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란과 외환

작성일 : 2024-12-14 10:36조회 : 121

내란과 외환

윤석열의 계엄 난동은 한밤 중에 나와서 떠들어 댄 소극(笑劇)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주 토요일에 탄핵이 부결된 후에 드러난 여러 정황과 진술을 종합해 보면 꽤 오래 전부터 계엄을 선포해서 국정을 장악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을 국방장관 등 극소수 측근에게만 이야기하고 당일 별안간 명령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자신은 이를 정상적 계엄으로 알았던 것 같으니 검사를 지낸 사람이 이렇게 저질일 수 있나 하는 개탄이 나올 지경이다. 적극적으로 모의를 하지는 않았으나 별안간 명령을 받고 “이게 무슨 일인가”하면서 따랐던 군과 경찰의 지휘관들이 하루아침에 내란의 하수인으로 처벌을 받을 상황에 처했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또한 이 사람들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할 의도가 있지는 않았나 하는 추정도 힘을 얻는 것 같다. 북한 깊숙이 무인기를 보내고 접경지 양구에 병력을 보내려 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어서 그런 추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만약 이런 추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형법상 외환죄(外患罪)를 구성할 수 있다. 외환죄, 즉 외국과의 전란(戰亂)을 유도하는 범죄는 나의 기억으로 우리나라 사법사(司法史)에 없던 일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외환죄’라고 하니까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는 ‘외환죄’(外換罪)‘로 알아듣고 윤석열이 달러화(貨)를 외국으로 반출했다고 이해한다는 농담 같은 진담이 있다.)

1986년 필리핀 정국은 혼미했고 마르코스는 군을 동원해서 야당과 국민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국방장관 엔릴레와 군 사령관 피델 라모스는 국민 편에서 서서 마르코스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1986년 필리핀 민주혁명은 군 지휘부가 국민 편에 서서 가능했고, 이는 이듬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반면에 1989년 초 중국 베이징 천안문 시위에선 중국군이 시위대를 탄압해서 민주화 운동은 좌절되고 말았다. 당시 중국의 학생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은 1986년 필리핀과 1987년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승리에 고무됐으나 중국은 필리핀과 한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2024년 한국은 1989년 중국이 아니었다.

사진 (1) : 1986년 마닐라.
사진 (2) : 1989년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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