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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지 H.W. 부시와 세금
작성일 : 2021-04-16 14:01조회 : 1,633
조지 H.W. 부시와 세금
세금을 올리는 정권은 다음 선거에 패배하게 됨은 하나의 상식이다. 세금인상은 중앙정부이든 지방정부이든 정치적으로 가장 인기 없는 조치이다. 미국에선 어느 도시의 시장이나 시의회가 재산세를 대폭 인상하면 다음 선거는 해보나 마나 야당이 승리한다. 그렇게 지방정권을 교체하지 못하면 이사를 갈 수 있는 사람들, 즉 잘 사는 사람들은 아예 다른 도시, 다른 주(州)로 이사를 가버린다. 그러면 결국 못 사는 사람들만 남기 때문에 시 재정은 더 나빠지고 부자가 떠나버린 도시는 일자리는 없어지고 빈곤과 범죄가 늘게 된다. 그래서 시장이든 주지사이든 세금을 올리지 않고 세수를 늘리기 위해 투자를 유치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도시와 도시 사이 뿐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새로 높이 건설된 롯데 제2타워 내의 초고가 아파트를 과연 누가 사겠는가? 중동이나 유럽의 부호는 우리 같은 높은 재산세 종부세 내면서 그런 아파트를 절대로 사지 않는다. 높은 세금은 투자자를 국외로 내쫓는 법이다. 세금은 정권에도 영향을 준다.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부가가치세를 도입하자 안내던 세금을 내게 된 시중의 상인들이 공무원을 폭행하는 등 민심이 사나워져서 1979년 부마(釜馬) 사태의 한 원인을 제공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정권의 몰락에는 종부세를 대폭 올린 조치가 한 몫을 했다.
세금을 올려서 선거에서 패배한 미국 대통령으론 조지 H. W. 부시가 대표적이다. 아버지 부시는 매우 성공적인 대통령이고, 우리는 그가 만들어 놓은, 냉전 후의 세계 질서 하에서 아직은 살고 있다. 임기 중 독일이 통일됐고 소련과 동유럽 공산체제가 무너졌다. 부시 행정부는 그런 혼란기에 소련이 갖고 있던 핵무기가 단 한 개도 유출되지 않도록 핵 안전 조치를 취하는 등 공산권 해체가 연착륙하도록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부시는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임기 중 NAFTA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발족시켰다. 4년 단임 대통령으론 역대급 업적을 남긴 셈이다. 그럼에도 부시는 1992년 선거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부시가 1992년 대선에 실패한 큰 원인으로는 그가 세금을 올려서 1988년 대선 당시 약속을 어긴 것을 든다. 1988년 대선 때 부시는 “Read my lip. No new tax"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를 지내고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를 지내는 페기 누넌(Peggy Noonan)이 만든 이 어구(語句)는 너무나 강력해서 도저히 잊히지가 않았다. 부시는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비 증강과 감세(減稅), 그리고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실업을 인계 받았다. 그러면서도 부시는 증세는 없다고 확실히 약속했다.
부시 대통령은 레이건이 해결하지 못하고 넘겨 준 저축은행(Savings and Loans) 업계의 부실을 해결해야만 했다. 갑자기 고(高)이자에서 저(低)이자 시대로 넘어오자 장기주택금융을 담당하던 저축은행 업계 전체가 파산할 위기에 처했고, 부시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풀어서 불안하던 금융계를 정상화시켰다. 부시의 이 조치는 금융파탄을 사전에 예방해서 1990년대 번영의 기초를 놓은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연방정부의 적자가 단기간에 엄청나게 늘어났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어기고 증세를 하게 됐다. 특히 당시는 예일대 폴 케네디(Paul Kennedy) 교수의 베스트셀러 <강대국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이 미국의 쇠락하는 이유로 재정적자를 들 정도로 건전재정을 중시하던 때였다.
부시 대통령은 선거에의 악영향을 걱정하는 정치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악관 예산실(OMB) 딕 다만(Dick Darman : 1943~2008) 실장의 권고에 따라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을 28%에서 31%로 올리고 자가용 비행기, 요트, 3만 달러가 넘는 자동차에 대해 사치세(luxury tax)를 부과하는 세법 개정안을 제안해서 통과시켰다. 소득세 인상과 사치세 부과는 부유층에만 해당이 되었지만 세금을 올렸다는 자체에 대해 공화당의 보수유권자들이 반기(反旗)를 들어서 결국 로스 페로(Ross Perot)라는 사업가가 제3의 독자후보로 나서서 클린턴이 대선에 당선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면 부시 대통령의 증세가 재정수입 증가에 기여했는가 ? 그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부자들은 사치세를 내면서까지 요트나 자가용 비행기를 살 생각이 없었다. 요트 회사와 소형 비행기 제작사가 문을 닫거나 조업을 단축해서 실업이 늘었으니 오히려 세수가 줄었다. 3만 달러를 넘는 벤츠와 BMW를 주로 미국에 수출하던 독일은 미국의 사치세가 보호무역장치라면서 자유무역주의자인 조지 H. W. 부시가 만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1993년에 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은 이 말썽 많은 사치세를 폐지해 버렸다.
사실 부시는 세금을 올릴 필요가 없었다. 윈도 3.1과 넷츠케이프가 시장에 나온 1992년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윈도 95가 나와서 IT 경제가 활짝 피어올랐다. 냉전이 끝나서 국방비 지출이 줄어들자 재정이 갑자기 좋아졌다. 부시 대통령이 열심히 읽은 폴 케네디의 책은 국방비 과다와 재정적자로 미국이 쇠락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아버지가 세금을 올려서 재선에 실패했음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아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로 미국이 전쟁을 시작해야 함을 알고도 세금을 내렸고 이자율은 더 내렸다. 9.11 테러 후 부시는 미국인에게 전과 같이 레스토랑에 가고 디즈니월드에도 가서 소비를 하라고 연설을 했다. 미국에서 증세는 ‘정치적 자살’과 같다.
- 사진은 부시 대통령과 딕 다만 예산실장. 하버드를 나온 딕 다만은 유능한 재정전문가였다. 사실 너무 유능한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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