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베트남 전쟁과 징병제

작성일 : 2021-11-18 11:48조회 : 2,434

베트남 전쟁과 징병제

얼마 전에 타계한 콜린 파월은 1973년 여름부터 1년 동안 주한 미군 2사단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하고 백악관 펠로우를 지낸 후 캠프 케이지에서 대대장으로 있었는데, 나중에 파월은 그 기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한 바 있다. 파월은 당시 한국군이 기강이 서있는 훌륭한 부대라고 평했다.

1973~74년이면 우리는 유신 정권이 서슬이 퍼럴 시절이었다. 1973년 1월, 파리 평화 협정에 따라 베트남에 남아 있던 한국군이 완전히 철수한 직후라서 실전을 경험한 장교와 부사관이 많았던 한국군의 태세는 견고했을 것이다. 파월이 근무했던 기간 중 육군 2사단도 인종 갈등이 심해서 흑인 사병이 백인 장교를 구타해서 거의 사망에 이른 사건마저 발생했다. 사단장이 파월 중령에게 그 사건의 수습을 맡겼는데, 흑인인 그는 흑인 난동집단을 엄하게 다스려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인종분규를 잠재웠다.

그 무렵 미군은 인종 갈등 외에도 마약 문제가 심각했다. 마리화나는 거의 일상화되어 있었고 동남아에서 유입된 헤로인에 중독된 미군이 많았다. 1971년 미 국방부는 베트남에 주둔 중인 미군 39,000명이 헤로인 중독자라고 추정했다. 미 국방부는 1970년 한 해 동안 미군 내에서 사병이 장교를 위해한 하극상 사건이 209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장교 3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인종 분규는 좁은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해군에서도 많이 발생했다. 항공모함 키티 호크에서 흑인 장병들이 떼를 지어서 렌치와 체인 등을 들고 백인 장병들을 마구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의 기강은 위험한 수준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파리 협정은 1973년 1월 말에 체결됐고, 국방부는 그해 1월부터 신규 징집을 중단했다. 미국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한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1968년 대선에서 징병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그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보다 솔직하게 평가한다면, 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 징병제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거세어서 징병제가 사실상 와해될 지경에 이르러서 모병제로 전환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 자체 뿐 아니라 전쟁 기간 중 미국의 징병제 운영은 불공평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부유하고 배경이 있는 젊은이들은 징집에서 빠져나가고 가난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빈곤층과 흑인들이 대거 징집됐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에서 2차 대전 후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가 치른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64년부터 징병 연령에 달한 젊은이들의 숫자가 미군이 필요한 병력 자원보다 훨씬 많게 됐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징집연령에 달한 젊은이는 2700만 명인데 실제로 군에 복무한 인원은 1100만 명이고 그 중 160만 명이 베트남에서 복무했다. 베트남에서 근무한 장병 중 대략 2/3는 장교와 부사관, 해공군, 해병대 등 지원하여 입대한 경우였고 나머지 1/3은 징집 영장을 받고 파견됐다.

당시 미군 당국은 18세에서 26세까지 남자 중에서 실제로 징집할 대상을 선별해야만 했다. 선별작업은 각 지역의 징집위원회(Local Draft Board)가 했는데, 이들은 대학/대학원 재학생과 이른바 배경이 있는 젊은이들은 연기를 허용하고 그렇지 못한 저학력자, 흑인 등 소수인종, 그리고 노동자와 농촌 출신들을 많이 징집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과 로스쿨/대학원을 다니면서 연기를 거듭해서 26세를 넘기거나(빌 클린턴, 조 바이든, 루디 줄리아니, 미트 롬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 26세를 넘기거나(딕 체니), 아버지 친구인 의사의 진단서로 면제를 받는(도널드 트럼프) 방식으로 징집을 피해 나갔다. 주 방위군은 베트남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방위군에 들어가면 베트남은 가지 않고 그 대신 반전(反戰) 시위를 진압하러 캠퍼스로 출동을 했다. (조지 W. 부시는 텍사스 주 방위군 공군 조종사로 병역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징집 연기를 받지 못하면 26세가 되기 전에는 징집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어느 때이든 징집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이 불공정하다는 비난이 많았다. 그러자 1969년부터는 징집 대상자들을 상대로 뽑기(draft lottery)를 해서 징집대상을 공정하게 선발했다. 주택 복권 당첨자 발표하듯이 징집 여부를 결정했던 것이다. 징집대상이 된 젊은이 6만 명~10만 명이 베트남 전쟁 기간 중 캐나다 등지로 도망을 갔는데, 토론토에는 이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다. 도망가지 않고 징집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되어서 재판을 받고 감옥을 갔다. 미국 대도시에선 반전 시위가 빈발했고 징집영장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흔히 있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장병 중 흑인의 비중은 인구 대비에서 백인 보다 높았다. 흑인 거주지인 뉴욕 할렘에 있는 규모가 큰 고등학교 한 학년 졸업생 중 베트남에서 전사한 숫자가 1차 대전, 2차 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하버드 졸업생을 전부 더한 숫자보다 많았다. 베트남 전쟁은 실패한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미국에 깊은 상처를 입힌 전쟁이었다.

- 사진 : 징집 문제를 다룬 라이프지(誌)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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