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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국

작성일 : 2021-11-06 10:35조회 : 2,259

1970년대 미국

작년부터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니까 읽지 못하고 서가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 읽고는 한다. 역사책은 출간된 후 10년이 지나서 읽던, 20년이 지나서 읽던 생명력을 갖고 있고,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저자의 예지력(叡智力)을 판단해 볼 수도 있다.

보스턴 대학의 역사학 교수 브루스 슐먼(Bruce J. Schulman)이 2001년에 펴낸 <1970년대>(The Seventies)는 호평을 받았다. 1970년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한권의 책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1970년대가 미국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기간이라고 규정했다.

슐먼 교수가 이 책에서 의미하는 1970년대는 1968년부터 1984년까지를 말한다. 말하자면 ‘넓은 1970년대’(wide 1970's)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정의(定義)에 동감한다. 몇 달 전에 나온 나의 회고록 <시대를 걷다>를 읽은 사람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8년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카터의 몰락과 레이건의 등장이 또한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것이다. 그러니까 슐먼 교수가 말하는 1970년대는 나라는 사람의 형성을 가져온 세월이고 그 후의 나는 그 연장선에서 살아 왔다고 말할 수 있다.

1968년은 북베트남 정규군의 구정(舊正) 대공세로 시작했다. 존슨 대통령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미국은 반전(反戰) 시위로 소란스러웠다. 컬럼비아, 버클리 등 미국 캠퍼스가 시위로 소란스러웠다.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했다. ‘반체제(anti-establishment)’가 그 해의 시대정신이었다. 대도시를 휩쓴 인종분규, 마리화나와 헤로인, 그리고 록그룹 롤링스톤과 도어스가 그 시기를 상징했다. 1968년 대선에서 딥 사우스(Deep South : 미시시피, 앨라배마 등 최남부(最南部)를 지칭하는 용어이다)는 인종주의자 조지 월러스를 지지했고 그 덕분에 공화당 후보 리차드 닉슨이 당선됐다. 민주당이 남부를 상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에 대도시에 살던 백인 중산층은 도심을 버리고 교외(suburb)로 이동했다. 더 중요한 현상은 남서부로의 인구이동이 본격화한 것이다.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에 이르는 선벨트(Sunbelt)의 인구가 폭증했고, 이로 인해 미국의 정치지형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남부는 그들의 선조가 남북전쟁 때 맞서 싸웠던 공화당을 기꺼이 받아드렸고, 그 대신 공화당은 그들의 전통적 근거이던 동북부를 상실했다. 선벨트 유권자들을 위시한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는 1972년 대선에서 닉슨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허무하게 무너졌고, 1976년 대선에선 조지아 출신인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됐다.

카터는 경제와 외교를 모두 실패하고 말았고,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했다. 미국에 "아침이 돌아왔다"(Morning Again)는 기대를 받고 등장한 레이건이었지만 초기 정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고이자(高利子)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고, 미국의 산업계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끝냈다. 정말로 아침이 돌아온 것이다. 1984년 대선에서 레이건은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청바지를 입고 반전(反戰)시위에 나섰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인데 젊은이들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월가(街)에 취직하기 위해 줄을 섰다.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록’을 만들었던 미국의 영화계는 톰 크루즈가 주연한 ‘탑 건’을 만들었다. ‘1980년대 황금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968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1984년에 대학교 조교수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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