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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베트남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었나 ?
작성일 : 2022-12-31 19:30조회 : 1,356
베트남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었나 ?
1968년 대선을 앞두고 존슨 대통령이 시도했던 베트남 평화회담이 무산된 배경에 닉슨과 키신저가 있었음이 10년이 지나서 알려지자 닉슨과 키신저 때문에 의미없는 전쟁을 4년 동안 더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진보 좌파 논객들은 닉슨과 키신저가 반역죄를 범한 전쟁 범죄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면, 닉슨이 아니고 험프리가 대통령이 돼서 베트남 평화회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더라면 1969년에 베트남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미군이 철수할 수 있었을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일은 처음부터 없었다. 근래에 북베트남 자료를 연구한 학자들도 북베트남은 처음부터 평화회담에 진정한 의지가 없었다. 북베트남은 미군 지상전투부대가 철수한 후인 1972년 봄에 대공세를 취해 남베트남을 완전히 정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군이 하노이와 하이퐁마저 폭격하는 등 강력하게 반격하자 북베트남은 승리는커녕 폭격으로 인한 피해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서 평화 회담에 응했던 것이다.
닉슨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파리에서 미국과 북베트남과 회의가 간헐적으로 열렸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다. 닉슨은 캄보디아를 침공하는 등 강도 높은 공세를 취하면서 점진적으로 미군을 철수시켜서 1971년 말까지 한때 50만에 달했던 미군 전투병력이 1972년 초에는 2만 5000명 규모의 군사고문단과 헬기 부대 등 항공부대만 남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1972년 3월 30일 북베트남은 춘계 대공세(Easter Offensive)를 폈다. 북베트남은 부활절 휴일을 맞아 북부 중부 남부 3면으로 탱크 부대를 포함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서 남베트남을 완전히 정복할 계획이었다.
북부의 꽝트리와 후에가 함락되고 중부의 꼰뚬, 그리고 남부의 안록이 북베트남군에 포위되는 등 위험한 상황이 전개됐다. 닉슨 대통령이 해·공군 항공전력을 동원해서 꽝트리, 안록 등에 침공한 북베트남군을 폭격해서 전세(戰勢)를 반전(反轉)시켰다. 이어서 미 해군기는 하이퐁 항구 앞바다에 기뢰를 투하해서 항만 기능을 마비시켰다.
5월 들어서 닉슨은 대공습 작전(Operation Linebacker)을 명령해서 북베트남 전역에 대해 B-52 폭격기를 위시한 전폭기를 총동원해서 대대적인 폭격에 나섰다. 이 같은 대공습 작전에 힘입어 북베트남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퇴했다. 10월 8일 북베트남의 레둑 토가 휴전 등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고 평화 회담에 복귀할 뜻을 밝히자 닉슨은 공습작전을 10월 23일자로 종료시켰다. 10월 26일, 헨리 키신저는 “평화가 손에 잡혀 있다”(“Peace in at hands”)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11월 7일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은 압도적 차이로 승리했다.
북베트남이 춘계 대공세를 시작한 후 약 6개월 동안 미군은 1차 대전, 2차 대전, 한국전 등 그 전에 있었던 모든 전쟁에서 투하한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군과 북베트남 시설에 퍼부었다. 미군은 팬텀 등 전폭기 100여 대를 작전 중 상실했다. 그 후 북베트남이 다시 회담에 불응하자 닉슨은 12월 18일 2차 대공습 작전(Operation Linebacker II)을 명령했다.
12월 29일까지 B-52 폭격기와 F-111 전폭기 등은 하노이와 하이퐁에 대해 집중적으로 폭탄을 퍼부었다. 이로 인해 하노이 도심과 주변의 군사/산업시설 철도 그리고 하이퐁의 항만 등 주요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라인배커 II 작전은 B-52 위주로 시행됐는데, 신형 대공(對空) 미사일로 인해 B-52 15대가 격추돼서 미 공군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북베트남은 10월 26일 파리 평화회담에 복귀할 뜻을 밝히자 닉슨은 작전 중단을 명령했다. 미국과 북베트남, 그리고 남베트남과 베트콩은 1973년 1월 23일 파리에서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처럼 북베트남에게 평화회담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1972년 4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공습, 특히 북베트남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으로 위기에 처하자 북베트남은 마지못해 평화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미국은 남아 있는 미군을 철수하고 포로를 귀환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고 북베트남은 미군의 폭격을 중단시키는 것이 급해서 평화협정에 서명했던 것이다.
1973년 들어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의 리더십은 추락했고,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는 남베트남에 대한 원조를 삭감하고 미군의 베트남 개입을 금지시켰다. 1973년과 1974년 두 해 동안 북베트남은 다시 전력을 정비해서 남침을 준비했으나 남베트남 군은 포탄과 항공유 등 보급품이 부족한 상황이 됐다. 1975년 봄, 북베트남 군대가 남쪽으로 밀고 들어오자 남베트남은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닉슨과 키신저 때문에 베트남 전쟁이 4년 동안 더 연장됐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 1968년 대선을 앞두고 존슨은 민주당 승리를 위해 선거용으로 베트남 평화회담 시작을 공표했던 것이다. 따라서 닉슨이 아닌 험프리 등 그 누가 당선됐다고 하더라도 1969년에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대통령도 1969년 한 해 동안 미군 50만 명을 철수하고 남베트남이 공산화되도록 방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전쟁, 특히 지상전은 결코 섣불리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미국은 불과 30년 만에 그 교훈을 잊어버리고 이라크 전쟁을 벌였다.)
사진 : 라인배커 작전 중 미 해군 F-4 팬텀과 A-7 코르세어 편대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라인배커’는 미식 축구에서 수비수를 의미한다. 대학 시절에 미식 축구를 했던 닉슨이 직접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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