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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 연방법원의 여성 법관
작성일 : 2022-01-29 15:30조회 : 399


미 연방법원의 여성 법관


1980년대 들어서 미국 여성에 대한 반동(反動) 음모가 있었다는 수전 팔루디의 주장이 과장이라고 하더라도 1980년대 공화당 정권에선 여성의 정부 고위직 진출이 감소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점에 있어서 지표가 되는 것이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여성을 연방판사로 임명했나이다.

카터 대통령은 4년 재임 중 262명의 연방법관을 새로 임명했는데, 그 중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56명, 연방지방법원 판사가 203명, 그리고 특별법원판사가 3명이었다. 카터 임기 중 임명된 연방판사 중 여성은 41명이었다. 카터는 여성 연방법관을 41명이나 임명해서 그 이전에 임명된 모든 여성 연방법관 숫자를 능가했다. 이처럼 여성이 대거 연방사법부로 진출하도록 한 점은 카터의 업적이며 유산(legacy)으로 평가된다. 대법원에 공석이 생기지 않아서 카터는 대법관을 임명하지는 못했지만 단임 대통령으로서는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연방판사를 임명한 기록을 세웠다.

카터가 임명한 연방항소법원 판사 중 주목할 만한 사람은 어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스티븐 브라이어(Stephen Breyer 1938~ ) 대법관과 재작년에 타계한 루스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 대법관이다. 두 사람은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1994년과 1993년에 각각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법관이 되기 전에 스티븐 브라이어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서 행정법과 규제법을 가르쳤고, 루스 긴스버스는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로 헌법과 남녀평등법을 가르쳤다. 법관으로서 브라이어는 기본권에 대해선 진보적이었지만 행정법 교수로서 그는 규제 완화를 지지하는 규제 개혁론자로 유명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8년 재임 기간 중 401명의 연방판사를 임명했는데, 그 중 대법관은 4명, 항소법원판사가 83명, 지방법원 판사가 290명, 그리고 새로 생긴 국제무역법원 판사가 6명, 특별법원 판사 18명이었다. 이로써 레이건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연방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레이건은 샌드라 오코너(Sandra Day O'Connor 1930~ )를 1981년에 대법관으로 임명해서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이 됐다. 스탠포드를 졸업한 오코너는 2006년까지 재직하고 은퇴했다.

레이건은 연방항소법원 판사 6명, 연방지방법원 판사 17명, 국제무역법원 판사 1명, 특별법원 판사 2명을 여성으로 임명해서 오코너 대법관을 포함해서 총 27명의 여성 법률가를 연방판사로 임명했다. 카터가 재임 4년 동안 여성 41명을 연방판사로 임명한데 비해 레이건은 8년 동안 여성 27명을 임명했기 때문에 비록 레이건이 최초로 여성 대법관을 임명했다고 하더라도 여성 판사 숫자를 늘리는 데는 미온적이었다.   

조지 H. W. 부시는 재임 4년 동안 대법관 2명, 연방항소법원 판사 42명, 연방지방법원 판사 148명, 국제무역법원 판사 1명, 그리고 특별법원 판사 8명을 임명해서 총 201명의 연방판사를 임명했다. 그 중 여성은 항소법원 판사 6명, 지방법원 판사 25명, 특별법원 판사 1명으로 총 32명이다. 카터의 기록에는 못 미치지만 부시는 레이건 보다는 많은 여성을 연방법관으로 임명했다.

미국에선 1970년대 들어서 여학생이 대거 로스쿨에 입학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로스쿨 졸업생 중 남녀 비율이 대등해졌을 뿐더러 우등 졸업생 숫자에선 여학생이 남학생을 능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클린턴 대통령 임기 시절에 들어서는 법관으로 임명할 만한 여성 법률가가 남성과 거의 대등해 져서 여성 판사의 숫자는 큰 의미를 상실했다.

- 사진은 고인이 된 긴스버그 대법관과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2009년). 탁월한 학자로서도 명성이 높았던 두 사람은 인간적으로도 가까웠다고 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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