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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베트남 평화협상

작성일 : 2022-12-27 23:30조회 : 1,384

1968년 베트남 평화협상

1968년 대선 전까지 닉슨과 키신저는 결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키신저가 닉슨과 관계를 맺게 된 계기는 1968년 대선 직전에 있었던 파리 평화회담이었다. 1968년 초 북베트남군은 대대적인 공세(구정 대공세 Tet Offensive)를 펴서 사이공 시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북부의 고도(古都) 후에가 공산군에 함락됐다. 미군은 반격을 가해서 공산군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패퇴했다. 하지만 미국 여론은 전쟁에 반대하는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었다.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단시키고 자기는 그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존슨은 소련 총리 코시긴를 통해 하노이에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5월 초 드골 대통령의 초청으로 북베트남 대표와 미국 대표는 파리 근교에서 회담을 시작했다.

존슨은 애버렐 해리먼(Averell Harriman 1891~1986) 대사를 대표로 지명했다. 뉴욕에서 철도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해리먼은 루스벨트 행정부에 참여했고 2차 대전 중 소련 주재 대사를 지냈으며 뉴욕 주지사 등을 거쳐서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무차관보와 차관을 지낸 거물이었다. 존슨 행정부 내부에선 월트 로스토 안보보좌관과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협상을 통한 해결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해리먼 대사는 북베트남 대표로 나온 추안 투이가 실권이 없고 정치국원인 레둑 토가 실권자임을 알게 됐다. 그해 8월 초 마이애미비치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닉슨을 후보로 선출했고, 8월 말에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극심한 혼란 끝에 휴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 1911~1978) 부통령을 후보로 선출했다.

10월 11일, 해리먼은 레둑 토를 파리 근교에서 만났다. 레둑 토는 북폭(北爆)을 완전히 중단하면 남베트남 티우 정부가 평화협상에 참여하는 4자 회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10월 24일,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회담을 시작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10월 26일, 해리먼을 만난 추안 투이는 10월 30일부터 폭격을 중단하면 한 주일 후부터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그리고 베트콩이 참여하는 4자 회담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리먼이 회담을 앞당기자고 말하자 투이는 폭격을 중단하면 앞당길 수 있다고 답했다. 해리먼은 협상 진행 상황을 존슨에게 보고했고 존슨은 안보 참모들을 불러 모아서 의논을 했다. 남베트남 대통령 티우는 베트콩이 참여하는 4자 회담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혀서 엘스워스 벙커 사이공 주재 대사가 찾아가서 설명을 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계속됐다.

10월 31일 목요일 저녁, 존슨 대통령은 저녁 TV 방송을 통해서 폭격 중단을 선언하고 베트남 평화를 위한 4자 회담이 임박했으며, 존슨은 대통령 후보 3명에게도 이런 상황을 알려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존슨은 남베트남 정부는 이 회담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의 자유 의지라고 덧붙였다. 그 주 토요일 티우 대통령은 베트콩이 참여하는 협상에 참여할 수 없다면서 4자 회담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따라서 베트남 평화 협상 구상은 이틀 만에 무산됐다.

존슨은 여론 조사에서 닉슨에 뒤지고 있는 험프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베트남 평화협상 카드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험프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험프리가 기대했던 ‘October Surprise’는 막판에 물거품이 됐고 11월 5일에 치러진 대선에서 닉슨이 승리했다. 티우 대통령이 해리먼과 레둑 토가 이룩한 평화협상 제안을 거부한 데는 대선에서 닉슨이 승리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티우는 닉슨 정부 하에서 남베트남이 보다 좋은 조건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닉슨은 다른 채널을 통해 티우에게 자기가 집권하면 남베트남이 보다 좋은 조건으로 협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닉슨이 이런 의사를 전달하게 된 데는 키신저의 역할이 있었다.

해리먼 대사가 이끈 미국 측 협상 팀에는 사이러스 밴스, 필립 하비브, 리차드 홀브루크 외에 키신저가 참여하고 있었다. (밴스는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내며, 하비브는 1970년대 초에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며, 홀부르크는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차관보,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유엔 주재 대사를 지낸다.) 당시 키신저는 록펠러의 선거 캠프가 해체된 후에 파리 협상 팀에 참여하면서 험프리 캠프에 참여한 새무엘 헌팅턴 교수와 츠비그뉴 브레진스키 교수와도 연락을 하고 있었다.

존슨은 록펠러와 가까웠고 록펠러는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존슨 행정부는 키신저를 파리 협상 팀에 참여시켰다. 키신저는 험프리 캠프에 참여하고 있던 새무엘 헌팅턴 교수를 만나서 록펠러 캠프가 수집한 닉슨에 관한 두툼한 자료집을 전달했다. 헌팅턴 교수와 브레진스키 교수는 키신저가 험프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았고, 험프리는 키신저가 전달한 정보에 감탄했다. (1973년에 험프리는 자기가 당선됐더라도 키신저를 안보보좌관으로 기용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80년대 들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당시 키신저는 비밀리에 닉슨 측에 선을 대고 있었다. 1968년 8월 공화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닉슨 캠프에서 외교 분야를 담당하던 리차드 앨런(Richard Allen 1936~)은 키신저에게 닉슨 캠프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험프리 캠프에는 새무엘 헌팅턴과 츠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참여하고 있었지만 닉슨 측에는 이렇다 할 외교 브레인이 없었다. 며칠 후 키신저는 앨런에게 자기는 사적으로 닉슨을 돕겠으며, 비하인드에서 돕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9월 초, 키신저는 앨런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파리 회담에 미국 대표단 멤버로 참석한다면서 파리 회담이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 주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앨런은 그러라고 하고 닉슨의 선거운동을 책임지고 있던 존 미첼과 밥 홀드먼에게 알렸다. 미첼과 홀드먼은 뜻밖에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좋아 했다. 앨런은 키신저가 네 차례에 걸쳐 공중전화로 자기와 통화했다고 1980년대 초에 밝혔다. 키신저는 미국 대표단이 대선 전에 평화회담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키신저는 존 미첼에게 전화를 걸어서 평화 협상 발표가 임박했다고 전했다. 닉슨은 키신저가 전달한 정보를 보고 받았다. 나름대로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던 닉슨은 키신저의 정보가 신빙성이 있다고 보았다.

사진 : 1968년 4월 9일, 캠프데이비드에서 만난 존슨 대통령과 엘스워스 벙커 사이공 주재 대사(왼쪽) 그리고 애버렐 해리먼 대사(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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