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야 멘치코프 1915-1984

작성일 : 2020-10-01 20:45조회 : 1,718

소야 멘치코프 1915-1984

긴스버그의 타계와 더불어 미국 여성 법조인에 대하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지금은 로스쿨 졸업생도 여자가 남자를 앞서 있지만 하버드 로스쿨이 여학생 입학을 허용한 때가 1950년이다. 그러면 유리천장을 깨뜨리지는 못해도 거기까지 점프를 했던 최초의 여성 미국 법조인은 누구일까 ? 아마도 소야 멘치코프 Soia Mentschikoff 라고 해야 겠다.

소야(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는 러시아에 살던 미국인 부모에서 태어났는데 혁명 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뉴욕에서 자랐다. 총명했던 그녀는 대학을 15세에 입학했고, 졸업하자마자 컬럼비아 로스쿨에 들어가서 1937년에 졸업했다. 22살에 변호사가 된 그녀는 뉴욕의 큰 로펌에 취직해서 일했는데, 1945년에 파트너가 됐다. 소야는 미국의 대형로펌에서 파트너가 된 최초의 여성이란 타이틀을 갖게 됐다. 그녀는 1947년부터 2년간 하버드 로스쿨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했는데, 이로서 하버드 로스쿨에서 강의를 한 최초의 여자교수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1949년부터 51년까지 그녀는 칼 르웰린 Karl Llwellyn (1893-1962) 교수를 도와서 통일상법전 UCC 입법작업을 했다. 1925년부터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로 재직한 르웰린은 당대의 법학자였다. 1920~30년대 미국 법학계에는 법 현실주의 Legal Realism 운동이 팽배했는데, 법이 단순히 논리구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사회현상을 반영해야 하며 로스쿨도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뉴딜 입법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되는 등 파급효과가 컸고, 덕분에 미국의 법학교수 중 단 한사람을 뽑으라면 칼 르웰린을 거론할 정도였다.

칼 르웰린은 첫 부인과 1930년에 이혼을 했다. 3년 후 재혼을 했지만 두 번째 부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34년에 컬럼비아 로스쿨에 입학한 소야는 르웰린의 강의를 들었고 가까워졌다. 르웰린은 총명하고 미모인 소야를 자신의 연구보조원으로 두고 인간적으로도 가까이 지냈다. 정확히 언제부터 두 사람이 불륜관계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소야가 뉴욕의 큰 로펌에 취직을 하게 된 데에 르웰린의 힘이 있었는지도 확인된 바 없다. 1946년에 르웰린은 두 번째 부인과 이혼을 하고 소야와 결혼했다. 스승과 22세 연하 제자인 두 사람의 결혼은 화제거리였다.

그 때까지 미국은 상사거래가 각 주별로 다른 상법의 적용을 받아서 문제가 많았다. 이것을 통일해서 단일 상법전 Uniform Commercial Code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어왔는데, 이 작업의 책임을 칼 르웰린이 맡게 됐다. 1949년에 시작해서 51년에 끝난 이 작업에 소야는 부책임자로 일했는데, 월가의 로펌에서 상사법을 다루었던 소야가 사실상 도맡았다고 전해진다. 이를 위해 소야는 로펌을 그만 두었고, 이 입법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는 등 활약을 해서 널리 알려졌다.

그 즈음 학자로서 전성기를 지난 르웰린은 컬럼비아에서 인기가 전과 같지 않았다. 그 때 시카고 대학 로스쿨의 에드워드 리바이 Edward Levi (1911-2000) 학장이 두 사람을 동시에 전임교수로 초빙했다. (당시 시카고 대학은 로버트 허친스 Robert M. Hutchins 총장이 이끌었는데, 그는 약관 28세에 예일 로스쿨 학장으로 커리큘럼을 혁신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리바이 학장은 나중에 시카고 대학 총장을 지냈고,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내면서 워터게이트로 훼손된 법무부를 재건하게 된다.)

칼 르웰린과 소야는 이렇게 해서 1951년에 시카고로 옯기게 됐다. 시카고 대학은 부부가 같은 대학에 교수로서 근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서 리바이 학장은 르웰린은 정교수로, 소야는 전문강사 Professional Lecturer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두 사람은 최고연봉을 받았고, 두 사람 덕분에 시카고 로스쿨은 주목을 받았는데, 학생들은 르웰린 보다 소야의 강의를 더 좋아 했다고 한다. 1962년에 르뤨린은 69세로 타계했다. 시카고 대학은 소야에게 정교수 타이틀을 부여했고, 그 후 그녀는 비교적 조용하게 강의와 연구로 세월을 보냈다.

1974년에 플로리다에 있는 마이애미 대학이 소야를 로스쿨 학장으로 초빙했다. 가족이 없는 그녀는 두 번 째 고향인 시카고를 떠나 마이애미에 정착했다. 대학은 그녀에게 총장급 대우와 교수 임용권 등 전권을 부여했고, 그녀는 1982년에 은퇴할 때까지 유능한 교수를 초빙하고 기금을 확충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그녀는 1984년 6월, 69세로 암으로 사망했다.

소야는 학장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물으면 “늦게까지 머물고 전등 스위치를 끄는 사람"이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1980-81년간 마이애미 대학에서 국제법과 해양법 등을 공부해서 미국에서의 두 번째 석사학위를 했다. 나는 로스쿨 도서관에서 밤 늦게 공부하는 것을 좋아 했다. 멘치코프 학장은 종종 밤늦게 도서관을 들러 보고 퇴근을 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귀국해서 대학에 자리를 잡고 1년 만에 그녀가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놀랐다. 그 인자한 미소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진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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