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스라엘 선거 제도

작성일 : 2023-01-31 21:28조회 : 1,350

이스라엘 선거 제도

이스라엘은 과학기술과 첨단산업, 훌륭한 교육제도, 막강한 군사력과 정보기관 등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절대로 배워서는 안 되는 것이 선거와 정당 시스템이다. 이스라엘은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전원 정당 명부 비례대표로 구성한다. 워낙 작은 나라이고 인구가 몇몇 도시에 집중되어 있어서 지역구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건국 투쟁을 주도한 하가나에서 발전한 노동당이 정부를 이끌어 갔을 시절에 이스라엘 정치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노동당 정부는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건국 시절 강경파 무장세력인 이르군에서 발전한 리쿠드당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욤 키푸르 전쟁 때 예비군 사단을 이끌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진격해서 시나이 반도로 침공한 이집트 3군을 포위함으로써 전세(戰勢)를 반전시켜서 전쟁 영웅으로 부상한 아리엘 샤론이 리쿠드당 소속이었다. 이렇게 해서 리쿠드당은 노동당과 더불어 양대 정당이 됐으나 비례대표제로 인해 여러 군소 정당이 원내에 진입한 탓에 두 정당은 다른 정당과 함께 연합을 해야만 과반수 의석으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다. 1977년 총선에선 리쿠드당이 1당이 되어 메나쳄 베긴이 총리가 됐다.

그 후 정권은 노동당 연합과 리쿠드당 연합으로 오고 갔으나 갈수록 두 정당의 의석수는 줄어들었다.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해서 원내 정당이 열 개가 넘는 상황에 이르러서 선거가 끝나도 내각을 구성하기가 힘든 상황이 빈발했다. 이스라엘 자체의 정치가 이렇게 불안하기 때문에 평화협상도 힘들고 협정을 맺어 봐야 이행이 어려워지는 등 중동 평화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국내정치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 의회가 이런 문제를 타결하겠다고 1990년대 초에 총리 직선제를 채택했다. 미국 대통령처럼 국민이 직접 총리를 선출하면 정국 안정을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새 선거제도에 의해 1996년 5월 총리 직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러졌다. 총리 선거는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가 50.5%, 노동당의 시몬 페레스가 49.5%를 얻어서 예상을 뒤엎고 네타냐후가 승리했다. 동시에 치른 총선에서 노동당이 34석, 리쿠드가 32석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군소정당이었다. 총리가 된 네타나휴는 불안한 연정에 의존해야만 했으나 결국 연립 파트너가 이탈해서 의회를 해산하고 자신도 사임해야만 했다

(MIT를 나오고 주미 차석대사와 유엔 주재대사를 지낸 네타냐후는 총리 선거에서 미국식 운동을 해서 정치경력이 월등히 뛰어난 페레스를 꺾었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1976년 PLO가 여객기를 우간다로 납치하자 이스라엘 특공대를 이끌고 납치범들을 전원 사살하고 인질들을 구출한 엔테베 작전을 이끌었지만 작전 중 본인은 전사해서 국민적 영웅이 된 요나단 네타냐후의 동생이다. 베냐민 네타나후는 작년에 총리로 다시 컴백했다.)

1999년 5월에 치러진 총리 직선에선 노동당 연합의 에후드 바라크가 56%를 얻어서 44%를 얻은 네타냐후를 꺾었다. 하지만 의회 선거에선 바라크가 이끄는 노동당은 26석을 얻는데 그쳐서 작은 정당 6개와 연립내각을 구성해야만 했다. 2000년 들어서 아랍인들의 인티파타(불복종 시위/폭동)가 대규모로 발생하자 바라크 총리는 사임하고 총리만 뽑는 직선을 했다. 그 결과 리쿠드 연합을 이끄는 아리엘 샤론이 62%를 얻어 38%를 얻은 바라크에 승리를 거두었다. 샤론이 속한 리쿠드당은 불과 21석을 갖고 있었으니 역시 불안한 연정에 의존해야만 했다.

총리 직선제가 정국의 안정을 가져오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된 의회는 기본법을 고쳐서 다음 선거부터는 과거처럼 총선 결과로 원내 다수석(61석)을 장악한 세력이 내각을 구성하도록 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랍비당, 토지당 등 각종 특수 이익에 기반한 군소정당이 정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비례대표제를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군소 정당이 원내에 많이 진출해 있어서 이런 현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현행 제도가 문제가 많다면서 선거제도를 바꾸고 국회가 총리를 선출토록 하자는 등 온갖 설익은 황당한 이야기를 마구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비례대표제와 대선거구로 원내정당을 열 개쯤 만들어서 이스라엘을 닮아 가려고 난리를 떠는 것 같다. 다양한 원내 정당이 많을수록 더 좋다는 주장은 결국 극단적인 이념과 편협한 이익을 대변하는 군소 정당이 연정을 미끼로 큰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정국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야말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정국이 되는 셈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도록 하자는 주장은 프랑스처럼 이원적 정부를 만들자는 이야기인데,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경우 동거(同居)식 협치가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서로 대립하게 되면 정국은 혼미상태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는 헌법 개정 사안인데, 그런 개헌은 애당초 가능치도 않다. 자동차는 내연기관과 밧데리가 같이 있는 하이브리드가 가능하지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섞어 놓은 하이브리드 정부는 기능 마비를 초래하기 쉽다. 원내정당이 열 개는 되어야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국회에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제도를 설명해 보기 바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부러워할 것이다. 많은 경우에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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