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키신저 : 국무장관을 지낸 후

작성일 : 2022-12-08 20:26조회 : 1,747

키신저 : 국무장관을 지낸 후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1923~)가 닉슨과 포드 행정부에서 8년 동안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내고 카터 행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정부를 떠날 때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은퇴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였기에 많은 사람들은 키신저가 다시 국무장관이 되어서 미국 외교를 이끌 것으로 생각했다. 키신저 자신도 8년 동안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영광을 잊지 못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마치지 못한 일을 마저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키신저가 노력을 기울여서 이룩한 미소(美蘇)간의 데땅트는 카터 대통령이 1979년 6월에 브레즈네프와 함께 SALT II(2차 전략핵무기제한회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키신저가 토대를 닦은 대(對)중국 외교는 카터가 1979년 1월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완성을 보았다. 카터는 1978년 9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쳄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해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협상은 1973년 4차 중동전 후 키신저가 시작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키신저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카터가 거둔 것이다.

하지만 카터 행정부에서 키신저가 끼여들 공간은 없었다. 카터의 안보보좌관은 하버드 시절부터 키신저와 라이벌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ński 1928~ 2017)였다. 하버드에서 박사를 한 브레진스키는 키신저와 함께 하버드에서 조교수를 지냈으나 부교수 자리를 두고 키신저에게 밀려서(즉, 테뉴어를 받지 못해서)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겨야만 했다. 카터는 브레진스키 보다는 진보 성향인 사이러스 밴스(Cyrus Vance 1917~2002) 국무장관 편을 들어서 이란에 극단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도록 방치했다. 1979년 가을 들어서 카터의 외교는 완전히 파산해 버렸다. 키신저는 카터의 외교를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자 키신저가 다시 국무장관으로 컴백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카터가 망쳐놓은 외교를 다시 세워야 했지만 레이건의 주변에는 국무장관을 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 때 레이건의 참모들로부터 “우리는 키신저가 타임지 표지에 나오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키신저가 국무장관이 될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였다. 사실 레이건은 SALT 회담에 반대했고 대만과의 단교에도 반대했기 때문에 키신저가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였다.

레이건이 대통령을 준비할 때 외교 분야 보좌역을 했던 사람은 리차드 앨런(Richard Allen 1936~)이었는데, 앨런은 키신저와 악연이 있었다. 핼런은 닉슨이 야인 생활을 하면서 대선을 준비할 때 안보보좌역을 지냈다. 닉슨이 키신저를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자 앨런은 부(副)보좌관이 됐는데, 키신저는 앨런이 자기 사람이 아니라고 보아서 박해했다. 견디다 못한 앨런은 1969년 여름에 사임하고 다시 연구소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77년부터 레이건의 안보보좌역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끌고 레이건의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됐다. 레이건의 신임이 깊은 앨런이 키신저를 비토했음은 물론이다.

레이건은 정책 방향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키신저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레이건은 러닝메이트로 대통령을 지낸 제럴드 포드를 지명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드림 팀’이라고 치켜세웠다. 포드는 레이건에게 자신이 각료를 몇 명 임명할 수 있다면 수락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포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와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1932~2021)가 다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돌았다. 이에 제동을 건 사람은 낸시 여사였다.

낸시는 “당신이 대통령이지 어떻게 공동대통령이 되느냐?”고 묻자 레이건은 꿈에서 깨어난 듯 그 발상을 없던 것으로 했다. 그 때 리차드 앨런이 러닝메이트를 조지 H. W. 부시로 하자고 제의하자 레이건은 흔쾌히 동의하고 부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시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본선에서 승리한 레이건은 부시의 선거본부장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1930~)에게 비서실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베이커는 너무 의외라서 충격을 받았다. 공화당 정권 황금기 12년의 주역인 레이건과 부시, 그리고 베이커의 관계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반면에 키신저는 물론이고 도널드 럼스펠드도 레이건-부시 집권 12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조지 H. W. 부시는 자기가 유엔 주재 대사와 중국 대표부 대사를 지낼 때 키신저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부시는 또한 럼스펠드가 자기를 견제해서 포드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고 오히려 중국 대표부 대사로 쫓겨났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젊은 나이에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럼스펠드는 레이건-부시 행정부 12년 동안 제약회사 대표를 지내면서 잊혀져갔다. 키신저는 'Kissinger Associates'라는 컨설팅 펌을 세워서 외국 정부 및 국내외 대기업을 상대로 컨설팅을 하면서 언론 인터뷰와 저술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조지 H. W.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키신저는 자기가 국무장관을 다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으나 부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시는 자기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제임스 베이커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키신저는 자기 아래에서 일했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Brent Scowcroft 1925~2020)가 부시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으로, 로렌스 이글버거(Lawrence Eagleburger 1930~2011)가 국무차관으로 임명된 데 대해 만족을 표했다.

- 사진 (1) 1977년 1월 19일, 카터 대통령 취임 하루 전날 포드 행정부의 안보 각료들이 버논 월터스(닉슨-포드 행정부에서 CIA 부국장을 지냈다.) 중장의 퇴역식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조지 브라운 합참의장, 스코크로프트 안보보좌관, 부시 CIA 국장, 럼스펠드 국방장관, 키신저 국무장관, 록펠러 부통령. 자리를 내어 놓고 야인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라서 표정이 좋지 않다.
- 사진 (2) 레이건 대통령과 리차드 앨런 안보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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