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존 앤더슨 (1922~2017)

작성일 : 2021-01-26 10:57조회 : 1,599

존 앤더슨 (1922~2017)

2017년 12월 3일, 존 앤더슨(John B. Anderson : 1922~2017)이 사망하자 뉴욕타임스 등 중요 신문은 그의 생애를 회고하는 추모기사를 내보냈다. 존 앤더슨은 1980년 대통령 선거 공화당 예비선거에 나왔다가 중간에 공화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을 완주해서 일반 투표 6.6%를 얻었다.

나는 존 앤더슨을 기억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했던 첫 학기이던 1979년 늦가을, 대학 캠퍼스에는 존 앤더슨을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운동이 활발했다. 많은 학생들이 가슴에 ‘앤더슨을 대통령으로’(Anderson for President) 배지를 달고 다녔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에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하워드 베이커, 존 코넬리, 밥 돌 등 거물급과 일리노이 출신 하원의원 존 앤더슨이 출마했다. 경력으로 보면 앤더슨이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서 앤더슨 배지를 달고 있는 학생한테 “도무지 앤더슨이 대통령을 할 자격이 되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오직 앤더슨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확실하게 대답을 했다.

존 앤더슨은 일리노이 주 서민층 출신으로 2차 대전 참전 후 일리노이 대학 로스쿨을 나와서 지방검사를 지내다가 1960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서 10선을 했다. 그는 처음에는 보수적이었으나 점차 사회문제에 있어서 진보적 성향을 띄게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드러나자 그는 공화당 의원으로선 처음으로 닉슨에게 사임을 촉구해서 주목을 받았다. 앤더슨은 공화당 의원으로서는 드물게 남녀동권수정헌법안(ERA)을 지지했다. 그는 선거자금 모금액에 상한선을 정하려는 개혁법안에 찬성했고, 국립공원을 확대하는 법안에 찬성하는 등 공화당에서는 보기 드문 개혁성향이었다.

카터 대통령이 완전히 실패하자 민주당에 실망한 젊은 층은 존 앤더슨을 지지하고 나섰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그를 지지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80년 1월 초, 아이오와에서의 후보 토론회에서 앤더슨은 “감세를 하고, 국방비를 늘이면서 균형재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서 주목을 받았다. 앤더슨은 레이건의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이 토론으로 앤더슨은 널리 알려졌으나 선거 자금이 부족해서 제대로 운동을 못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선 부시가 승리했지만 뉴햄프셔부터는 레이건이 승리를 이어갔다. 앤더슨은 매샤추세츠와 버몬트에서 기대를 걸었지만 부시와 레이건이 각각 승리했다. 앤더슨은 자기 고향인 일리노이에서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레이건이 11% 승리했다. 레이건은 일리노이에서 태어나서 대학을 마칠 때까지 일리노이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일리노이에서 패배하자 앤더슨은 동력을 상실했다. 그는 공화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후보로 본선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제3후보에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모든 주에서 후보로 등록하고 완주해서 일반투표 6,6%를 얻었으나 선거인단 표는 한 표도 얻지 못했다. 그 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정치개혁 운동을 하면서 남은 생을 보냈다.

앤더슨이 공화당을 탈당함에 따라 공화당내 진보파는 절멸되어 버렸다. 공화당내의 진보파로는 뉴욕 주지사를 지낸 넬슨 록펠러와 뉴욕 시장을 지낸 존 린지, 그리고 동북부 공화당 의원 몇몇이 있었다. 부유층 출신인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 행세를 한 록펠러는 부통령을 끝으로 은퇴했고, 과다한 복지정책으로 뉴욕시를 파탄시킨 린지는 유권자들에게 불신임을 받고 정계를 떠났다. 앤더슨은 재정을 축내면서 복지를 남발하는 진보정치인은 아니었다. 여성과 환경 같은 새로운 가치를 중시하고, 정치개혁과 균형재정을 주장했던 정치인이었고, 로비 그룹과 이익단체에 휘둘리는 정치를 거부한 소신파였다.

1980년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스타급 상원의원 두 명이 의회를 떠났다.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CIA의 비밀작전과 불법행위에 관한 청문회를 열었던 4선 상원의원 프랭크 처치(Frank Church 1924~1984)와, 남녀동권헌법수정안(ERA)을 추진했던 3선 상원의원 버치 바이(Birch Bayh 1928~2019)가 낙선을 한 것이다. 무능한 카터 덕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민주당 상원의원이 고배를 마시고 의회를 떠났고, 1980년대 ‘보수의 시대’가 열렸다.

레이건에 이어서 대통령이 된 부시는 균형재정을 중시했던 실용적인 공화당원이었으나 증세를 하는 바람에 재선에 실패했다. 199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다수석을 장악했는데, 그 때부터 공화당은 강경한 노선을 취하게 됐고, 급기야는 오늘날 트럼프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1979년~80년, 나는 레이건이든 부시든 공화당이 정권을 잡아서 카터 같은 무능한 진보 대통령을 갈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앤더슨을 지지하는 미국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오늘날, 합리적 원칙과 자기 소신에 충실했던 존 앤더슨이 훌륭한 정치인이었다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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