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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권 남용

작성일 : 2024-09-29 23:00조회 : 110

입법권 남용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일도 안하고 특권만 많이 갖고 있으며 정쟁에 몰두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입법부의 본연의 임무인 입법만은 열심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회의원처럼 법안 발의를 많이 하는 국회의원은 세계에 별로 없다.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법안을 만들어 발의하는 의원이 수두룩하다. 누가 법안을 많이 발의하는가가 운동경기 비슷하게 돼버렸다. 어느 신문은 의원이 발의한 법안 숫자를 계산해서 랭킹을 선정한다. 현역의원을 상대로 공천심사를 할 때 법안 발의 숫자를 지수로 반영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법률이 되는 법안은 매우 적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제안해서 18대 국회 마지막 순간에 통과한 국회선진화법 만큼 국회 운영에 큰 영향을 준 법률은 없다. 어느 경우에도 한 정당이 180석을 넘기는 경우는 없을 것이란 전제하에 국회선진화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한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을 하지 못하게 해서 원내 정당이 최대한 합의를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했다. 그래서 상임위 소위에 회부하기 위해서도 교섭단체가 합의를 해야 했다. 어느 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던 20대 국회는 바로 그랬기 때문에 국회가 국회답게 돌아갔다.

그리고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당시는 미래통합당)은 국회선진화법의 마지노 선(線)인 120석을 얻지 못했다. 의석 분포가 이렇게 되니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일방적 입법을 제약할 방법이 없었다. 부동산 관련법과 검수완박법이 이렇게 해서 국회를 통과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순간에 법률로 태어난 검수완박법은 입법권 남용의 극치라고 할 만 하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으나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20석 확보에 또 실패했고, 우리는 오늘날 국회 다수당의 일방적 법안 통과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악순환을 보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은 어차피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할 줄 것으로 예상하고 법안을 남발하는 경향도 있다. 더구나 일반 법규범이 아닌 처분적 성격의 포퓰리즘 법안을 남발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25만원씩 나누어 주자는 법안, 특정지역에 의대이나 공항을 세우자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처분적 성격의 법안은 위헌은 아니지만 매우 좋지 않은 현상이고, 이런 법안을 남발하는 정당이 국가를 이끌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정국이라서 정부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가 없이, 그리고 국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권한을 많이 갖고 있다. 대외정책 사안이 그러하고, 의대 증원 같이 행정부에 위임되어 있는 사안이 그러하다. 아무리 국회를 야당이 장악하고 있더라도 이런 분야에서 대통령이 제멋대로 한다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기가 막힌 드라마이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과 실망이 광범하게 퍼져 있다고 하더라도 입법권을 남용하는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에 대해선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견해가 많다. 그래서 윤 정권이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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