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세일과 이주호

작성일 : 2024-11-09 07:09조회 : 138

박세일과 이주호

오늘날 의대 증원 파동은 YS 정권 하에서의 의대 신설 파동에 이은 2라운드라고 할 만하다. 1라운드의 후유증이 거의 치유되는가 했더니 2라운드가 닥쳐온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의대 신설 외에도 로스쿨 도입과 대학 설립 자유화를 밀고 나갔다. 로스쿨은 좌절됐으나 대학설립 자유화와 의대 증설은 시행에 들어갔는데, YS 청와대에서 이 사안을 다룬 사람은 박세일 수석비서관이었다.

로스쿨이 박세일 수석의 신념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초원 복집으로 유명한 김기춘 등 막강한 법조인들이 YS 정권에 포진하고 있어서 로스쿨 도입은 좌초하고 말았다. 사립대 증설과 의대 증설에 대해 박세일 수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청와대에서 사회정책을 총괄한 책임자는 박세일이었다. 변호사와 의사를 늘리고 사립대학을 늘려서 수요에 부응하겠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의 방향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지방대 의대 신설은 그 후유증이 심각했다. 개혁이랍시고 무조건 밀고 나가면 이런 낭패를 당하는 것이다.

지금 의대 증원 총대를 메고 있는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박세일 수석과 인연이 깊다. 지난 2017년에 타계한 박세일(1948~2017)은 1970년에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병역을 면제 받은 후 산업은행에서 잠시 일한 후 도쿄 대학에서 공부하고 코넬 대학으로 옮겨서 1980년에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해서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있다가 1985년에 서울법대 교수가 됐다. 모교에서 법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사법시험 과목에만 몰두하는 법대생에 실망을 해서 미국식 로스쿨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본인이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1994년 12월에 정책기획수석으로 YS 청와대에 발을 들어놓았다. 1995년 12월에 서울대 이각범 교수가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명됨에 따라 박세일은 사회복지수석이 됐고 두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임기 끝까지 청와대에서 사회분야 정책을 이끌었다. 따라서 사립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의대 증설은 서울대 교수 출신 두 수석이 추진했다고 보는 것이다.

1961년생인 이주호 장관은 1983년에 서울대 사회과학대를 졸업하고 1985년에 경제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석사장교로 병역을 한 후 코넬 대학에 유학해서 1991년에 경제학박사 학위를 하고 귀국해서 KDI 연구위원을 지내면서 교육개혁과 노사관계를 담당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이주호는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와 노사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낸다. 따라서 이 기간 중 코넬 대학 동문이고 관심분야가 같은 박세일 수석과 이주호 연구위원은 자주 만났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청와대를 나온 박세일은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모교로 돌아왔고, 이주호도 정부 위원직을 내려놓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됐다. 박세일 교수는 그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등을 지내면서 진보/개혁 인사들과도 교류를 늘려갔다. 2004년 4.15 총선을 한 달 앞둔 3월 1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해서 국회 본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나라당은 거센 민심의 역풍을 맞았고 결국 박근혜 의원을 당 대표 겸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워서 총선을 치르게 됐다.

당시 여론 조사는 한나라당이 100석을 못할 것으로 보았으나 박근혜 대표의 치열한 유세 덕분에 한나라당은 기적 같이 121석으로 차지하게 된다. 4.15 총선은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이던 윤여준 전 장관이 선거를 지휘했는데, 이 때 박근혜 대표는 박세일 교수를 비례대표 2번으로 영입했다. 당시 소문에 의하면 박근혜 대표는 박세일 교수에게 비례대표 후보도 추천하도록 했다는 데, 진실 여부는 물론 확인하기 어렵다. 그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는 역대급으로 인물이 좋았다. 여성 후보로는 박찬숙, 전여옥, 나경원, 진수희 등이, 남성 후보로는 박세일, 이주호, 박재완, 유승민 등이 이 때 국회에 진출하게 됐다.

박세일 의원은 윤여준 전 장관의 뒤를 이어서 여의도 연구소장을 지내는 등 화려한 길을 갔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수도법에 동의하자 박세일 의원은 이에 반대하면서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당내 정책 문제로 낸 의원직 사퇴서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사퇴서는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한나라당을 탈당함으로써 박세일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박근혜 대표는 박세일 의원에 대해 냉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을 앞에 두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친이(親李)와 친박(親朴)으로 분열의 길을 갔다. 유승민 의원은 비례의원을 사퇴하고 대구 지역구 보궐선거에 나가서 당선됨으로서 지역구 기반을 갖게 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례의원들은 대세를 따라서 이명박을 지지하게 되고 그에 힘입어 나경원, 진수희, 전여옥은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박재완과 이주호는 지역구를 나가지 않고 이명박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주호는 이명박 청와대에서 교문수석비서관을 지내고 교과부 차관을 거쳐 교과부 장관을 지내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자립형 고교는 이주호 장관의 업적으로,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가 추진한 채터 스쿨(Charter School) 같은 것이었다.

한편 박세일 교수는 2006년에 한반도 선진화 재단을 설립해서 선진화 담론을 전파했다. 이명박 정부는 박 교수의 선진화 담론을 차용해서 슬로건으로 사용했으나 박세일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2012년 4월 총선이 다가오자 박 교수는 ‘국민생각’이란 정당을 창당하고 서초에 출마했으나 선거비용도 돌려받지 못할 정도도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국민생각은 지역구는 물론이고 비례대표도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박 교수는 이로 인해 심적 타격이 컸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박근혜 대표가 이끄는 새누리당은 예상을 뒤엎고 153석을 얻어서 단독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박근혜는 자신이 이끈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으나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을 지지한 나경원, 진수희, 전여옥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자 이주호도 장관직을 내어 놓고 나왔다. 이주호는 그 후 박세일 교수가 세운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두 사람은 2015년에 ‘국가 재창조 3대 전략’이란 책도 같이 냈다. 그리고 박세일 교수는 2017년 1월에 암으로 타계했다.

세월이 흘러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이주호는 교육부 장관을 다시 맡게 됐다. 그리고 의대 증원 사태가 발생해서 이주호 장관은 궤변을 동원해서 윤석열을 옹호하고 있으니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이 장관 스스로도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세일과 이주호는 코넬대 선후배이고 KDI 선후배이다. 이주호 장관으로서는 박세일을 만나서 결국에는 국회의원을 하고 장관도 했으니 박세일보다 관운(官運)이 좋았다, 하지만 의대 대란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의대 증원 장관’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박세일 교수가 YS 정부에서 마구잡이 의대 신설로 오점을 남겼다면 이주호 장관은 윤석열 정부에서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오점을 안게 됐으니 그것도 운명의 장난인지 알 수가 없다.

- 사진 :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 9주년 기념식. 2014년 9월, 왼쪽부터 박재완, 정의화 국회의장, 박세일,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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