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아프간 전쟁과 모병제
작성일 : 2021-08-22 08:29조회 : 1,652
아프간 전쟁과 모병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이 치른 가장 긴 전쟁(The Longest War)이었다. 그러면 이런 긴 전쟁이 가능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 미국의 군산(軍産) 복합체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러 답이 있겠지만, 나는 징병제 폐지가 큰 원인이라고 본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40년 9월 징병법을 제정했고, 이에 따라 21세부터 36세까지 남성 2000만 명이 등록을 했다. 그 중 20%는 문맹이라서 배제하고 나머지 30%는 질병 등으로 면제돼서 해당 연령 남성 50%가 징집자원이 됐다. 그 후 연령은 확대됐지만 흑인 징병을 제한하는 등 실제 징집된 인원은 1000만 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4~73년간 징집대상 2700만 명 중 220만 명이 징집됐다. 베트남에 투입된 병력 중 약 25%는 징집된 병사였다. 나머지는 장교, 준사관, 그리고 지원병이었다. 베트남 전쟁 중에도 대학 재학생, 주 방위군,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남성은 제외되었다. 그러자 미국에선 대학 진학률이 폭등했다. 대학을 나와도 전쟁이 안 끝나니까 대학원을 가고 로스쿨을 갔다. 부모 찬스로 주 방위군에 들어가서 베트남을 피하기도 했다. 1973년 파리 협정이 맺어지자 닉슨 대통령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
빌 클린턴, 조 바이든, 루디 줄리아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또 로스쿨을 졸업해도 베트남 전쟁이 끝나지 않아서 징집이 되어야 하는데 명백한 설명이 없이 징집 연기를 받다가 1973년에 징병제가 폐지되자 베트남을 피할 수 있었다. 조지 W. 부시는 주 방위군 조종사가 되어서 베트남을 피했다. 트럼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기피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딕 체니는 대학원 징집연기 시한이 끝나가자 첫 딸이 태어나서 그 덕분에 베트남을 피해갔다. (그 딸이 리즈 체니 하원의원이다.) 이렇게 피해나가지 못하면 징집을 거부해서 감옥을 가거나 캐나다로 도망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토론토에는 징집을 피해서 도망간 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
자기 의사에 반해서 베트남을 가야하는 젊은이들은 반전(反戰) 운동을 일으켰다. 그런 젊은이의 가족, 연인도 반전 운동의 대열에 참가하자 언론마저 서서히 이들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홈 프론트’(Home Front)가 무너졌으니 더 이상 전쟁을 할 수가 없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10년간 하고 철군한 것도 경제적 이유 못지않게 전쟁에 징집되어 나간 젊은이들의 희생에 따른 여론이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1991년 걸프 전쟁은 2차 대전 때 해군 조종사로 태평양에서 격추된 경험을 갖고 있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베트남에서 두 차례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콜린 파월 합참의장이 기획하고 수행한 전쟁이었다. 최단기간에 최대의 전력(戰力)을 동원해서 목표를 달성하고 철수해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쟁이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은 전쟁 경험이 없는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가 기획하고 수행한 길고 긴 소모적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될 때는 징병제가 철폐된 지가 오래 되어서 의회에는 도무지 군대를 다녀온 의원이 손꼽을 정도였고 자기 자식이 군대에 있는 의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미국인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나가는 장병들을 그들이 원해서 나가는 것으로 보았다. 외견상으로 자기 의사에 반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가는 군인은 없었기에 전쟁을 20년이나 해도 변변한 반전(反戰) 시위조차 생기지 않았다.
1965년에 징집에 반대하는 미시건 대학의 반전 시위를 주동해서 감옥에 다녀 온 시민운동가 빌 에어즈(Bill Ayers)는 근래에 징병제도를 없애버려서 국민들은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 관심이 적어 졌고, 지원병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군대’를 만들어 버렸다며 오히려 징병제를 옹호했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참전한 작가 엘리옷 애커만(Elliott Ackerman)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이 오직 군인 가족들만이 관심을 갖는 전쟁이 되어 버린 것이 지원병 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해가 고향에 돌아와도 영결식에 참석하는 사람은 퇴역 장병뿐이라고 한다. 징병제 폐지가 가져온 또 다른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
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미군 병력 중 25%만 징집병이었다는 통계를 액면 그대로 보면 안된다. 2004년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는 해군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는 자원해서 장교가 돼서 참전했지만 징병제가 있어서 어차피 군대에 갈 바에야 해군장교로 병역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모병제였다면 과연 존 케리, 밥 커리 같은 나중에 정치인이 된 사람들이 장교로 입대했을까?
당시 태국의 미 공군기지나 7함대에 근무했던 대원들도 모두 해·공군 지원병이었다. 그러니까, 베트남 정글 속에서 싸운 보병 병사의 절대 다수는 대학을 가지 못하고, 또 해·공군 전문기술 대원도 되지 못한 젊은이들이 지상군 병사로 징집되었다. 영화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에 나온 병사들이 모두 그런 경우다. 그런 젊은이들이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전사했다.
우리나라 신문사 논설위원이란 사람들이 툭하면 미국은 오블리제 노블리주라고 칼럼 쓰는데, 아주 무식한 소치다. 도무지 그걸 글이라고 쓰는지, 한심하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라는 박용진 의원이 징병제 폐지를 내걸었는데, 다른 후보들 생각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도무지 보수정당이라는 국민의힘의 유력 후보와 대표는 군대를 안가서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COPYRIGHT ⓒ 이상돈닷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