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 지역구에 국립의대를 ?

작성일 : 2024-08-12 07:20조회 : 290

우리 지역구에 국립의대를 ?

무리한 의대 증원으로 인해 전국의 대학병원이 위기에 처해 있고 내년 의대생 모집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실로 의료 대란(大亂)이라고 할 만한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의료 대란이 의료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100%다. 9월~10월이면 힘들게 진료를 해 온 교수들이 탈진해서 대학병원들은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에 봉착할 것이다. 문제는 이를 수습할 방안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와중에 국회에선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남, 충남, 경북도 의원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자기 지역구에 국립의대를 세워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이룰 강제하는 법안을 제멋대로 만들어서 제출했다. 이들은 자기가 한 건 했다는 식으로 자랑을 하고 있다.

전남, 충남, 경북도에 의대가 필요하면 자기들의 예산으로, 그리고 예산이 부족하면 도민들을 상대로 모금을 해서 의대 인가를 신청하면 되지 않는가? 인구 220만 명인 충남, 180만 명인 전남, 그리고 255만 명인 경북이 그까짓 의대 하나를 세우지 못하고 국립의대를 세워달라고 애원을 하는가? 진정으로 지방자치를 하고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면 자력으로 의대 하나쯤은 세울 수 있고 대학병원도 자력으로 만들어서 지역 의료 발전의 요람(搖籃)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 어마어마한 일이라서 도(道) 수준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연세대와 가톨릭대 의대는 워낙 오래된 대학이니까 논외로 하더라도 오늘날 경희대, 한양대, 중앙대에 어떻게 해서 의대가 생겨났는지를 돌이켜 보기 바란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걸쳐서 이들 사립대학은 의대 설립을 준비해서 인가를 받고 또 자력으로 대학병원을 세워서 오늘날 경희대, 한양대, 중앙대의 의대와 의료원으로 발전했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 시대에 일개의 사립대학에 불과한 경희대, 한양대, 중앙대가 자력으로 의대를 만들고 병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국민소득이 일본과 같을 정도로 부유한 나라가 된 오늘날 인구가 200만 명 안팎인 전남, 충남, 경북도가 자력으로 의대를 하나 세우지 못하면 부끄럽지 아니한가 ?

경희, 한양, 중앙은 모두 사립대학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당시 여당은 사립대학은 ‘족별(族閥)대학’이라면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서 공공이사인지 뭔지를 법인 이사회에 의무적으로 넣도록 했다. 그 때 사립대학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얼마나 매도(罵倒)했는지는, 당시 기사를 찾아보기 바란다. 정치권이 ‘족벌대학’이라고 욕을 해댄 이 세 개 대학은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날의 의대와 병원(경희대 본원과 강동병원, 한양대 본원과 구리병원, 중앙대 본원과 광명병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윤석열 때문에 반세기에 걸쳐 힘들게 성장한 이들 의대와 병원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지역구에 국립의대를 세우라는 의원입법을 제출하는 의원들의 멘탈리티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나 ? 집단적으로 미치지 않는 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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