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튤레인 로스쿨
2020-09-01 17:00 12 이상돈


튤레인 로스쿨


내가 미국 남부에서 공부한 시기는 벌써 40년 전이다. 남부에서 흑백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1955년에 나왔고 차별금지를 명문화한 민권법이 1965년에 제정돼서 남부 대학들도 흑인학생을 받고 흑인 교수를 채용하기 시작하게 된 시기가 1970년대 후반기이니까 나는 그런 변화기에 튤레인으로 유학을 간 셈이다. 당시 뉴올리언스는 처음으로 흑인 시장이 선출됐는데, 그 지역에 특유한 프랑스/스페인계 백인 피가 섞인 혼혈이었다.

당시에는 흑인 학생들은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에 들어올 여건도 안되었고 학력도 부족해서 이들은 학비가 저렴하고 입학이 쉬운 공립대학 또는 흑인을 위해 세워진 대학을 다니는 게 보통이었다. 우수한 흑인학생들은 아무래도 인종차별이 남아있을 법한 남부 보다는 동북부나 중서부 대학을 선호했고 흑인 교수 지망자들도 그랬다.

내가 공부하던 당시에 로스쿨 한학년 약 130명 중 흑인학생은 6~7 명 정도였다. 그 중 몇몇은 내가 보기에도 흑인 우대로 들어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은 피부색이 밝은 혼혈 흑인이었다. 그 때에 이미 로스쿨은 남여 비율이 50대 50이었으니까 고등교육에서의 남여평등은 70년대 들어와서 확실히 이루어 진 셈이다.

전임 교수가 약 40명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여자 교수는 조교수 부교수 몇명 뿐이었다. 지금은 어느 로스쿨이든 여자 교수가 30%는 될거라고 생각된다.
당시 튤레인에는 흑인 남자 정교수가 한 명, 흑인 여자 조교수가 한 명이 있었다.

흑인 남자 교수는 영국주재 나이제리아 대사의 아들로 고등학교 대학을 영국에서 다니고 모스코바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미국에서 또 박사를 한 40대 초반의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논문 표절이 문제되자 사표를 내고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나도 그 교수한테 비교법 Comparative Law을 배웠는데, 그는 정작 프랑스/독일법을 잘 알지 못함을 느꼈다. 사실 그 과목은 하버드 로스쿨에서 가르쳤던 아서 폰 메렌 Arthur von Mehren 교수 정도나 제대로 가르칠 수 있었던 과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명 흑인 여교수도 논문을 못써서 테뉴어를 포기했는지 어떻게 됐는지. 얼마 후 보이지 않았다. 미국 대학은 냉정해서 태뉴어를 못 받거나 표절 같은 문제로 그만 두면 언제 그 사람이 우리 대학에 있었나 하는 분위기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아주 무서운 사회이다.

그러더니 인도 출신 교수가 계약법 등을 담당하러 부임했다. 나의 관심 분야는 아니지만, 이력을 보니까 인도 태생이라는 것일 뿐이고 영국에서 학부와 박사를 하고 영연방 국가 대학에서 가르친 유능한 학자였다. 그런 교수를 임용해도 소수 인종을 고용한 것으로 카운트되니까 그를 스카웃한 것 같았다. 이런 문제는 당시 남부의 좋은 대학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딜레마였다고 생각된다.

비록 흑인 대통령이 나오고 또 흑인 여성 부통령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흑인이 제대로 진입하기가 어려운 곳이 아카데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수, 또는 학자는 매우 정직한 직업이다. 모든 것이 개인의 업적으로 강의실과 동료교수, 그리고 학계에서 냉정하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일수록 그러한데, 사실 대학은 그래야만 한다.


펠리컨 브리프 
대학입학과 소수인종 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