. 국방정보국에 취직했을 때부터 이미 쿠바의 간첩인 그녀는 중요한 기밀을 아바나에 보냈다. 워싱턴의 정책 서클에서도 쿠바 전문가로 알려진 그녀는 쿠바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의회와 백악관에 제출함으로써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에임스와 핸슨은 돈이 쪼들려서 간첩질을 했지만 아나 몬테스는 순수한 이념적 동기에서 쿠바를 위해 간첩질을 했음이 밝혀져서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장기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다.

저자는 FBI가 알 케이다, 헤즈볼라 등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 조직에 대해 수사를 단 한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고 신랄하게 비난한다. 저자는 미국이 첩보원을 적국에 심어 정보를 확보하는 인간첩보활동를 포기했으며, 단지 국가정보국(NSA)을 통해서 도청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때 1만 명에 달했던 CIA의 현장요원은 이제 겨우 1000명 밖에 없으며, 그 중에도 수백 명이 바그다드의 그린 존에 쳐 박혀서 일하고 있다고 저자는 한탄한다. 저자는 방첩활동이 없으면 미국은 더욱더 군사활동에 의존하게 된다면서, 방첩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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