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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욜라

작성일 : 2010-10-18 00:18조회 : 5,206

로욜라

이상돈 (2010년 10월 18일)

가톨릭에는 많은 수도회와 교단이 있는데, 그 중 베네딕토, 프랜시스코, 그리고 ‘예수회’라고 불리는 제수이트가 크고 잘 알려져 있다. '예수회'(‘The Jesuits’ : ‘The Society of Jesus’)는 미국 등 여러 나라에 대학을 많이 세워서 특히 유명하다. 미국에는 특히 예수회가 세운 대학이 많은데, 조지타운 대학, 보스턴 칼리지, 그리고 시카고, 뉴올린스, 로스앤젤레스, 볼티모어에 있는 로욜라 대학이 그러하다. 일본의 소피아대학(上智大學)과 우리나라의 서강대학교도 예수회가 세운 대학이고, 중남미, 필리핀, 인도 등 예수회가 세운 대학은 세계 곳곳에 있다. 미국에는 예수회가 운영하는 고등학교도 워싱턴 근교와 시카고 등 여러 곳에 있다.

이런 예수회를 세운 사람은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of Loyola, 1491-1556 : 스페인어로는 ‘Ignacio de Loyola', 바스크어로는 ’Ignazio Loiolakoa)이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스페인 바스크 출신인데, ‘로욜라’는 그의 성(姓)이면서 그가 태어나서 자라난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聖人)은 흔히 가장 위대한 바스크인이라고 이야기되며, 실제로 바스크 지방에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게르니카에서 로욜라(Loyola : 바스크어로는 ‘Loiolla')를 가려면 바스크 지방전철로 주마니아에 가서 한 시간에 한번 있는 버스를 타야한다. 버스는 남쪽 산간지역으로 들어가는 데, 창밖의 푸른 경치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느덧 버스는 아즈뻬이티아(Azpeitia)라는 인구 12,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 도착하는데, 도심에서 5분 정도가면 삼면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로욜라 성지(Sanctuary of Loyola)가 나온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태어나서 자란 로욜라 가문의 성채가 여기에 남아 있는데, 1738년에 축성된 로욜라 성당(Loyola Basilica)이 이 오래된 건물을 감싸고 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설계한 지오반니 베르니니의 제자인 까를로 폰타나가 설계해서 한 세기에 걸쳐 건축된 로욜라 성당은 건물은 물론이고 광장마저 바티칸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

성당 좌측 입구에는 로욜라 가문의 성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세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온다. 성채의 내부는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냐시오가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다리를 수술한 후 고통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는 위층 방도 잘 보존되어 있다. 로욜라 성당 뒤쪽에는 수행자들을 위한 호스텔이 있고 건물 앞 대로변에는 ‘로욜라 클리닉’이란 휴양병원이 있다. 성당 왼편에는 로욜라 성지가 운영하는 아루뻬 호텔이 있는데, 나는 이 호텔에서 묵었다. 9월 초이지만 산간지대라 기온도 쾌적하고, 저녁이 되자 어찌나 적막하고 평온한지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별 하나 급 호텔이지만 새로 단장해서 깨끗했고, 호텔 직원들은 너무나 친절했으며 아침 식사도 훌륭했다. 투숙객은 불과 4-5명에 불과했지만 호텔 직원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고, 멀리서 찾아 온 나에게 고마워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

나중에 이냐시오 데 로욜라로 알려지게 되는 이니고 로뻬즈 로욜라는 바스크 지역인 아즈뻬이티아의 로욜라 가문의 성채에서 1491년에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사병(私兵)을 거느린 바스크 토호(土豪)였는데, 바스크를 지키기 위해 이슬람 무어족과 싸웠다. 그의 부친은 스페인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 여왕에 충성을 맹세하고 프랑스 군대와 싸웠다. 로욜라 가문은 그러한 전투의 대가로 국왕으로부터 토지와 특권을 부여 받았고, 이니고가 태어날 당시에 로욜라 가문은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고 있었다. 이니고의 부모는 아이 13명을 났는데, 이니고는 막내로 태어났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사망해서 이니고는 유모의 품에서 자랐다. 이니고의 형제들은 모험을 통해서 부(富)를 축적한 가문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이니고의 큰 형은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에 참가했고 나중에 프랑스와 해상전투에서 전사했다. 다른 형은 나폴리에서 전투 중 사망했고, 또 다른 형은 미주 대륙에 도착해서 인디언들과 싸우다가 사망했다. 형제 중 한명은 가톨릭 사제가 되어 마을 교회를 운영했다.

