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취 간호사 (CRNA)

작성일 : 2024-09-01 09:59조회 : 187

마취 간호사 (CRNA)

베트남 전쟁 당시 육군 간호장교(Army Nurse)로 야전병원에서 근무한 여성이 쓴 회고록에 이런 대목이 있다. 12개월 동안 베트남 파견 임무를 마치고 전역해서 민간병원의 응급실에서 일하던 중 야전병원에서 하던 대로 응급으로 실려 온 환자를 처치했더니 인턴이 정색을 하고 그것은 당신의 권한이 아니라고 해서 싸웠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야전병원에는 군의관, 간호사, 그리고 의무병(medic)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야전병원에는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없기 때문에 절박한 수술을 해야 하는 군의관은 간호사의 도움에 크게 의존했다. 간호사들은 헬기로 실려 온 부상자들을 부상 상태의 심각성을 판단해서 수술 순서를 정하고 군복을 가위로 찢어내고 소독하고 혈관주사(IV)를 하는 등 수술을 준비했고 수술이 끝나면 그 후 처치도 도맡았다. 간호사들은 가망이 없어서 수술대에 오르지 못하는 장병들의 손을 잡아 주었고 이들은 간호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숨을 거두었다.

베트남에서 1년 동안 그런 힘든 생활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민간병원에 취직한 간호사가 의과대학을 금방 졸업한 인턴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하지만 통상적인 경우에 응급실에선 간호사(RN)와 인턴은 한 팀이 되어 긴밀하게 협조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면 레지던트가 응급환자를 인수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간호사(RN)과 전공의는 그런 관계인데, 윤석열은 이 두 집단을 갈라치기 해버렸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또한 대학병원이 붕괴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PA 간호사로 공백을 메운다고 떠들어대니 듣기에도 거북하다.

미국은 간호사가 네 부류가 있다. CNA(Certified Nurse Assistant), LPN(Licensed Practising Nurse), RN(Registered Nurse), 그리고 NP(Nurse Practitioner)가 그러하다. CNA는 고졸 수준의 간호조무사이고 LPN은 2년제 대학을 졸업한 간호사이며, RN이 대학을 졸업한 정규 간호사이다. NP는 일정한 경력과 대학원 학위를 갖고 자격시험을 통과한 RN을 의미하며 가정의학 등 몇몇 전문 분야에서 독자적 진료가 가능하다.

미국에 특유한 간호사로는 마취간호사(nurse anesthetist)가 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은 군의관과 간호사가 많이 필요했다. 야전병원(Evacuation Hospital)에 헬기로 실려 온 부상병들은 모두 큰 수술을 해야 해서 외과의사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미군은 소위로 임관된 간호사들 중 상당수에게 마취의학을 특별하게 교육시켜서 이들을 마취간호사로 야전병원에 배치했다. 큰 전투라도 있으면 부상당한 장병 수십 명이 헬기로 실려 오는 야전병원에서 외과의사들은 수술에 전념해야 했고, 마취는 마취간호사들이 담당했다. 수술을 마치고 고비를 넘겼으나 계속 치료가 필요한 장병들은 사이공이나 다낭에 있는 보다 큰 미군 병원 또는 베트남 근해 해상에서 체류 중인 해군 병원함(Hospital Ship)으로 이송됐다.

군 병원에서 마취를 간호사가 담당하게 된 유래는 남북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전쟁 직전에 비로소 클로르포름이나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술이 개발되어 보급됐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북군과 남군 진영에는 많은 여성들이 부상병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를 했다. 그 중에는 병원이나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는 간호학원에서 간호를 익힌 여성들이 있었고 이들이 수술에 바쁜 의사들을 대신해서 마취를 담당했다. 이런 연유로 당시 마취기술을 확립한 간호사 몇 사람의 이름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 덕분에 팔다리를 다친 부상자들이 팔다리를 절단(amputation)하고도 살아날 수 있었다. 클로르포름으로 마취하면 통증은 없는데 자기 뼈를 톱으로 자르는 소리를 무의식중에 들을 수 있었다고 하며, 절단수술을 한 부상자 중 2/3가 수술 후 생존하는데 성공했다. 유명한 남군 지휘관 스톤월 잭슨 장군은 불행하게도 생존하지 못한 1/3에 속했고, 그의 때 이른 사망은 남군이 패배하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

20세기 들어서 부실한 의대가 정리되자 과연 간호사가 마취를 하는 것이 합법적인가 하는 문제가 의사들로부터 제기돼서 법정 소송으로 비화됐는데, 법원은 간호사들을 지지했다. 남북 전쟁 시기부터 관행적으로 간호사들이 마취를 해왔을 뿐 만 아니라 메이요 클리닉, 존스 홉킨스 병원 등 유명한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마취 간호사를 훈련시켜서 임상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마취간호사 자격을 별도로 정해서 공인기관이 이들의 검정을 관리하게 됐다. 마취간호사가 되기 위해선 간호사(RN)로서 병원 현장에서 경력이 필요하고 대학원 교육을 거치고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미군은 베일러 대학 등과 협력해서 자체적으로 마취간호장교를 양성하고 있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 간호사는 CRNA(Certified Registered Nurse Anesthetist)라는 타이틀을 갖는다. 따라서 미국에선 마취과 의사 뿐만 아니라 CRNA도 수술실에서 마취를 할 수 있다. CRNA는 마취과 의사가 부족한 지방의 병원에서 많이 일하고 있다. CRNA가 NP 자격을 획득하면 NP/CRNA가 되는 데 이들의 평균연봉은 20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이들은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간호사라고 하겠다. 따라서 미국은 간호사가 마취를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남북 전쟁에서 베트남 전쟁에 이르는 한 세기가 넘는 기간에 걸쳐 진화해 왔음을 이해해야 하며, 이들은 매우 엄격한 자격기준을 통과한 전문가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사진 : CRNA를 소개하는 홍보 자료.

이전글의료 위기와 여야 대표

다음글Teaching Hospital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