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평원 무력화 시도

작성일 : 2024-10-03 10:01조회 : 106

의평원 무력화 시도

오늘(10월 3일) 오후, 윤석열 정부의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평가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규탄하는 집회가 용산에서 열린다. 의평원은 미국의사협회와 미국의대협의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Liaison Committee on Medical Education(LCME)와 같은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의평원의 기능을 무력화 시키려 한다고 보고 있다. 의평원이 정부가 무리하게 증원한 의대를 상대로 인증 심사를 해서 이들 의대를 불인정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정부가 이런 규정안을 입법예고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고등교육 평가인증 규정(안) 제2조4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한 경우에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저하되는 경우, 불인증을 하기 전에 1년 이상 보완기간을 부여하며 보완기간 동안 해당학교가 받은 인증은 유효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의대 교수들인 이 조항이 의평원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으로 본다.

함께 예고된 제2조의3(인정기관 공백시의 특례) 조항은 기존 인정기관이 재지정되지 않거나 지정 재지정이 취소되는 등의 사유가 발생하여 인정기관이 없는 경우 또는 인정기관이 업무의 일부 또는 전부를 중단 폐지하여 평가 인증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기존 평가 인증의 유효기간이 연장되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고등교육기관의 평가 인중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의3은 인증기관 지정 취소에 대해서 엄격한 절차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의평원을 지정 취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14조는 법인이 공익법인법과 정관을 위반한 경우 등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법인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이사의 취임승인을 취소할 수 있으며(동 2항), 수익사업을 하는 공익법인에 대해선 수익을 목적사업 외의 용도에 사용하거나 해당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공익법인의 목적에 위배된다고 인정될 때에 사업의 시정이나 정지를 명할 수 있다(동 3항)고 규정한다.

의평원은 정관 제8조에서 운영 재원을 기금 과실, 사업 수익, 기타 수익으로 충당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에 공익법인법 제14조 3항에 의해 주무관청이 사업 시정과 정지를 명할 수 있는 법인이다. 따라서 교육부가 공익법인법 제14조 3항에 근거해서 의평원에 사업 정지를 명하고, 이번에 예고한 평가인증규정 제2조의3에 의해 인증 대상인 의대가 그대로 유효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의평원의 기능을 정지시킴으로써 인증 기능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상황이 증원을 한 의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의대 재학생 전원이 유급을 함에 따라 입시를 강행하는 경우에 내년도에는 증원을 하지 않은 의대도 예과 1학년은 교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2026년에 정원을 원상복구한다고 해도 이 문제는 최소한 6년 동안은 남기 때문에 매우 심각하다.

정부가 2025년 의대 증원을 2000명이나 늘렸을 때 의료계는 이 조치의 시행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 당했다. 그러나 우리 소송에서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 결과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다. 의대 재학생 전원유급이 현실로 굳어 졌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7조는 학생정원 운영의 원칙을 정하고 있다. 즉 시행령 제27조(학생정원 운영의 원칙)는 “- -대학이 학생정원을 정할 때에는 당해 대학의 교육여건과 사회적 인력수급 전망 등을 반영하여 대학이 특성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제28조 3항은 의료인, 교원, 약사 수의사 등에 관한 모집단의의 입학정원은 교육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내년에 증원된 신입생이 들어오고 재학생이 복귀한다면 예과 1학년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7조 위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문언(文言)으로 볼 때, 이 조항은 입학정원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내년도 입시를 시행하는 자체가 시행령 제27조가 정하는 ‘대학 정원 운영의 원칙’을 위반하는 불법인 것이다. 따라서 증원을 취소하건 하지 않건 간에 내년도에 의대 입시를 강행해서 신입생을 받아드린다면 교수와 교육시설 등 교육여건 상으로도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더러 교육법 시행령 제27조를 위반하는 불법상태가 초래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도쿄대가 1969년에 입시를 하지 않았다.)

무리한 의대 증원 강행한 정부는 학생들이 제출한 휴학을 인정하지 말라, 공부를 하지 않고도 진급을 시키라는 등 불법적이고 반(反)교육적인 지시를 대학에 남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받는 조건으로 군의관으로 근무하거나 공익근무 의사로서 의료취약지역에 일정기간 근무하도록 하고, 공익근무의 경우에는 여성 의사에도 적용하려한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여성에 대한 공익근무는 이스라엘처럼 여성에게도 군 복무를 의무화하고 대체 복무를 허용하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즉, 이스라엘처럼 모든 여성에게 병역의 의무를 과하지 않는 한 그것은 명백한 불법이고 위헌이다.

군의관이 사병에 비해 복무기간이 길어서 의대 졸업생이나 재학생이 사병복무를 원하는 추세는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이는 군의관 복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고해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군 병원의 시설과 환경을 개선해서 군의관들이 보람을 느끼면서 복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의대 교수들은 사직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하니 19세기 말 구 한말 시절에 폐지된 노비 제도를 다시 도입하려는 꼴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계속 생기고 있어서 할 말을 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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