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키신저의 고언(苦言)

작성일 : 2022-12-11 21:12조회 : 1,331

키신저의 고언(苦言)

100세를 바라 보는 헨리 키신저가 금년에 펴낸 <Leadership>이 도착했다. 본문이 400쪽이 조금 넘으니까 부담되는 책은 아니다. 서문 2쪽 반 중 두 쪽이 이 책을 내는데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말이다. 적어도 1개 소대 병력의 보좌진이 이 책을 내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초안을 작성하고 키신저와 함께 논의하고 검토했을 것이다. 본문은 키신저가 겪었던 6명의 리더, 즉 콘라드 아데나워, 샤를 드골, 리차드 닉슨, 안와르 사다트, 리콴유, 마가릿 대처에 대해 이들이 어떤 리더십을 갖고 국가를 이끌었나에 대한 것이다. 우선 마지막 결론 부분을 읽어 보았다. 키신저가 하고 싶은 말은 결론에 있다.

키신저는 이들 6명의 리더를 배출한 서방 세계가 진화적인 쇠퇴(evolutionary decay)를 겪고 있다고 보았다. 서방의 리더들이 추구했던 공공적 애국심(civic patriotism)은 정체성에 근거한 분파주의(identity-based factionalism)와 이에 대항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에 의해 양쪽에서 가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학 졸업생들은 기업과 전문분야에서 일하기를 선호하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공직을 원치 않는다. 리더 계층과 대중 사이에는 적대감정과 의구심이 팽배해 있다. 서방의 교육 시스템은 우수하지만 기술 분야에 집중하고 있으며 정치적 상상력의 근본인 역사와 철학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19세기까지 있었던 귀족계급(aristocrats)에게 기대했던 공적 봉사는 20세기 들어서 능력에 기반한 리더(meritocrats)들이 해 냈지만 오늘날의 엘리트 계층은 의무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표현과 자신들의 성장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은 정보에 쉽게 접근하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정보를 인터넷에 의존하게 되면 지도자로서 요구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요즘은 복잡한 책을 주의 깊게 읽고 비판적으로 대하는 것이 반(反)문명적 행동으로 치부되고 있다.

인터넷은 세계를 연결시켰지만 인류를 서로 다투는 부족으로 갈러 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셜 미디어에선 펄로워는 있지만 리더는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심층적 문해(deep literacy)가 사라져 가고 있다. 능력(merit)은 노력을 통해 얻어진 지적(知的)임(intellect)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능력에 기반한 리더는 덕목과 재능(virtues and talents)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 의미있는 공적 봉사를 하려는 정치적 엘리트에게 교육과 품성은 필수적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키신저의 이런 고언(苦言)은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 우리나라도 제대로 공부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선출직을 아예 생각지 않는다.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은 물론이고 소셜 미디어와 방송을 통해 자기 의견을 열심히 전파하는 사람들 중에 키신저가 말하는 'deep literacy'를 갖춘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 도무지 덕목과 재능을 갖춘 정치적 리더가 있기나 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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