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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993년 캐나다 총선
작성일 : 2021-04-17 21:46조회 : 1,720
1993년 캐나다 총선
새로운 세금을 도입한 덕분에 선거에 참패한 대표적 사례는 1993년 캐나다에서 있었다. 그 해 6월 총선에서 집권당이던 개혁보수당(The 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의 의석이 151석에서 2석으로 줄어서 아예 몰락해 버렸다. 집권당이 선거에서 이렇게 몰락한 경우는 초유의 사태인데, 세금 문제를 쉽게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캐나다는 오랫동안 진보적 정치성향이 우세했고 영국 노동당을 닮은 자유당이 집권을 오래해서 공기업이 많고 국영건강보험이 있는 등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베트남 전쟁을 피해서 병역을 기피한 미국 젊은이들을 받아 드린 나라도 캐나다이다. 그런 캐나다에도 마가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이끈 1980년대 보수주의 부흥에 편승해서 1984년 총선에서 40대의 브라이언 멀로니(Brian Mulroney : 1939~ )가 이끄는 개혁보수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퀘벡 출신이지만 완전한 영어를 구사하는 젊고 매력적인 멀로니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가장 젊은 G7 지도자로서 레이건, 대처, 미테랑, 부시와 함께해서 캐나다의 위상을 높였다.
멀로니는 경제정책은 자유주의적이지만 인권 환경 등 사회정책에선 진보적이었다. 그는 공기업이던 석유회사와 항공사를 민영화해서 국영기업의 잔재를 없애버렸다. 멀로니는 레이건 행정부와 미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서 나중에 NAFTA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멀로니는 산성비 문제를 엄격하게 다루었고, 환경규제를 강화한 환경법을 새로 제정했다. 퀘백주(州)의 자치를 인정하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멀로니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특별히 가까웠다. 부시 대통령도 G7 리더 중 멀로니와 가장 격의가 없어서 두 사람은 형제와 같았다.
부시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을 상대로 걸프 전쟁에 나서자 멀로니는 구축함과 공군기를 보내는 등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평화 무드에 젖어있던 캐나다 군은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멀로니는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 같은 것을 연방세로 도입하려고 했다. 그 때까지 캐나다는 중앙정부가 걷는 간접세로는 캐나다산 원자재에 적용하던 제조업세 밖에 없었다. 이 세금은 해외 원자재에는 적용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멀로니는 제조업세를 폐지하고 GST(Goods and Service Tax)라는 새로운 연방 부가세를 도입하려고 했다. 야당이 반대하자 멀로니는 상원의원 숫자를 늘리는 편법을 동원해서 통과시켰고, 1991년 1월에 발효했다.
캐나다 국민들은 전에 내지 않던 연방부가세를 새삼스럽게 내게 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세금에 대해선 원래 진보적 정당이 우호적이지만 이런 불만을 알아차린 자유당은 GST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1993년 총선에서 집권당이던 개혁보수당은 2석 밖에 못 얻는 참패를 기록했다. 비록 멀로니는 총선 몇 달 전에 당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그 선거는 멀로니에 대한 평가였다. GST 철폐를 내걸고 총선에서 승리한 자유당도 이 세금을 폐지하지는 못했고 그 대신 세율을 원래의 7%에서 5%로 내려서 운영해 오고 있다. 개혁보수당 잔존세력은 2003년에 다른 보수성향 군소정당과 합쳐서 캐나다 보수당으로 다시 태어나서 현재 제1 야당이다.
- 사진은 조지 H. W. 부시와 브라이언 멀로니가 대통령과 총리였을 시절 형제 같은 모습.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두 사람은 세금으로 인해 선거에 실패한 공통점도 갖게 됐다. 조지 H. W. 부시 영결식에 참석한 멀로니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먹이면서 조사(弔辭)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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