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학정원령

작성일 : 2024-10-05 05:57조회 : 95

대학정원령

50대 이하 세대는 ‘대학정원령’이란 용어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1998년에 폐지돼서 이미 사라진 법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정원을 정부가 정하는 이 제도는 사범대학, 의대, 간호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에는 엄연히 살아있다. 그래서 오늘날 의대 증원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통상적인 군인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고 생각된다. 5.16 후에 양담배(외국산 담배)를 철저하게 단속하고 ‘혁명공약’에 밀수품 단속을 넣었다는 점에서 세계 쿠데타 역사에 보기 드문 경우였다. 박정희가 보기 싫어했던 것이 ‘우골탑’이라고 불렸던 사립대학이다. 우골탑(牛骨塔)이란 농촌에서 자식을 사립대학에 보내느냐고 소중한 소를 팔았기 때문에 농민들의 피눈물나는 소 판돈으로 세운 사립대학은 학문을 하는 상아탑(象牙塔 Ivory Tower)가 아니고 농민들이 팔아버린 소들의 뼈로 만든 대학이라는 뜻이었다.

1950년대는 대학에 정원이 있고 입시가 있었으나 국립대학(서울대와 우리가 요새 거점 지방국립대라고 부르는 국립대)과 전통있는 고대, 연대, 가톨릭대 등 사립대를 제외하고는 정원 외 부정입학과 정원 외 청강생이 많아서 졸업생이 입학정원 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우리 사회는 곳곳이 그랬다. 병역기피가 만연했고 병역기피자를 단속하지도 않았다. 가짜대학생과 병역기피자가 백주에 멀쩡히 돌아다니고 깡패들이 설쳤던 시절이었다. 5.16은 그것을 일소(一掃, 한 번에 해결)했다. 깡패 두목을 사형에 처하고 병역기피자들을 단속해서 집단훈련소에 보내버렸다.

박정희 군사정부(최고회의)는 ‘학교정비기준령’이란것을 선포해서 대학 정원을 감축했다. 공공연한 부정입학과 청강생은 당연히 없어졌고, 대학 기준령에 맞추어서 대학정원은 줄어들었다. 서울법대도 그 때 정원이 300명에서 160명으로 줄었들었고 그 정원은 1980년이 거의 되어서 조금씩 늘어나기 사작했다. 1950년대에는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서울법대를 나온 사람 중 고시가 된 극소수를 제외하곤 은행원, 중고교 교사 등을 많이 했고 드물게는 기자를 했다. 군사정부 시절에 만든 ‘학교정비기준령’은 1965년 교육법에 근거한 대학정원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공계를 중요하다고 보아서 이공계 대학은 늘리도록 해서 그 후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기초를 세웠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거가 대학정원령이었다. 우골탑을 일소하는데 기여한 것이 바로 이 대학정원령이었다. 서울대도 공대는 대폭 늘어났고 문리대 인문학과나 법대는 초라해졌다. 전두환 정권은 졸업정원제라는 것을 도입해서 학생들을 공부에 묶어 놓으려 했으나 대학생 숫자가 워낙 늘어나서 이 거대한 학생들이 전두환 정권을 축출해 버렸다. 전두환이 기대한 것과 정반대 효과가 난 것이다.

그 후에도 대학정원을 정부가 정하는 제도는 유지가 됐으나 점차 새로운 사립대학 설립을 허가하고 기존 대학 정원을 늘려주는 식으로 늘어나는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사립대학 설립준칙주의를 택해서 사립대학이 많이 생겨났다. 대학 정원을 철저하게 억제하기 시작한 후 40여 년 만에 정반대 정책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학생이 없는 대학, 문 닫는 대학을 초래했다. 김영삼 정부의 정책을 움직였던 몇몇 서울대 교수들이 한치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1998년 당시 규제혁파 움직임에 편승해서 김대중 정부는 대학정원령을 철폐했고, 대학은 상당한 자율성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 때부터 교육부는 재정지원이란 당근으로 대학을 움직여 왔음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학정원령이 사라졌다고 하나 오늘날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7조는 학생정원 운영의 원칙을 정하고 있다. 즉 시행령 제27조(학생정원 운영의 원칙)는 “- -대학이 학생정원을 정할 때에는 당해 대학의 교육여건과 사회적 인력수급 전망 등을 반영하여 대학이 특성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며, 동법 제28조 3항은 의료인, 교원, 약사 수의사 등에 관한 모집단위의 입학정원은 교육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정부 시절에 도입한 대학정원령은 의대 등에 대해선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의대 등에 정해지는 대학정원 규정은 신입생 숫자에 국한되는 것인지, 아니면 재학생에도 적용되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에 정원 규정이 신입생에게만 적용된다면 대학이 정원을 넘는 편입생을 뽑을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해석해서도 안 되고 지금까지 그렇게 대학을 운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의대 전교생이 유급을 하는 상황에서 신입생을 그대로 선출한다면 그것은 의대 등에 적용되는 정원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닌가 ? 나는 위반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2025년 의대 입시 그 자체가 법령 위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행 고등교육법의 입법 역사를 보더라도 그것은 명백히 불법이다.

나는 그래서 지금 중요한 바는 2025년 의대 증원 못지 않게,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의대 전교생이 유급한 상황에서 신입생을 선발하는 자제가 불법이라는 점이다. 2025년 의대 입시를 치른다면 사실상 교육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입시를 강행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교육부가 휴학을 못하게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진급을 시켜서 의대를 7년제로 운영한다면 그것도 불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따라서 2025년도 의대 입시를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해결방법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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