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네오콘 인맥 : 리차드 펄과 폴 월포위츠
2020-07-26 08:18 20 이상돈

7월 9일


네오콘 인맥 : 리차드 펄과 폴 월포위츠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 10살 유태인 소년 제이콥 월포위츠 Jacob Wolfowitz(1910-1981)는 부모를 따라서 폴란드 바르샤바를 떠나서 뉴욕에 도착했다. 그와 헤어진 유태인 친척 친지들은 그 후 나치의 수용소에서 전원 사망했다. 그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를 했고, 공부를 계속해서 뉴욕대학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3년에 아들 폴 월포위츠 Paul Wolfowitz가 태어났고, 1951년에 코넬대학 교수가 되었다. 나중에 국방차관이 되어 이라크 전쟁을 기획하게 되는, 폴 월포위츠가 코넬 대학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게 되는 것은 순전히 부친 제이콥 덕분이었다. 제이콥 월포위츠가 코넬 대학교수가 되어 이타카로 옮기기 전 뉴욕시에 살 때 교류했던 유태계 수학자 동료에 앨버트 월스테터 Albert Wohlstetter(1913-1997)가 있었다.

뉴욕에 자리 잡아 살아온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난 앨버트 월스테터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 논리를 공부했는데, 그 때 부인 로베르타 Roberta Wohlstetter(1912-2007)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는 박사과정을 거의 끝내가던 중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연방정부 기관인 전시생산국 War Production Board에서 일했고, 캘리포니아에 랜드 RAND가 설립되자 부부가 함께 일하게 됐다. 그는 랜드에서 수학논리에 근거한 핵 전략을, 부인 로베르타 여사는 정보 역사 intelligence history를 담당해서 부부기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지게 됐다. 앨버트 월스테터는 1964년부터 1980년까지 시카고 대학 정치학과에서 비핵화 전략 등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리차드 펄 Richard Perle(1941- )은 뉴욕 태생의 유태인인데, 어릴 때 근처에 살던 월스테터 부부의 딸과 같은 학교에 다녀서 앨버트 월스테트를 알게 됐다. 월스테터는 자신의 자식 나이인 리차드 펄과 꾸준히 연락을 하는 등 멘토 역할을 했다. 리차드 펄은 남가주대학을 나온 후 1967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했다.

1943년에 태어난 폴 월포위츠는 부친이 교수를 하던 코넬대학에 진학해서 수학을 공부했으나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시카고대에 진학해서 1972년에 비핵화 전략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그는 레오 스트라우스 교수의 강의를 들었고, 박사논문 심사를 앨버트 월스테터 교수가 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리차드 펄은 헨리 잭슨 상원의원과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월스테터 교수의 연락을 받고 워싱턴으로 갔더니 역시 월스테터의 연락을 받고 온 폴 월포위츠가 와 있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됐고, 두 사람은 잭슨 의원의 보좌진으로 일 하게 됐다. 리차드 펄은 1980년까지 11년간 잭슨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외교 군비 분야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잭슨 의원은 상원 전략무기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며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였고, 국방부에 영향력이 큰 의원이었고,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성향 의원이었다. 게다가 리차드 펄 자신이 앨버트 월스테트 같은 영향력 있는 지식인과 관련이 있었으니, 그는 단순한 의원 보좌관이 아니라 막후에서 워싱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유력인사였다.

폴 월포위츠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잭슨 의원실을 떠나서 닉슨 행정부의 군비통제국 Arms Control and Disarmament Agency에서 일했다. 카터 행정부 들어서는 국방부에서 지역방위 담당으로 일했으나 카터 행정부의 안보국방 정책에 실망해서 1980년에 사임하고, 존스홉킨스 대학의 국제전략대학원 SAIS 객원교수로 옮겼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적을 버리고 공화당원이 됐다.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자 폴 월포위츠는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됐고, 조지 슐츠가 국무장관이 되자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로 승진했다. 1986년에는 인도네시아 주재 대사가 됐으며, 1989년에 조지 H.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보 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Policy가 됐다. 이렇게 해서 폴 월포위츠는 1991년 걸프 전쟁을 기획하는 데 참여하게 됐다.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자 월포위츠는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 돌아가서 국제전략대학원 SAIS 원장이 됐다. 그 지위와 경력으로 그는 워싱턴 안보 서클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고, 야당이던 공화당에 자문을 했다. 그리고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국방차관이 됐다.

리차드 펄은 1980년 대선을 계기로 잭슨 의원실을 떠나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부 지구전략 담당 부차관보 Assistant Secretary of Defense for Global Strategic Affairs가 되어 8년 동안 일을 했다. 그 후에 국방정책자문위원회 Defense Policy Board Advisory Committee를 지냈으며,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2005년까지 그 위원장을 지냈다. 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에서 리차드 펄은 국방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폴 월포위츠는 국방부 차관을 지내게 된 것이다.

미완으로 끝난 1991년 걸프 전쟁 
군인, 지식인 그리고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