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토머스 소웰, 주택 붐과 파멸 (2009년)
2009-08-06 09:11 1,599 이상돈


토머스 소웰, 주택 붐과 파멸 (2009년, 베이직 북스, 184쪽)

Thomas Sowell, The Housing Boom and Bust (2009, Basic Books, $24.95)

‘기초 경제학’ ‘경제적 사실과 환상’ ‘블랙 레드넥과 화이트 리버럴’ 등 많은 책을 펴낸 자유주의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 교수가 펴낸 이 책은 미국의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택 거품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소웰은 주택 거품과 이로 인한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부의 실패’라고 단정한다.

21세기 초에 미국의 주택가격처럼 급속히 상승했다가 급속하게 하락한 경우는 드물다. 2000년에서 2005년까지 미국 단독주택의 평균가격은 143,600 달러에서 219,600 달러로 약 30% 올랐다. 몇몇 지역에서의 상승 폭은 훨씬 컸다. 같은 기간 동안 뉴욕시에선 79%, 로스앤젤레스에선 110%, 그리고 샌디에고에선 127%가 올랐다. 특히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에서의 상승 폭이 컸다. 이렇게 상승 폭이 컸던 곳에선 거품 파열에 따른 하락 폭도 컸다.

미국에서 집을 살 때에는 일정한 다운페이먼트를 하고 30년 동안 고정금리로 계산한 할부금을 매달 내는 모기지(mortgage)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다른 관행이 생겨났다. 주택을 담보로 해서 돈을 꾸어준 은행은 자신이 갖고 있는 담보채권을 다른 금융기관에 팔아서 돈을 회수하고, 이렇게 회수한 돈을 또 다른 주택 구매자에게 대출해서 보다 많은 수입을 올렸다. 연방정부가 설립한 패니 매(Fannie Mae: The 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와 프레디 맥(Freddie Mac: The Federal Home Loan Mortgage Corporation), 그리고 민간 투자회사들이 이러한 모기지 채권을 사들였다. 2004년의 경우 전체 모기지 채권의 2/3가 이렇게 팔렸는데,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이 사들인 모기지 채권이 전체 모기지 채권의 1/3에 달했다.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은 미국 정부가 설립했지만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주택금융기관인데, 주택도시개발부(HUD)가 이들을 관장해 왔다. 금융기관들은 미국 정부가 관장하는 패니 매과 프레디 맥이 결코 파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주었다.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은 시중에서 저금리로 빌려 온 돈을 모기지 채권 매수를 통해 또 다시 시장에 풀었다. 정부기관이 주택거품을 부추긴 데 앞장 선 것이다.

1973년에 미국의 30년 모기지 대출의 이자율은 연 8%였는데, 이것이 1981년에는 연 18%로 올라갔다. 1970년대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고(高)이자율을 초래하고, 그것이 다시 경기침체를 불러 온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기부터 이자율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한자리 숫자가 되었다. 이자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주택가격이 상승하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돈을 빌려 주택을 사고자 했다. 신용상태가 좋지 않아서 우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렸고, 정상적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은 더 높은 이자를 부과하는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구입했다.

종전에는 주택을 사기 전에 상당한 돈을 모아서 다운페이먼트를 해야만 했다. 주택가격이 올라가자 다운페이먼트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주택 구매 대열에 동참했고, 시세차익을 내리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다운페이먼트가 적거나 아예 없는 대출을 받으려 했다. 이런 사람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 은행은 다운페이먼트가 없고 처음 몇 년 동안은 이자만 내면 되는 새로운 모기지 상품을 개발했다. 주택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에서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대출에 의존해서 주택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렇게 주택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자 주택가격이 또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모기지 이자에 대해서 소득공제를 인정하는 세법도 겁 없이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풍조를 부추겼다. 주택의 시세가 앞으로 갚아야 할 주택 할부금 보다 큰 경우에 그 차액을 담보로 은행에서 다시 돈을 빌리는 홈 이퀴티 론(home equity loan)의 이자에도 소득공제를 인정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보고 주택소유자들은 홈 이퀴티 론을 얻어서 소비를 하고 다른 빚을 갚았다. 홈 이퀴티 론을 얻어 다른 주택을 사는 투기행위마저 성행했다. 1945년에는 86%이던 주택가격에서 홈 이퀴티가 차지 하는 비율이 2003년에는 55%로 주저 앉았다. 주택 거품이 피크에 달했던 2008년에는 전체 주택구입건수의 28%가 주거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구입되었다.

주택을 사서 월부금을 내건, 또는 아파트나 주택을 임대해서 살 건간에, 주택비용은 미국의 평균적 가구에 있어 가장 큰 지출이다.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해안지역 등에서는 평균적 가구 수입에서 주택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높은 주택비용 때문에 아이들을 둔 가정이 다른 도시로 이사해 나가자 주택가격이 높은 지역에선 학교가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했다.

은행과 주택 구입자들만이 집값 폭등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인들도 똑같이 책임이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은 모두가 집을 소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 주택보유를 부채질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감당할 수 있는 주택’(‘affordable housing’)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 정책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정치적 의미에서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이란 “주택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재정적으로 도와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1세기의 주택 거품을 만드는데 기여한 법률은 1977년에 제정된 커뮤니티재투자법(The Community Reinvestment Act)이다. 이 법은 다른 정부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작은 목적을 갖고 출발했다. 법은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연방정부기관으로 하여금 지역 커뮤니티의 크레딧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금융기관를 지도하도록 하였다. 1990년대 초에 이루어진 연구조사는 금융기관의 대출 승인율이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은행이 소수인종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출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 이런 정책은 보다 적극성을 띄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법무부는 주택대출에 있어 소수인종을 차별하는 금융기관을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부의 이런 압력 때문에 은행들은 소득이 낮고 경제관념이 부족한 흑인들에게도 주택자금 대출을 해 주었다.

