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지미 카터, 무능의 상징
2020-07-06 07:33 19 이상돈

5월 19일 ·


지미 카터, 무능의 상징


흔히 카터는 무능했지만 퇴임 후가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도 웃기는 이야기이다. 대통령은 재임했을 때 한 일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카터 재임 당시 인프레와 원유가 폭등으로 난방비가 올라가고 휘발유 가격이 올라가서 미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미국민들이 이제 좀  더 어렵게 살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겨울에는 실내에서 내복을 입으라고 했다. 그게 솔직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일이었다. 카터 재임 시 휘발유가격은 갈론 당 1달러를 훌쩍 넘어서 세자리 수였고, 금리는 두 자리 수, 인플레도 두 자리 숫자였다. 자동차를 사려면 15% 가 넘는 할부이자를 내야 했으니 거리엔 고물차가 즐비했다.

물론 존슨이 시작한 이른바 위대한 사회 복지확충과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인프레를 인계 받은 거지만 대통령이 되었으면 무언가 해야 할 것인데, 무능한 그는 아무것도 못하고 국민들에게 실내에서 내복을 입으라고 했다.

 카터는 인권 외교를 부르지졌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카터가 우방국의 인권을 걱정하는 사이에 소련과 쿠바는 니카라과 공산세력을 지원했고,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란에는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섰다. 미국 역사상 미국이 이렇게 수세에 몰린 적은 없었다. 그런 카터 시절을 나는 군 복무와 유학 생활로 보냈다.

아래는 내가 조선일보 비상임논설위원을 지낼 때 해외서평란에 기고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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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지미 카터 "평화의 전도사? 교활한 정치꾼!"지미 카터의 진실/ Steven F. Hayward 지음/ Regnery Publishing 펴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가 더 아름답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1980년 선거에서 레이건에게 패배한 후 물러 난 카터는 무주택자에게 집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 앞장섰고,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면서 세계의 분쟁지역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덕분에 카터는 2002년에 노벨 평화상을 탔다. 그래서 카터를 인권을 존중하는 성인(聖人)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금년 초 카터는 부시 정부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에 얼굴을 내밀었다.

친(親)공화당 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연구위원인 스티븐 헤이워드는 금년 대선을 앞두고 펴낸 이 책 ‘지미 카터의 진실’(원제 The real Jimmy Carter)에서 카터가 무능한 대통령이었을 뿐 아니라 이중적 인물이고 위험한 진보 좌파라면서, 다시는 그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겉모습과 달리 카터는 권모술수와 말 바꾸기에 능숙한 정치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땅콩 농장을 하다가 조지아주 상원에 출마할 때 카터는 흑인에 대한 차별을 지지했다. 1970년 조지아 주지사 선거 때 자기는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주지사를 지낸 후 1976년 대선에 출마한 카터는 자기가 정직한 사람이며 워싱턴은 가본 적도 없다는 식의 이미지 선거운동을 했다.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에 혼이 난 미국인들은 워싱턴 정가와 관계가 없는 카터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카터는 취임 다음날 한국에 있는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합참에 지시해서 국방부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더욱더 놀라운 일의 시작일 뿐이었다. B-1 폭격기 등 신무기 개발을 모조리 취소해 버렸다. 국민과 대화를 한답시고 어린이하고 시시콜콜한 전화나 했다. 인권과 평화를 내건 카터의 대외정책은 한마디로 패배주의였다. 니카라과에 공산정권이 들어섰고, 이란에선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지만 카터는 이런 변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이 이슬람 폭도들에게 유린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엉망진창이기는 내정도 마찬가지였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했다. 2차 오일 쇼크로 석유가격이 치솟았고, 주유소에선 휘발유가 품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에너지 위기를 극복한답시고 캠프 데이비드로 각계 대표를 초청해서 회의를 열었는데, 에너지 전문가는 별로 없었고 검은 옷을 입은 그리스 정교 주교 등 엉뚱한 사람들이 대거 참석했다.

1980년 선거에서 카터는 현직 대통령으론 유례가 없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러고도 카터는 창피한 것을 몰랐다. 카터는 기회만 있으면 레이건 대통령을 헐뜯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자 카터는 자기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대처, 미테랑, 고르바초프 등 각국 지도자에게 전쟁에 반대하는 편지를 보냈다. 카터의 편지를 받은 멀로니 캐나다 총리가 하도 기가 막혀서 당시 체니 국방장관에게 이를 알려줬다.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자 카터는 자기 재임시 미국 외교를 엉망으로 만든 워런 크리스토퍼, 앤서니 레이크 등을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 등으로 취직시키는 데 성공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카터는 평양으로 날아가서 김일성을 만났다. 카터는 북한이 핵개발을 중지하고 한국이 이에 보상을 하는 안을 갖고 돌아왔고, 클린턴 행정부는 더 이상 협상할 여지를 잃어 버렸다. 카터는 김일성이 기독교에 관심이 많으며 평양에 월마트 같은 상점이 있다고 말했다. 얼마 후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일성이 카터를 만나 너무 웃어서 죽었다는 조크가 워싱턴 관가에 나돌았다.

2003년 카터는 쿠바를 방문해서 카스트로와 뜨거운 포옹을 했다. 카터가 만나고 다닌 외국 지도자는 대개 공산국가와 테러 국가의 독재자들이었다. 카터의 이런 행각은 반역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저자는 민주당이 아직도 카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977-78 회고 
1975-1976년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