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프간 전쟁과 독일군

작성일 : 2021-11-18 11:51조회 : 2,149

아프간 전쟁과 독일군

대만을 향한 중국의 위협이 간단해 보이지 않는데, 정작 대만 사람들은 미국이 자기 나라를 보호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한다. 또한 대만 군대는 1950년 이후 70년 동안 전투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총성이 울리면 도망가기에 바쁠 ‘당(唐)나라 군대’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부르는 연유는 나는 모르겠다.) 이런 문제는 대만 군대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자위대도 1945년 후 한 번도 전투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실제 상황에서 지상군의 전투력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비슷한 처지가 독일군이다.

냉전 시절에 서독은 미군 정예부대가 주둔했던 최전선이었지만 지금은 동쪽에 폴란드와 헝가리 등 나토 국가가 즐비해서 독일은 이제 후방 국가가 됐다. 그런 독일이 미국의 요청으로 나토군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3,500명 규모의 지상군을 파견했다. 1999년 유고 연방에 대한 나토군(軍) 공습 때 독일 공군의 토네이도 전폭기 편대가 참가한 적은 있었지만 독일 지상군이 교전 지역에 파견된 경우는 이번이 2차 대전 후 처음이었다.

독일군은 비교적 평온한 아프간 북부 쿤두즈 지역에 주둔했다. 독일군은 무려 2억 5천만 유로를 들여서 철옹성 같은 기지를 건설했다. 기지를 워낙 강력하게 건설해서 그 안은 안전하니까 독일군은 웬만하면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했다. 독일군은 자신들이 탈레반과 전투를 하러 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주민들과 유대관계를 도모하는 대민 업무에 주력했는데, 2003년 6월에 자살 차량 테러가 발생해서 독일군 4명이 즉사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에 놀란 독일군은 밖에 순찰 나갈 때는 장갑차를 타고 나갔고 야간에는 순찰을 나가지 않았다.

독일군은 장갑차 등 많은 장비를 갖고 왔지만 공중 지원은 미군에 의존해야만 했다. 독일군은 그들이 현지에서 사용할 장비와 차량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상태로 파견돼서 사고가 많았다. 무엇보다 독일군은 교전지역에서 총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 장교가 단 한명이 없는 상태에서 탈레반이 준동하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게 됐다. 독일군 교전 규칙은 적이 사격할 때만 응사하고 선제 사격을 하기 전에 현지 언어로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라는 식으로 돼 있어서 미군은 물론이고 영국군 등 다른 나토군에 의해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독일군과 관련된 최대의 사건은 2009년 9월 공습이다. 연료유를 가득 실은 대형 유조탱크 트럭 2대가 나토군 연료 기지로 가던 중 탈레반에 의해 탈취되었음을 독일군 기지 내에서 파악하게 됐다. 독일군 지휘관은 미군에 공중 지원을 요청했고 미 공군 F-15 두 대가 발진해서 정확하게 폭격을 했다.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는데, 탈레반이 탈취한 트럭에서 연료유를 나누어 준다는 소문을 듣고 공짜 기름을 얻으러 트럭 주변에 모여 있던 민간인 100~200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독일 본국에서 뜨거운 정치적 문제가 됐다. 메르켈 총리는 책임을 인정하고 1인당 5000달러씩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사회당 의원들은 메르켈 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고, 결국 국방장관과 차관이 사임을 했다.

독일군은 미군 등 다른 나토군으로부터 ‘겁쟁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아프가니스탄 경찰을 훈련시키는 일도 했다. 하지만 아프간 군인이나 경찰 지망생은 대부분 문맹자라서 도무지 교육이 되지가 않았다. 독일군 1,100명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을 최종적으로 철수할 때까지 쿤두즈 기지에 머물렀다. 주둔 기간 중 독일군 59명과 독일 경찰관 3명이 사망했는데 사망한 군인 59명 중 35명이 전사였다. 전사자 대부분은 자폭 테러와 은익 폭발물(IED), 그리고 순찰 중 매복 피습에 의해 발생했고, 나머지는 사고로 인한 사망과 자살이었다.

튼튼하게 잘 지어놓은 기지를 남겨 놓고 장갑차와 트럭 등 장비를 본국으로 철수시키느냐고 막대한 독일 국민 세금이 들어갔는데, 이에는 특이한 물품도 있었다. 독일군은 기지에 남아 있는 맥주 6만 캔과 와인 등 주류 22,600 리터를 도로 본국으로 가져가기로 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국가라서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고 버리게 되면 아프가니스탄의 환경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어서 수송기 편으로 도로 본국으로 가져간 것이다.

금년에 워싱턴포스트가 펴낸 <The Afghanistan Papers>에도 독일군의 맥주와 와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군의 시각에선 독일군은 도무지 부대원들로 하여금 전투를 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야간 순찰도 하지 않았고 기지 부근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군은 안전한 기지 내에서 맥주와 와인을 즐겼는데, 2007년 한 해 동안 독일산 맥주 260,000 갤런과 와인 18,000 갤런을 본국에서 반입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미군은 술을 먹지 않는 아프간 문화를 존중해서 기지 내에서 절대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106쪽)

- 사진 : 2013년 5월, 쿤두즈 독일군 기지를 방문한 메르켈 총리. 독일군 병사들의 얼굴이 뽀얀 것이 도무지 전투를 할 군인 같아 보이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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