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n Officer and a Gentleman

작성일 : 2021-12-02 19:33조회 : 1,570

An Officer and a Gentleman

대선을 앞두고 페미니 안티페미니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관한 논쟁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게 아니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성과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면 생각나는 영화가 몇 개 있는데, 우선 1982년에 개봉된 <사관과 신사>(An Officer and a Gentleman)를 보기로 하자.

페미니즘 입장에서 나쁜 영화로 뽑는 것이 바로 <사관과 신사>이다.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007 영화를 보면 비키니 차림의 본드 걸이 예외 없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그 시대 이야기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줄리아 로버츠가 콜걸로 나온 <프리티 우먼>도 그나마 순정(純情)을 강조해서 넘어 갈 수 있지만 <사관과 신사>는 남성에 예속된 여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반(反)여성 영화로 뽑히는 것이다.

나는 <사관과 신사>을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것은 물론 내가 병역을 해군으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에서 ‘Officer’를 ‘사관’으로 번역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나는 본다. ‘사관’이란 단어는 사관학교, 사관생도, 그리고 부사관(과거의 하사관)에서나 쓰이지 독자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즉, ‘Officer’는 ‘장교’로 부르지 ‘사관’으로 부르지 않는다. 따라서 <장교와 신사>라고 해야 맞다. 해군 장교는 신사라고 부르지만 육군이나 공군 장교를 신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유독 해군 장교를 신사로 지칭하는 것은 영국 해군에서 유래해서 미국에 전해 내려온 전통이라고 한다. (눈부시게 하얀 백색 해군 장교복 때문에 신사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다. 해군 수병의 아들로 태어나서 불우하게 자란 잭 메요(리차드 기어)는 답답한 처지를 탈출하기 위해 해군 조종사를 양성하는 AOCS(Aviation Officer Candidate School)에 입교한다. 시애틀 근교에 있는 훈련소에 3개월 동안 지속되는 훈련은 예상 밖으로 쎘고 교관인 폴리 해병 중사(루이 고셋)는 사관후보생들을 혹독하게 몰아친다. (실제 미 해군 OCS는 플로리다 펜사콜라에 있다.) 잭은 좋은 집안 출신인 시드 월리(데이비드 케이스)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엉뚱한 짓을 하다가 적발된 잭은 퇴교 직전까지 가지만 폴리 중사의 선의로 훈련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폴리 중사는 사관후보생들에게 이런 경고를 한다. “부근의 푸조 사운드에 있는 여자들이 귀관들을 유혹해서 이곳을 벗어나려고 하고 심지어 하지도 않는 임신을 했다고 하니까 조심들 하라.” (나는 이 대목에서 웃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들도 그 시절에 들었기 때문이다.)

훈련 후반기에 들어서 주말에 외출을 하게 되자 잭과 시드는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폴라(데브라 윙어)와 리넷(리사 브라운트)을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 잭은 폴라의 아버지가 자신과 같은 사관후보생이었는데 어머니에게 폴라를 임신시키고 임관 후에 떠나버렸음을 알게 되고 놀란다. 리넷은 시드에게 자기가 임신을 했을 수도 있다고 암시한다. 중력실 훈련에서 고생을 한 시드는 자기는 조송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퇴교하고 리넷을 만나서 자기와 결혼하자고 했더니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나는 조종사의 아내가 되어서 온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어”라고. 리넷은 임신도 거짓말이라고 울면서 실토한다. 충격을 받은 시드는 모텔 방에서 목을 매서 자살하고 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잭은 자기도 퇴교를 하려 하지만 폴리 중사는 허락하지 않는다.

훈련을 마치고 해군 소위가 된 잭은 폴리 중사로부터 경례를 받고 훈련소를 나와서 폴라가 일하는 공장으로 향한다. 잭은 폴라를 번쩍 안고 공장을 떠나고 리넷 등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두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박수를 친다. 잭은 해군 장교로 신분 상승을 했고 폴라는 해군 장교의 아내로 신분 상승을 한 것이다. 주제가 “저 위에 우리가 속해”(Up Where We Belong)가 울려 퍼진다.

스토리는 이렇게 시시하지만 이 영화는 좋은 평을 들었고 해병 중사로 나온 루이 고셋은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았다. 제작비는 6백만 달러에 불과한데, 미국 상영관에서만 거의 2억 달러를 벌어들여서 영화에 간여한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됐다. 하지만 1960년대도 아니고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에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서 결혼을 하면 신분상승을 한다는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에 여권단체가 선정하는 나쁜 영화 랭킹에 항상 오르고 있다. 나도 1980년대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1970년대는 베트남 전쟁 등으로 암울한 시대였지만 1980년대는 그 시절을 뒤로 하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핑크 빛 희망을 준 로널드 레이건의 시대였다. 검은 예복을 입은 남자들과 우아한 백색 드레스를 입은 부인들이 백악관에서 파티를 다시 열기 시작한 1980년대 초였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여성이 남성에 예속되어 있다는 측면보다는 블루칼라도 군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징병제를 폐지한 미 국방부는 “당신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Be All You Can B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병(募兵)을 했고 레이건 행정부는 국방부 예산을 대폭 증가해서 군의 사기를 높히던 시기였다.

- 사진 (1) 영화 포스터. 리차드 기어가 입은 복장의 견장은 사관후보생이다.
- 사진 (2) 영화 마지막 장면. 리차드 기어가 입은 복장의 견장은 소위이다. (굵은 막대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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