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탄핵 사유

작성일 : 2024-09-28 07:11조회 : 209

윤석열 탄핵 사유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따른 폐단을 경험한 우리는 단임제를 택함으로써 그런 가능성을 차단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5년도 지긋지긋하게 길게 느껴지고 있어 큰일이다. 대통령제 정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와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구상한 정부 형태이다. 그런 원래의 구상과 달리 대통령제는 정당을 매개로 해서 대통령이 행정부와 국회를 동시에 장악하고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독재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국회의 다수당이 달라서 국정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는 정국을 이끌어가는 개인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국회 다수당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대통령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분야에선 제멋대로 폭주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제의 결점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의 행태는 박근혜의 탄핵사유인 ‘국정농단’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닉슨 대통령에 대해 하원 법사위원회가 적용한 탄핵 사유는 '사법방해'(obstruction of justice)와 '권력남용'(abuse of powers)인데, 여기서 권력남용은 ‘국정농단’과 비슷한 개념이다. 의대 증원은 법적 절차를 위반하고 권한을 남용한 전형적인 권력남용이고, 채 해병 사건과 김건희 불기소 사건은 전형적인 사법방해라고 하겠다. 다만 우리 법은 사법방해죄가 없기 때문에 채 해병 사건과 김건희 사건은 윤석열의 18번 장기인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채 해병 사건과 김건희 사건은 ‘권력남용’이란 큰 범주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점차 드러나고 있는 외부인사의 정무직 및 공공기관 인사 개입은 전형적인 국정농단으로 미국식으로 말하면 권력남용에 해당한다.

또한 박근혜가 국정원 특활비로 선거에 대비한 여론조사를 한 행위가 정치개입이란 이유로 징역 2년을 추가로 선고 받았음도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에 적용된 정치간여죄는 요새 논의되는 공천 개입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장은 로스쿨 2학년생이면 누구나 훌륭하게 쓸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 국회가 윤석열에 대해 탄핵소추를 결의한다면 헌법재판소가 기각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물론 탄핵에 필요한 200석을 통과할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 열 몇 명이 탄핵에 동조한다면 그것은 정권을 민주당에게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국민의힘 의원들은 잘 알고 있다. 박근혜 탄핵은 당시 새누리당 이탈파가 3자 구도 대선에서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87년 개헌은 대통령 직선과 5년 단임,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를 두는 지금의 우리 정치구도를 만들어냈다. 당시 30대~40대 초에 이르는 소장학자들은 부통령과 미국식 사법심사를 선호했으나 중진 학자들은 국무총리와 독일식의 헌법재판소를 지지했다. 부통령제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진영에서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소장 학자들은 대통령에 유고가 생기면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를 하기 보다는 잔여 임기를 부통령이 담당하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1987년 개헌을 논의할 때 탄핵이 빈번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특히 대통령 외에 장관이나 재판관이 탄핵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만일에 그것을 예상했더라면 장관 등을 탄핵할 때에도 국회의원 2/3 찬성을 요한다고 규정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국무위원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데도 국회 과반수 동의가 필요한데, 탄핵을 국회 과반수 동의로 하도록 한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는다. 장관을 탄핵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조항이 그대로 남았던 것이다. 방통위원장이 취임 즉시 위원 한명과 함께 단 둘이서 방문진 이사 인사를 해치우고, 그 하루 후에 국회가 방통위원장을 탄핵했으니 87년 개헌 때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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