2001년에 들어선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선 민주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부시 행정부는 한술 더 떠서 ‘아메리칸 드림 다운페이먼트 법’(The American Dream Downpayment Act)이 의회를 통과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주택청장은 할부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다운페이먼트를 하지 못해서 주택을 사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정부가 서브프라임 대출을 인정했을 뿐더러 금융권에 대해 이를 강요한 것이다.

2003년부터 이코노미트지(誌)와 포브스지(誌) 등이 주택가격 거품과 그 파열을 우려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주택 가격 거품이 국지적으로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서 큰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그만 둔 앨런 그린스펀은 주택가격 거품을 신중하게 판단하지 못했다고 인정했지만 이 때는 이미 집값 하락이 본격화한 후였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4년 6월에 부시 대통령은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이 재정적으로 취약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자 76명의 민주당 하원의원이 정부가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을 옹호하는 서신을 백악관에 보냈다. 76명에는 낸시 펠로시, 바니 프랑크 등 영향력 있는 하원의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주택금융기관을 옹호한 데는 개인적 이유도 있었다. 상원 은행주택분과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도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칸트리와이드 금융회사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으로 모기지 대출을 얻었고,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패니 매와 프레디 맥으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04년부터 이자율을 평상시 수준으로 인상하기 시작했다. 1%이던 이자율은 2006년에 5.25%로 오르자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택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던 캘리포니아 해안지역부터 할부금을 내지 못해 경매 처분되는 주택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매 물건이 많이 나오자 주택가격은 더 떨어져서, 한해 동안에 샌프란시스코 해안지역은 46.8%, 샌디에고는 27%, 라스베거스는 32%가 떨어졌다. 고급 주택은 한해 동안에 보통 20만 달러가 떨어져서 투자를 위해 집을 산 사람들을 파산상태로 내몰았다. 이자율이 높은 서브프라임 론을 받은 사람들이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주택을 구입한 흑인의 50%가, 그리고 중남미계의 40%가 서브프라임 론을 받아서 큰 손해를 보았다. 소득수준이 낮은 소수인종을 돕기 위해 추진한 정책으로 인해 소수인종이 더 큰 손해를 본 것이다. 주택가격이 오를 때 재미를 본 사람들이 또다시 주택투자에 나섰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많았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경매로 나온 주택의 44%는 다주택자였고, 35%는 거주하지 않는 투자목적으로 구입했던 주택이었다. 라스베거스에선 경매로 나온 주택의 74%가 투자목적으로 구입했던 주택이었다. 정부가 조장한 주택 거품으로 인해 소수인종들이 무리하게 주택을 샀다가 파산에 몰렸지만, 이들을 구제해 주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면 다주택자와 투자목적으로 주택을 산 사람들도 세금으로 구제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2008년 가을에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정부는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을 국유화하기로 했다. 2009년 1월에 의회 예산국은 두 기관의 손실액수가 238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액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그룹, J.P. 모건, 체이스 그리고 웰스파고에 대해 미국 정부가 제공한 구제금융의 총액수 보다 많은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 마지막 순간에 의회는 7000억 달러 규모의 불량자산구제기금(The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을 조성하기로 했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서 의회는 8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진흥자금(The Stimulus Package)을 조성했다. 미국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1조 달러 이상이 불량은행과 불량기업에 흘러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저자는 주택 거품과 이로 인한 정부의 재정확대는 심각한 인플레이션를 가져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0년대에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폴 볼커 의장은 이자율을 내려서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금 줄을 조였다. 볼커의 고집 때문에 레이건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락했지만, 볼커의 그러한 긴축정책에 힘입어 1970년대부터 지속되어 온 스태그플레이션이 끝나고 그 후 20년에 걸친 저(抵)인프레 고(高)성장 시대가 열렸다. 저자는 또한 샌프랜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거스 등 주택가격이 많이 상승했다가 신용경색으로 추락한 지역은 토지이용규제가 강했던 지역이라고 지적한다. 자연환경보호, 역사유적 보호 등 여러 이유로 각종 토지법규가 강화되자 택지 공급이 끊겼고, 이로 인해 기존의 주택 가격이 상승했고 이에 편승해서 투기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반면 휴스턴과 달라스 같이 토지이용규제가 없는 도시에선 주택 가격이 오르지도 않았고 꺼지지도 않았다. 휴스턴과 달라스에선 주택가격이 오를 기미가 있으면 주택공급이 늘어나는 시장기능이 작동했던 것이다.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뉴딜’(New New Deal)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비판한다. 저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경제공황을 심화시켰음을 주지시킨다. 경제공황을 끝낸 것은 뉴딜 정책이 아니라 제2차 대전이었던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루스벨트 행정부가 반(反)기업 정책을 거두었고, 기업은 전쟁물자 생산에 박차를 가했으며, 1200만 명의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가는 바람에 실업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1929년 공황에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과잉반응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켰던 것이다. 1987년에 주식시장이 대폭락을 했지만 레이건 행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러자 시장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정부’가 보다 좋은 결과를 초래한 셈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가 경제위기를 빌미로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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