사제인 형으로 인해 이니고는 종교적 분위기에서 자랐으나 세속적인 권력과 부에 관심이 많았고, 까스티유의 재무관이던 후완 벨라스케즈의 시종이 되었다. 페르디난드 국왕과 이사벨라 여왕은 스페인에서 이교도를 박멸하기로 결정했고, 이교도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든가 죽든가를 선택해야만 했으니, 이것이 종교재판을 통한 무슬림과 유태인 대학살이다. 이사벨라 여왕은 1504년에 사망했는데, 남편 페르디난드 왕과의 사이에 신경증 증상 때문에 광녀(狂女)로 불린 후아나 라 로카라는 딸을 두었는데, 후아나는 필립공(公)과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인판타 까탈리나가 태어났다. 후아나는 자신의 딸 인판타 까탈리나를 어두운 성채 속에 유폐시켰는데, 나중에 스페인 국왕이 된 그녀의 오빠가 어린 동생을 구출해서 로욜라 가문의 성에 잠시 머물도록 한 적이 있었다. 젊은 이니고는 어린 인판타 까탈리나를 속으로 좋아했으나 그녀의 어머니 후아나가 딸을 돌려주지 않으면 굶어 죽겠다고 해서 인판타 까탈리나는 다시 어머니의 옆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이니고와 인판타 까탈리나는 평생 친구로 남게 되었다. 이니고는 당시 권문세가의 자제들이 그러했듯이 방탕한 생활을 했고, 나중에 그는 그것을 참회하는 고해를 했다.

1516년에 페르디난드 왕은 심한 우울증 끝에 사망했는데 재혼한 부인 게르마나가 이상한 약을 먹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다음 해에는 페르디난드 왕이 신임했던 후안 벨라스케즈도 사망해서 이니고는 후원자를 상실하게 되었다. 25세가 된 이니고는 인근의 나바라 왕국의 만리께 드 랄라 백작을 추종하기로 했고 그를 위해서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나바로 왕과 왕후가 연속해서 사망해서 나바라 왕국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1517년에 페르디난드 왕을 계승한 샤를르는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조부인 맥시밀리안 황제가 사망하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기 위해 독일로 향했다. 이런 공백을 타서 나바라의 바스크족이 독립을 요구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프랜시스 1세는 군대 12,000명을 모아서 나바라로 보내서 나바로의 마지막 왕인 딸브레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 나바라의 바스크족들은 프랑스 군에 대항하지 않고 이들을 환영했다. 그러자 스페인에 우호적인 구이뿌스꾸아의 바스크족들은 이에 분노해서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 지휘관이 이니고의 형인 마르뗑 드 로욜라였다. 1521년 5월, 프랑스 군대는 나바라의 뽐쁠로나를 공격했고, 이니고는 뽐쁠로나에서 프랑스 군대에 맞서 싸우다가 죽으려고 했는데, 프랑스 군이 쏜 포탄이 주변에 떨어져서 다리에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프랑스 군은 이니고가 죽을 것으로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했고, 로욜라로 돌아온 이니고는 고통스런 수술을 하고 방에서 몇 달 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병석에서 이니고는 가톨릭 성인들에 관한 책을 읽게 됐는데, 특히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해 읽고 감명을 받았다. 이니고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게 됐고, 어느 날 밤 성모 마리아와 어린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됐다. 그 다음날부터 이니고는 성모 마리아의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니고는 다리 부상에서 치유되었지만 오른쪽 다리가 몇 인치 짧아져서 그 후 계속 다리를 절어야만 했다. 이니고는 바르셀로나 부근의 바위산 몬세라에 위치한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머물면서 속세의 삶을 정리하고 기도에 정진했다. 호화스런 귀족과 군인 복장을 벗어 던지고 남루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예루살렘과 로마로 순례를 했고, 뒤늦게 라틴어를 배운 후에 파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파리 대학에서 신학 학위증을 이니고의 라틴 이름인 ‘이냐시오’로 받아서 그 후에는 아예 ‘이냐시오’로 이름을 바꾸었다. 파리 대학에서 이냐시오는 같은 바스크 출신인 쁘란치스꼬 하비에르를 만났고, 자신보다 젊고 학식이 높은 하비에르를 설득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참가하도록 했다. 1534년 8월 15일, 이냐시오와 그의 동료 7명은 ‘예수회’라는 새로운 수도회를 결성했고 교황은 이를 승인했다.

예수회는 당시의 종교개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에 대하여 충성을 약속했다. 이냐시오는 가톨릭을 전세계에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첫 과업으로 하비에르를 아시아에 보내기로 했다. 1541년, 당시 34세이던 하비에르는 리스본을 떠나서 일본, 몰루카 군도, 말레이 등지에서 가톨릭 선교를 했고, 중국으로 향하던 중 질병으로 1552년에 사망했다. 이냐시오는 자신의 충실한 동료인 하비에르를 다시 보지 못하고 1556년에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예수회에는 1,000명 이상의 사제가 속해 있었다. 이냐시오가 젊었을 때 좋아 했던 인판타 까탈리나는 포르투갈 왕과 결혼했는데, 이냐시오가 사망한 후에도 예수회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마 중심부에 있는 예수 성당(Jesu Basilica)은 이냐시오가 건립한 성당인데, 그곳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예수 성당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그를 기념하기 위한 성 이냐시오 성당(San Ignazio Basilica)이 있다.

예수회는 오늘날 훌륭한 교육기관을 세계 곳곳에 세워서 운영하는 등 매우 강력한 교단이 되어 있다. 유럽과 북미에 진출한 예수회는 정통 가톨릭 교리를 강조하는 보수적 교단이 되었으나, 중남미에 진출한 예수회는 1970-80년대에 걸쳐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활동을 해서 당시 유행하던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을 실천에 옮겼다. 같은 예수회라고 하더라도 이식된 토양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간 셈이다.

(c)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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