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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974년 포드 대통령 한국 방문
작성일 : 2022-12-15 09:23조회 : 1,464
1974년 포드 대통령 한국 방문
박정희 시대를 다룬 글을 보면 박 대통령은 닉슨 대통령과 소원(疏遠)했으며 이는 닉슨이 ‘닉슨 독트린’을 내세우고 주한 미군을 철수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반면에 포드 대통령은 서울을 방문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이어서 닉슨 시절의 한미간 불편한 관계가 해소됐다고 보기도 한다.
닉슨 대통령은 한국에 주둔 중인 2개 사단 중 7사단을 1971년 봄에 철수시켰다.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한 비와 같이) 이는 국방차관 데이비드 패커드가 중심이 되어 새로 작성한 지상군 감축 방안에 의한 것이었다. 닉슨과 키신저의 방대한 회고록에는 1969년 봄에 있었던 미군 첩보기 EC-121 피격 사건 외에는 한국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한국은 현상 유지 상태였고 닉슨과 키신저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가 과잉으로 대응했거나, 또는 국내 정치 목적으로 안보 위기를 과장해서 10월 유신을 일으키는 데 이용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1971년~73년 기간 중 한국정부의 민주주의 유린은 닉슨과 키신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 등 더욱 화급한 사안이 많았고, 두 사람은 중남미나 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와 인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포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미 관계가 풀렸다고 보는 것도 맞은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포드 대통령은 1974년 11월 23~24일간 하루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해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대담을 하고 “주한 미군 철수는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 방문은 일본 방문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전략 핵무기제한을 위한 미소 정상회담 사이에 서울에 하루 기착한 데 불과했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상세한 기록을 남긴 키신저의 회고록에 한국 방문은 언급이 없다.
1972년 5월 모스코바에서 닉슨과 브레즈네프는 SALT I 조약에 서명해서 전략핵무기 제한을 위한 길을 열었고, 1973년 6월에는 브레즈네프가 워싱턴을 방문하는 등 후속 협상을 해 오던 중 SALT II 기본골격에 관한 의견 차이가 좁혀져서 다시 소련에서 정상회담을 하게 됐다. 정상회담을 모스코바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포드였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미시건 출신인 포드는 시베리아 동부에 관심이 있었다. 당시 국무장관이며 안보보좌관이던 키신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의를 하면 도쿄를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브레즈네프가 기꺼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오겠다고 해서 11월 23~24일 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의를 갖고 SALT II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브레즈네프와 포드는 벌거벗고 시베리아식 사우나를 같이 했다고 전해진다. 포드는 전략무기제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실제 협상은 키신저가 알아서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일정이 정해지자 키신저는 일본 방문을 추진했고, 이렇게 해서 그해 11월 18~22일 간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 등 일행은 도쿄와 교토를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을 방문한 것이었다. 일본 방문은 상징적인 것으로, 포드와 키신저는 사흘 동안 편안하게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방문을 마친 포드 일행은 11월 22일 오전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박 대통령 차에 동승해서 숙소인 조선호텔을 거쳐서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포드 대통령은 헬기 편으로 전방의 미군 2사단 캠프 케이시에 도착해서 사병들과 함께 점심을 했다. 다시 헬기 편으로 서울로 돌아온 포드는 오후에 청와대에서 회담을 하고 저녁 공식 만찬을 갖고 조선호텔에서 1박을 했다. (조선호텔은 아메리칸 항공이 투자해서 세운 호텔로 상징적 의미가 컸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조선호텔이 있어서 미군이 철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다음날 포드 대통령 일행이 탄 전용기는 도쿄 하네다 공항을 거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소련은 한국에서 출발한 항공기 입국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해서 전용기는 일부러 하네다에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해야만 했다. 따라서 포드 대통령의 방한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는 것은 무리하고 생각된다. 1년 후 1975년 여름에 제임스 슐레진저 국방장관이 방한했을 때 박정희 정부는 프랑스와 맺은 핵 재처리 계약을 파기하는 등 쓴 맛을 보아야만 했다.
1974년 11월, 나는 대학원 1년차로 공부로 바쁠 때였다. 포드 대통령 방한이 유신 정권을 합리화 한다면서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가 여기저기에 열리고 경찰이 그것을 원천 봉쇄하는 등 서울은 소란스럽고 우울했다. 검은 베레를 쓴 특전사 병력이 세종로 거리에서 경비를 서는 등 분위기는 삼엄했다. 포드의 방한은 내가 겪은 세 번째 미국 대통령 방한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인 1960년 6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그야말로 서울이 뒤집어 졌었다. 도심은 성조기와 태극기가 널렸고 아이젠하워가 차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러 가느냐고 효자동에서 남대문까지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1966년 가을에 존슨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라 전체가 뒤집혔었다. 나는 당시 경기중 3학년이었는데, 학교를 하루 쉬고 단체로 세종로 거리로 환영을 하러 나갔다. (물론 대충 참석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지만...) 존슨 대통령 방한이 얼마나 어마어마했냐면, 존슨이 좋아했다는 커티삭(Cutty Sak)이 고급 위스키로 알려졌고, 동네에는 ‘존슨 제화점’ '존슨 제과점‘이 등장하기도 했다.
- 사진 (1) 박 대통령과 포드 대통령, 의장대 사열.
- 사진 (2) 포드 대통령, 2사단 병사들과 야외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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